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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날. 부용대(芙蓉臺) 쪽으로여행/2020 장마 안동 2020. 8. 11. 13:45
낙동강(洛東江)
안 도 현
저물녘 나는 낙동강에 나가
보았다, 흰 옷자락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오래 오래 정든 하늘과 물소리도 따라가고 있었다
그 때, 강은
눈앞에만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내 이마 위로도 소리 없이 흐르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어느 날의 신열(身熱)처럼 뜨겁게,
어둠이 강의 끝 부분을 지우면서
내가 서 있는 자리까지 번져오고 있었다
없는 것이 너무 많아서
아버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낡은 목선(木船)을 손질하다가 어느 날
아버지는 내게 그물 한 장을 주셨다
그러나 그물을 빠져 달아난 한 뼘 미끄러운 힘으로
지느러미 흔들며 헤엄치는 은어(銀魚)떼들
나는 놓치고, 내 살아온 만큼 저물어 가는
외로운 세상의 강안(江岸)에서
문득 피가 따뜻해지는 손을 펼치면
빈 손바닥에 살아 출렁이는 강물
아아 나는 아버지가 모랫벌에 찍어 놓은
발자국이었다, 홀로 서서 생각했을 때
내 눈물 웅얼웅얼 모두 모여 흐르는
낙동강(洛東江),
그 맑은 마지막 물빛으로 남아 타오르고 싶었다병산서원에서 하회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화산(花山)을 거쳐야 한다.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모두 배산임수를 갖출 수 있도록 배경이 되어주는 야트막한 산이다. 이 산을 거쳐서 하회마을로 가는 여행객이 있는지 사실 잘 모르겠는데―한 시간 반 정도 길을 걸으면서 사람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추천할 만한 루트는 아니다. 어쨌든 콜택시를 부르기에는 시내에서 너무 멀리 왔고, 다음 버스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그냥 걸어보기로 했다. 사실 화산을 통해 병산서원이 하회마을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안내소 직원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비가 오락가락해서 흙길 상태가 괜찮을지 모르겠는데, 젊은 사람이니까 한 시간 정도는 걸어보라고 했다.
표지판이 그리 친절하지 않아서 길을 헤매면서 갔다. 낙동강변으로는 여러 종류의 수목(樹木)들이 맹그로브 숲처럼 뿌리를 물에 두고 자라나고 있다. 아니면 불어난 물에 밑둥이 잠겼는지도 모르겠다. 반대편 옆으로는 장뇌삼인지 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는데 이를 가꾸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전기 울타리를 조심하라는 문구만 휑하니 덜렁이고 있다. 모든 게 무성(茂盛)해서 음산함마저 느껴지는 길이다. 사람도 없으니 더 그렇다. 작년 땡볕에 창녕 우포늪을 다녀왔던 생각도 나고, 얼른 벗어나고 싶었다. 지렁이의 움직임이 왜 이렇게 큰가 했더니 웬 뱀이 내 발밑을 가로질러 황급하게 사라진다, 혀를 날름거리며. 이런 곳이라면 도심에 출몰하는 멧돼지도 나오겠다 싶었다. 안내소 아주머니가 분명 넉넉잡아 한 시간인 뉘앙스로 말했는데 빠듯하게 잡아 한 시간이었나 보다. 지도를 잘못 읽었거나 산길을 과소평가 했거나. 이때부터 비가 다시 조금씩 오기 시작했는데, 아직까지는 나무 그늘이 비가 새어들지 않도록 잘 견뎌주었다.
하회마을에 이르니 다시 비가 그쳤다. 양옆 논을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면 우렁이 많이 보였다. 가끔씩 꿩이 끽끽대며 날아오르는 모습도 귀엽게 지켜보았다. 아무리 봐도 꿩은 앉을 자리를 봐가면서 나는 것 같지가 않아 우습다. 입구에 이르러 직원에게 부용대로 건너갈 수 있는 섶다리가 개방되어 있느냐고 물었더니, 얼마 전에 유실되었다는 답변이 되돌아온다. 휴대폰으로 검색했을 때 부용대에 딱 하나 카페가 있어서 무거운 다리도 풀 겸 쉬려고 했는데 건너편으로 건너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막혀 있다니 어쩔 수 없었다. 이 지역에 얼마나 비가 왔는지 떠올려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불현듯 이와쿠니(岩国)에서 건넜던 사무라이를 싣는 다리 킨다이쿄(錦帯橋)가 생각났다. 17세기에 축조된 이 다리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다리라고는 하지만 돌로 된 교각이 견고하게 목조 아치를 지탱하고 있다. 섶다리는 이름 그대로 골조를 이루는 굵은 나무를 빼곤 나뭇가지를 엮어 만들기 때문에 돌과 나무로 지어 올린 목조 다리와 견고함을 단순비교하기는 어렵다. 부용대를 올라볼 수 없다니 그저 아쉬울 뿐이었다. 아마도 화천서원―하회마을을 마주하고 낙동간 건너편에 위치한 서원―을 둘러본 관광객들은 부용대에 올라 하회마을을 굽어보고 있었다. 하회마을의 수해(水害)를 막을 목적을 겸해 조성되었다는 만송정은 의외로 별 감흥이 들지 않았다. (나중에 소수서원을 에워싸고 있던 소나무가 훨씬 멋있었다.)
어쨌든 다리를 쉬어주기는 해야 했으므로 가장 가까운 매점에서 커피를 사들고 한동안 넋 놓고 앉아 있었다. 원래는 거주공간이던 이곳이 하나의 구경거리가 되면서 주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잠깐 생각이 스쳤다. 하회‘마을’이다보니 생각보다 구역이 넓어서 방문객의 8할은 전기카트를 타고 하회마을을 구경한다. 관광자원을 활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좋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전기로 구동된다고 해도 윙윙대는 모터 소리를 주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나는 방문객이니 개의치 않지만, 이곳 주민이라고 하면 좀 불편할 것 같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디지털 게임처럼 중요한 지점을 찍는 것으로 만족하고 전기카트에서 내리지 않는 관광객들을 바라보며 조금은 씁쓸하기도 했다. 어쨌든 부용대를 직접 오르지 못해 아쉽기는 했지만 정면에서 바라본 부용대가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어 좋았는데, 이후 하회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동안 우리 건물의 멋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어서 처음에 느낀 아쉬움이 더 큰 보상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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