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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날. 봉황이 머무른 자리(鳳停寺)여행/2020 장마 안동 2020. 8. 25. 00:20
셋째날의 일기를 무려 네 개로 쪼개서 썼더니, 넷째날의 일기는 하나의 포스팅으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많은 이동이 있었던 날도 아니다. 첫째날 도산서원을 둘러보고, 둘째날에는 청송 주왕산, 셋째날에는 병산서원과 하회마을을 둘러보는 일정을 지나왔다. 다해서 6일을 체류했던 안동 여행에서 둘째날부터 산행을 했던 게 조금 무리였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안동에서의 여행 4일차는 전날 예상했던 대로 날씨 상황이 전날보다 좋지 않았고, 이날 하루는 쉼표를 찍기로 했다. 이날도 어김없이 아침마다 들렀던 카페를 찾았는데 화요일은 문을 닫는 날이었다. 마침 안동의 유명 제과점인 맘모스 제과를 가보지 않았던 터라,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이날 오전은 맘모스 제과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베이커리이다 보니 문 여는 시간이 이르고 안쪽에는 테이블도 꽤 많았는데, 세 시간 정도 커피와 함께 토베 얀손의 책을 읽으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11시쯤 날씨가 풀리는 것을 보고 봉정사를 가려다가 다시 그대로 눌러 앉았다. 지방도시들이 으레 그렇듯 버스를 한 대 보내고 나면 1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 다시 한 시간여 독서를 했다.
351번 버스. 봉정사로 가기 위해서는 안동초등학교 앞에서 351번 버스를 타야 한다. 나는 정오가 되어 카페의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안동초등학교 앞을 지나가는데 아이들의 모습이 여럿 보여서 잠깐 생각에 빠졌다. 시간상으로 지금은 휴일이 아니라는 것, 학기 중이라는 것, 그렇다면 방학은 아닌 시점이라는 것. 코로나로 인해 학교가 정상 운영되지 않는 건 분명하지만, 돌아가야 할 기본적인 것들은 돌아가고 있다는 것. 351번 버스는 시간에 맞춰 안동초등학교에서 출발했고, 40분쯤을 달리자 봉정사 앞에 멈춰섰다. 사실 안동의 서쪽으로 떨어진 하회마을이나, 동쪽으로 떨어진 도산서원과 비교했을 때, 안동 시내로부터 북쪽에 위치한 봉정사는 그나마 직선거리상으로 시내에서 가까운 편이다. 봉정사입구에서 내린 사람은 나 한 명뿐이었고, 매표소의 아저씨는 느긋한 목소리로 복을 많이 받으라는 말을 건넸다.
병산서원과 마찬가지로 봉정사는 안동여행을 뒤늦게 알아보는 과정에서 알게 된 장소다. 봉정사의 연관 키워드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있길래, 우리나라 문화유산에 이런 곳이 있었던가 하고 갸우뚱했는데 <한국의 산지승원, 산사>라는 테마로 2018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이 사찰은 7세기 신라의 삼국통일 직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도 전해지는데, 의상대사가 부석사에서 날려 보낸 종이 봉황(鳳凰)이 지금의 봉정사 터에 내려앉아 지금의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하회마을에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심은 가문비나무가 있었던 것처럼, 이곳 봉정사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안동에 왔을 때 하회마을과 함께 들렀던 바로 두 곳 중 한 곳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됐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이미 1999년 엘리자베스가 이 두 곳을 다녀갔다는 건, 그때에도 이미 문화적 가치가 높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자그마한 낙수(落水)가 흐르는 위치에 명옥대(鳴玉臺)라는 이름의 작은 정자가 있고, 이후로는 소나무가 에워싼 아스팔트 오르막길이 쭉 이어진다. 아스팔트길이 끝나는 지점에는 천등산 봉정사라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一柱門)이 나오고, 이후부터는 다시 올라왔던 만큼의 시멘트길이 경사를 이룬다. 시야가 트이는 지점에서 비스듬히 오른쪽으로 가파른 돌계단이 있는데, 이 돌계단을 올라야 비로소 봉정사의 누각인 덕휘루를 통과할 수 있다.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다보면 바로 오른쪽으로는 조금 가냘프지만 나름대로 싱그러운 소나무 한 그루가 있고, 왼편을 멀리 바라다보면 왼쪽 모퉁이에 기와조각을 얻은 스투파도 보인다. 덕휘루를 지나면 대웅전으로 향하는 짤막한 계단이 있다. 그러고 보면 안동을 여행하는 중에 사찰은 처음으로 들르는 듯하다.
아무래도 산속이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사찰에 오면 마음이 편해진다. 병산서원에 갔을 때도 그랬지만 이곳에서도 누각인 덕휘루(德輝樓)가 참 마음에 든다. 지붕의 곡선은 은근하고 기와의 퇴락한 청색은 시간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예전에 읽었던 어떤 건축서적에서는 누각이 한국 건축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했다. 건물의 목적에 비춰보면 누각이라는 게 필수적인 건물은 아니지만 전면에 전망을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을 배치함으로써 건물의 분위기를 환기하고 가람배치를 완결한다는 것. 이곳은 어쨌든 신앙생활을 하는 곳이기도 하니까, 대웅전 안에서 불공을 올리는 신도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발소리를 죽이며 대웅전의 오래된 툇마루도 걸어보았다. 고개를 수직으로 들면 다포(多抱) 양식으로 된 나무들이 얼기설기 짜임새 있게 버티고 있다. 이 기둥들은 몇 번의 고온다습한 여름을 견뎌냈을까, 삭지도 않은 게 신기할 만큼 오래된 나무들이다.
대웅전과 화엄강당(華嚴講堂), 무량해회(無量海會)를 빙글빙글 돌다가 이번에는 북동 방면으로 외따로 떨어진 영산암으로 향했다. 큰 사찰들은 보통 암자가 달려 있게 마련인데, 봉정사에는 지조암과 영산암 두 개의 암자가 있다. 이 가운데 지조암은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고, 영산암만이 개방되어 있었다. 영산암은 영화 촬영지―<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과 <동승>―로도 알려져 있는데, 맨 처음 만휘루까지 올랐던 돌계단보다도 더 긴 계단을 올라야 한다. ㅁ자 형으로 되어 있는 이 작은 건물은, 누각이라 부르기에는 아주 아담한 툇마루 밑을 통과한 뒤 돌계단을 오르면 정원으로 이어지는 구조을 갖추고 있다. 마당 왼편으로는 적송(赤松)이 분수(噴水)처럼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고 있고, 오른편으로는 나리과의 꽃들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이슬을 머금고 있다.
다시 대웅전으로 내려오면, 대웅전의 서쪽으로는 극락전이 있고 이를 고금당(古金堂)이 화엄강당과 함께 ㄷ꼴을 그리고 있다: 그 한가운데에는 삼층석탑이 있고, 대웅전에서 극락적으로 평행하게 넘어가는 길에는 석조여래좌상이 있는 듯 없는 듯 가부좌를 틀고 있다. 원래는 안정사라는 곳에 안치되어 있던 것을 안동댐 건설과 함께 사찰이 수몰되면서 이곳 봉정사로 옮겨 왔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이 극락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그 연원이 밝혀지기 이전까지는 부석사의 무량수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라는 타이틀을 두고 논란이 있었던 건물이기도 하다. 정확하게는 고려 공민왕 때 그러니까 14세기 후반에 지어진 건물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봉정사 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 가장 어린 축에서 속하는 건물 같다. 외벽이 너무 정갈하다. 그래서인지 차라리 다포 양식으로 된 대웅전이 주심포 양식의 극락전과 비교해 훨씬 멋스럽다는 느낌마저 든다.
봉정사에서 두어 시간 보냈을까, 다시 안동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타고, 이번에는 교보생명 앞에 하차한 뒤 안동역 앞으로 걸어가 간고등어 정식으로 대충 식사를 때웠다. 그런 뒤 일찌감치 숙소로 들어가 비오는 날을 무료하게 보내는 고양이들을 지켜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저녁에는 다시 지루함을 느끼고 안동에서 가장 늦게까지 여는 카페에 갔다. 음료 하나를 주문하고 두 번째로 들고 온 책―니체의 <The Birth of Tragedy>―을 읽었다. 카페가 문을 닫을 즈음 좀 미리 나와서 웅부공원의 누각에 올라가 바람을 쐤다. 이미 나 말고 주민 한 명이 편안한 복장에 편안한 자세로 누각 위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밤 열 시가 되자 웅부공원일대의 모든 조명이 소등되었다. 기나긴 장마와 함께 열을 식히는 안동 시내를 뒤로 하고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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