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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다음 행선지여행/2020 장마 안동 2020. 9. 12. 20:01
조금 이른 감은 있지만 안동 여행에 관한 기록은 이쯤에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영주역에서 안동역으로 온 이후 나는 곧장 안동 신시장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오갈 때 시장골목을 겉으로만 봤었는데, 실제 시장에 이르니 휴무일인가 싶을 정도로 골목이 한산했다. 정확하게는 신시장에 인접한 청년몰이라는 곳인데, 전주에 있던 청년몰과 마찬가지로 청년들이 소규모 창업을 할 수 있도록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공간인 모양이었다. 저녁을 먹으러 찾은 곳은 치킨을 파는 곳. 간단히 강정이라도 먹고 요기를 하려고 했다. 안동 시내에 있는 유일한 비프랜차이즈 치킨집이었다.
도착해서 보니 배달을 중심으로 하는 곳이라 매장이 크지 않았고, 그마저도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은 더욱 협소했다. 가게 주인도 방문객을 보고 놀란 것 같았다. 주방 안쪽에서 요리하는 직원이 한 명 있었고, 주문을 접수하고 포장하는 직원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주방 안의 사람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하는 것으로 보아 가게 주인인 것 같았다.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지 가게 주인과 비스듬히 마주 앉아 대화하면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골목이 휑한 까닭을 물으니, 워낙 장사가 안 돼서 가게들이 다 문을 닫았다고. 실제로 청년몰 골목은 매대를 어수선하게 뒤덮고 있는 카키색 방수포 투성이었다. 코로나 속 장사와 안동 얘기를 나누는 동안 시간이 흘렀다. 늘상 들고 다니는 내 카메라를 보며 시시한 대화도 했다.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서는데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던 것은, 너무 아무렇지 않게 장사가 안 되는 곳이라고 말하던 주인의 얼굴과 이를 증명하는 골목풍경 때문이었다. 붐비는 인적 대신 무거운 정적만이 텅 빈 골목을 메웠다. 그런데다 비까지 내리니 사람들의 발길이 더욱 뜸해질 수밖에. 다행히 내가 간 곳은 프랜차이즈점이 아님에도 좋은 재료를 쓰시겠다는 나름의 소신으로 꾸준히 매출을 유지하고 계신 것 같았다.(!!) 지방 소도시들이 개발정책상 소외되는 것도 있을 테고, 코로나가 겹치면서 더욱 어려움을 겪는 것도 있겠지만, 안동처럼 매력적인 요소가 많은 도시가 생기와 활기를 잃어간다는 것이 아쉬웠다. 안동은 정말 멋있는 관광지도 많고 경상북도 내에서도 교통이 편리한 곳이다.
안동에서의 여섯째날인 이튿날 한층 비가 거세어졌다. 마지막날 만휴정(晩休亭)을 가볼까 하는 생각은 애저녁에 접고, 문지방에 앉아 굵어진 빗줄기를 바라보면서 여행 내내 나를 심심치 않게 해주었던 고양이 녀석들은 지금쯤 어디에서 비를 피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떨어진 빗방울이 그리는 동심원이 육각형 모양의 마당패턴 위로 시원하게 포개어졌고, 주위의 모든 색깔은 먹구름 아래에서 약간 기운을 잃었다. 고양이 녀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지 못한 채, 단촐한 짐을 메고 접이식 우산을 편 채 잠기운을 쫓아낼 수 있는 마지막 장소로 향했다.
카페 라이프. 삶. 거창한 이름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다행히도 이곳 카페는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머무를 수 있는 곳이었다. 또한 보이지 않은 실로 나를 묶어둔 것처럼 안동 여행 중 자그마한 구심점이 되었다. 길을 빗겨나갈 것 같다가도 다시 되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 분명 어떤 길 위이기는 할 테지만, 바삐 걷는 두 다리의 움직임만큼 머릿속 행선지를 잊지 않는다는 것. 여행에는 끝이 있지만, 인생에서 종착점은 보이지 않고 또 다시 새로운 출발점 같은 길 위에 서 있다. [終] (ps. 포스팅의 안동여행은 7월말에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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