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2020 장마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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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 물안개 속 산행(A walk in the drizzle)여행/2020 장마 안동 2020. 8. 8. 12:50
산모기가 출몰할 때부터 알아차려야 했던 건데, 주봉까지 오르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후리메기 삼거리를 지나 등산코스가 시작되는 지점에, 무리한 산행을 자제하라는 살벌한 문구가 쓰여 있었다. 개울을 지나 산길에 접어들고 고도가 높아질수록 집요한 산모기도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대신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 점점 주위에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작년 늦가을에 찾았던 간월재의 기억이 떠올랐다. 억새 광경을 보러 갔다가 자욱한 안개 속에서 컵라면을 먹고 되돌아 왔던 기억. 차이라고 한다면 당시는 으슬으슬하게 몸을 적시는 안개가 끼었다면, 지금 안개는 서늘하고 시원한 느낌이 있었다. 어쨌든 안개가 끼면서 주위를 둘러보기가 어렵게 된 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어느 순간부터 후두둑후두둑 가볍게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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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 폭포 산책(Promenade along the cascade)여행/2020 장마 안동 2020. 8. 7. 08:45
아주 가파르고 비좁은 절벽 틈에 자리한 용추폭포는 사진에 담기가 쉽지 않았다. 사람이 가장 많이 붐비는 구간이기도 했다. 계곡물이 바위 사이를 휘감아 나오면서 깊은 굴곡을 만들어 놨다. 유생(儒生)들이 유식(遊息)을 하던 공간이라는 안내가 있는데, 이게 그냥 비유적인 표현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옛날 사람들은 통풍도 안 되는 옷을 입고 땀흘리며 이런 곳까지 어떻게 들어왔을까 하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폭포수로 빠져나가기 전의 물줄기가 무서운 기세로 소용돌이를 그린다. 용추폭포가 어느 지역에서든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는 이름이라면, 절구폭포라는 이름은 접해본 적이 없는 듯하다. 절구폭포를 보기 위해서는 샛길로 약간 빠져서 200 미터 가량 걸어들어가야 하는데, 용추폭포를 둘러본 사람들이 굳이 절구폭포를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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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 청송(靑松) 가는 길여행/2020 장마 안동 2020. 8. 5. 18:21
안동 터미널을 출발하여 청송으로 향하는 버스는 먼저 청송 터미널을 들른 뒤 다시 주왕산입구 정류소로 향한다. 안동 터미널에서 탈 때에도 탑승자가 네 명밖에 안 되는 적은 인원이었는데, 청송 터미널에서 한 차례 승객이 내리고 나니 주왕산으로 향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아마 정오를 넘겨서 산행을 가겠다는 사람이 흔치는 않을 터=_= 어쨌든 청송에 이르니 날씨가 개였는데, 이러한 사실을 미리 알았는지 몰랐는지 주왕산 입구에는 전국 각지에서 대절한 전세버스가 가득했다. 사실 나는 주왕산의 일반적인 산행코스에 대해서는 잘 몰랐고, 막연하게 주산지(注山地)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산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주왕산입구 정류소에서 내린 다음에 한 번 더 농어촌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조금 안 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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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날. 불시착(不時着)여행/2020 장마 안동 2020. 8. 4. 00:36
점심식사를 걸렀으니까 다시 안동역으로 되돌아왔을 때는 배가 고팠다. 안동에 오면 관광객들이 반드시 가는 식당이 몇 군데 정해져 있는데, 영 평점이 안 좋아서 그냥 포털에서 리뷰가 많으면서 평점도 좋은 곳을 갔다. 안동국밥은 서울에서도 맛볼 수 있는 음식이지만, 시장이 반찬이라고 안동에서 먹는 안동국밥이 더 맛있다. 식사를 마치고 보관함에 넣어두었던 가방을 다시 찾아 이제는 숙소로 향한다. 이스라엘 여행에서 몇 번 물먹은 경험 때문에 개인적으로 에어비앤비를 별로 신뢰하지 않게 되었는데, 짧은 시간 안동 여행을 준비하다보니 다시 에어비앤비를 통해 게스트하우스를 알아보았다. 마찬가지로 리뷰가 충분히 많으면서 평점이 좋고, 가성비가 좋아보이는 숙소를 예약했다. 처음에는 2박을 예약해두었는데, 있다보니 안동에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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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날. 도산서원(陶山書院)여행/2020 장마 안동 2020. 8. 2. 00:02
하회마을과 도산서원. 안동(安東) 하면 먼저 떠오르는 곳들이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8~9 군데였던 것 같은데, 그 이후로 여러 문화재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이 목록 안에 하회마을(2010년, 하회와 양동)과 도산서원(2019년, 한국의 서원)도 포함되었다. 이 둘의 독특한 점은 전국에 산재한 유적지들을 하나의 주제로 묶어 보다 적극적으로 한국적인 가치를 발굴했다는 점이다. (2000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과 2009년 등재된 40기의 조선왕릉도 마찬가지다) 안동에는 도산서원뿐 아니라 마찬가지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병산서원(倂山書院)이 자리하고 있어 함께 둘러보기에 좋다. 여기에 더해 2018년 유네스코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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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날. 청량리(淸凉里)발 안동(安東)행여행/2020 장마 안동 2020. 8. 1. 03:15
오전 7시 38분 청량리역. 부전(釜田)행 무궁화호 열차가 서서히 역사(驛舍)를 빠져나간다. 전날 수색역 근처에서 입사동기들과 짧은 모임을 마치고, 카페를 가자는 제안도 마다한 채 서둘러 본가에 갔다. 옷가지 몇 벌과 가벼운 책 두 권, 세면도구와 카메라. 단촐하게 가방을 꾸렸다. 그리고 집에서 쪽잠을 청한 나는 이른 아침 청량리역으로 향했다. 안동역에 도착하기까지는 앞으로 3시간 반 가량이 소요될 예정. 피곤에 찌든 커다란 짐짝처럼 이내 얕은 수면에 빠져들지만 이것 또한 아신역에 이르는 짧은 경춘선 구간에서만이다. 원주역에 도착하기 전 이미 눈을 뜬 나는 자세를 고쳐가며 잠을 다시 청해보지만 안동역에 이를 때까지 좀처럼 단잠은 찾아오지 않는다. 뒤이어 몇 차례 어두운 터널을 통과했다는 희뿌연 기억들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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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다시 첫 번째 질문으로여행/2020 장마 안동 2020. 7. 31. 11:37
안동에 간 기간은 한창 장마철이었다. 주간예보에는 비내리는 먹구름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예보를 보수적으로 하는 탓인지, 오전에는 주룩주룩 비가 왔다가도 해가 높아지는 낮이 되면 가랑비가 오락가락 하는 정도의 흐린 날씨였다. 안동에 도착하고 나서 처음 사흘간 심한 악몽에 시달렸다. 가깝지도 않은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느라 초조한 내 모습, 아무도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 자꾸 무언가를 하라고 해서 잔뜩 화난 내 모습, 옷을 모조리 빼앗겨 벌거숭이로 있는데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아 수치스러워 하는 내 모습, 모임에 도착했는데 어디에도 낄 곳이 없어 우왕좌왕하는 내 모습. 안동으로 향한 데에 별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떠나야 했을 때 가본 적이 없었던 곳이 안동이었을 뿐이다.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