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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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의 재발견일상/film 2018. 4. 14. 00:21
워낙 대사량이 많지 않은 영화라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 채 영화가 종료됐다. 러닝타임이 길지 않은 편이라 같은 미드의 첫 화를 본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본디 인간에게 공포감을 심어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청각을 자극하는 것이라 했던가. 을 관람하며 귀가 즐거웠던 게 불과 얼마전인데, 이 영화는 소리를 소거함으로써 전혀 다른 종류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짧은 상영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플롯이 짜임새 있게 전개된 데다 디테일도 잘 묘사되어 있었고, 애틋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었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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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사물일상/book 2018. 4. 4. 23:54
우리는 그림을 바라보고, 그림 속의 화가는 우리를 응시한다. 더도 덜도 아닌 대면(對面), 갑자기 서로 마주친 눈길, 서로 교차되면서 겹치는 곧은 시선, 그렇지만 이 상호적 가시성의 가느다란 선에는 불확실성, 교환, 회피라는 시선을 포괄하는 복잡한 망 전체가 내포되어 있다. 화가의 시선은 우리가 소재(素材)의 자리에 있는 경우에만 우리에게로 향한다. 관람자로서 우리는 추가 요소일 뿐이다. 우리는 화가의 시선에 받아들여지지만 또한 화가의 시선에 의해 축출되고 우리보다 먼저 언제나 거기에 있던 것, 즉 모델로 교체된다. 그러나 역으로 화가의 시선은 그림의 바깥으로, 화가와 마주 대하는 허공을 겨냥하는 것으로서, 관람자들이 오는 그만큼 많은 모델을 받아들이는 셈이며, 그 명확하나 중립적인 장소에서 주시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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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유골(言中有骨)일상/film 2018. 4. 1. 16:23
종잡을 수 없는 제목 때문에 별로 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영화인데, 안 봤으면 후회할 뻔 했다. 원제 인 이 영화는, 인종차별의 잔재가 남아 있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딸에게 저질러진 불의를 앙갚음하기 위해 두 발 벗고 나선 어느 여성(밀프레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배우들(특히 밀프레드와 딕슨)의 행동이 막무가내인데다 거침없이 대사를 읊기 때문에 이거 너무 도가 지나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표현이 거칠 뿐 따지고 보면 틀린 얘기는 없다는 게 이 영화를 보는 묘미다.가해자를 찾아나선 밀프레드는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는 남성들의 잔인함에 맞서는 인물인 한편, 딕슨은 유색인종에게 폭력을 일삼는 경찰관으로 공권력의 부패와 인종차별을 스스로 폭로하는 인물이다. (영화 중간에는 밀프레드가 종교의 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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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일상/film 2018. 3. 26. 19:59
Nature has cunning ways of finding our weakest spot. How you live your life is your business, just remember, our hearts and our bodies are given to us only once. And before you know it, your heart is worn out, and, as for your body, there comes a point when no one looks at it, much less wants to come near it. Right now, there's sorrow, pain. Don't kill it and with it the joy you've felt. 대단히 감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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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자유일상/film 2018. 3. 18. 23:34
News is the first rough draft of history. 요즘은 주말 조조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된 작품들 중에 이 작품이 아니더라도 보고 싶은 작품이 몇 개 있었는데, 의 상영시간이 우연히 맞다보니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아이젠하워에서 닉슨 대통령 재임기에 이르기까지 60년대부터 줄곧 베트남전 전황(戰況)을 조작해 온 정부와 관료를 고발하는 워싱턴 포트스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영화는, 일전에 보았던 를 떠올리게 하는데, 조금 아쉬웠던 부분은 담백한 느낌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캐릭터들을 조금씩 영웅화한다거나 감동요소를 넣기 위해 약간 부자연스러운 대사나 장면을 넣었다는 것인데, 거슬리거나 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냥 담담하게 진술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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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panthère noire일상/film 2018. 3. 9. 22:27
모처럼 관람한 마블 영화! 마블영화에서는 처음으로 흑인이 주인공을 맡는다는 얘기, 인종주의를 비판하는 코드가 들어있다는 귀동냥으로 나름 기대를 많이 하고 갔는데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다. 특히 와칸다라는 (외면상) 빈곤해 보이는 국가가 국제개발협력(ODA)에 앞장서서 동참한다는 이상주의적 발상에는 더더욱 공감하기 어려웠고.. 인종주의에 대해 마블만의 색깔있는 관점을 보여주는가 싶었지만, 막상 (생각지도 않았던) 국제개발협력에 대해 어정쩡한 관점만 확인할 수 있어서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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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야일상/film 2018. 3. 7. 23:31
본지가 좀 되어서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이번에 이 작품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만큼 생각도 정리할 겸 리뷰를 정리해보려 한다. 그냥 보고 마는 것과 달리 막상 글로 정리하다보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는 법이기도 하고. 기예르모 델 토로의 작품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라는 영화를 통해서였다. 기예르모 델 토로라는 인물은 몰라도 를 아는 사람은 많았고, 나 역시 이 영화를 무척 재미있게 본지라 스페인어 공부에 한창 열을 올리던 시절 스크립트까지 구해서볼 정도였다. 이후 기예르모 델 토로에 대한 관심은 멀어졌지만, 막상 아카데미 시상식 시즌이 다가오니 이 영화를 꼭 봐야겠다 마음먹었다. 기왕이면 상영 후 리뷰를 진행하는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관람하고 싶었지만, 평일에 영화를 보는 것이 사치가 된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