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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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죄(斷罪),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일상/film 2018. 7. 21. 22:22
참조 : 『Decoding 'The Killing of a Sacred Deer,' the craziest tragedy of 2017』 from VICE 이런 영화를 보는 일은 참 흥미로운 일이다. 단조로운 배우들의 목소리, 절제된 감정을 통해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감을 느끼고 몰입하는 것. 근래에 이런 영화를 보기는 오랜만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받은 느낌과 별개로 영화속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별개의 문제인 모양이다. 요르고스 란티모스라는 감독의 작품을 본 것은 정도인데, 이 작품은 주제의 선(線)이 명확한 편이었던 데 반해, 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깔끔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비정한 복수극? 권선징악? 부와 명예의 헛됨? 그래서 관련된 아티클들을 찾아보았다. 영화는 큰 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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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아이 이야기일상/book 2018. 7. 16. 01:59
"사라토레의 지성에는 뿌리가 없어. 그러니 자신의 신념을 위해 투쟁하기보다는 권력자의 호감을 사는 것을 더 좋아하는 거야. 니노는 아주 충성스러운 관료가 될 거다."―p. 90 이 얼마나 혼란스러운 삶인가. 우리 몸은 폭발이 일어나 수많은 파편으로 조각난 것처럼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실비아, 마리아로사, 프랑코와 함께 환멸에 빠진 논리학자 같은 태도로 이러한 흩어짐에 대해 이야기했다. ···프랑코는 '객관적으로' 혁명적이었던 시대의 종말이 가까이 다가왔다고 했다. 프랑코는 '객관적'이라는 수사를 냉소적으로 사용했다. 혁명의 종말과 함께 지금껏 나침반 역할을 하던 모든 계급이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p. 95 "우울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아. 자기 상황에 만족하는 사람들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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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일상/book 2018. 7. 15. 19:42
차라리 떠나라고 말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서 멀리, 영원히 도망가라고. 모든 것을 이룰 수 있고 모든 것이 잘 돌아가는 그런 곳에 자리를 잡으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나는 그때 내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현실은 길이가 길어질수록 고리가 커지는 사슬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향 동네는 나폴리와, 나폴리는 이탈리아와, 이탈리아는 유럽과, 유럽은 전 세계와 연결되어 있었다. 이제야 나는 생각한다. 병든 것은 우리 고향 동네가 아니라, 나폴리가 아니라 지구 전체다. 유일한 우주 또는 무수히 많은 우주가 모두 병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조차 사물의 본질을 숨길 줄 아는 능력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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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름의 이야기일상/book 2018. 6. 30. 00:17
불평등에는 고약한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나는 드디어 깨달았다. 그것은 내면 깊은 곳에서 작용하며 금전적인 문제를 초월하는 것이다. 식료품점과 구두공장과 구둣가게에서 벌어들이는 돈으로는 우리의 출생 배경을 숨기지는 못한다. 릴라가 계산대 서랍에서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꺼낸다 해도, 그 액수가 3백만 리라가 되었든 5백만 리라가 되었든 돈으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p.170 "네가 말하는 일은 이미 과거의 일이야. 우리는 세로운 세대이고."―p.182 릴라가 그런 아이였던가. 원래부터 나처럼 고집스러울 정도로 성실했던 게 아니었던가. 이때껏 오직 내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 그토록 많은 생각을 하고, 구두를 만들고, 글을 쓰고 이야기를 하고, 복잡한 계획을 짜고, 분노하기도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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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았다일상/film 2018. 6. 27. 22:40
Jusqu'à la garde)/드라마/자비에 르그랑/미리암(레아 드루케), 앙투안(드니 메노셰), 줄리앙(토마 지오리아)/93> 불꽃 튀기는 변론과 함께 꽤나 숨가쁘고 무거운 분위기에서 영화는 막을 연다. 마치 가족 내 송사(訟事)로 인해 앞으로 전개될 치열한 논리 다툼을 예고하는 듯하던 영화는 도입부를 넘긴 뒤로는 일체의 법적 논리와 무관하게 비이성적으로 흘러가는 가정 폭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영화가 그려내는 가정폭력의 이미지가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 물리적인 폭력행사를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영화에는 피를 흘리는 장면이나 구타당하는 장면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영화 속 가정폭력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드러난다. 회유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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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부신 친구일상/book 2018. 6. 19. 00:05
살아온 세월이 길지 않을 때에는 혼란스러운 감정의 바탕에 있는 혼란의 실체를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해야 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할 것이다. 어른들은 어제, 그제, 길어봤자 한 주 전의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살아가며 내일을 기다린다. 그들은 그 이상의 것에는 관심이 없다. 아이들은 어제의 의미, 엊그제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내일의 의미도 알지 못한다. 아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현재이고 지금이다. 여기가 길이고, 우리 집 현관이고, 이 사람이 엄마이고, 아빠이고, 지금은 낮이거나 밤인 것이다.―p.29 언젠가부터 릴라는 '예전에'라는 표현에 집착했다. 학교에서든 학교 밖에서든 말이다. 난 릴라가 단순히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 일들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일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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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뮬라시옹일상/book 2018. 6. 17. 23:55
이제는 지도가 영토에 선행하고―시뮬라크르들의 自轉―심지어 영토를 만들어낸다. 오늘날에는 영토의 조각들이 펼쳐진 지도 위에서 서서히 썩어들고 있다. 지도가 아닌 실재의 잔해들이 여기저기, 제국의 폐허가 아니라 우리의 폐허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실재 그 자체의 폐허에 이른 것이다. ···이젠 더 이상 지도나 영토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인가가 사라져버렸다 : 추상의 매력을 낳았던, 어떤 것에서 다른 것 사이에 개재되었던 지고의 이 사라져버렸다. 지도의 서정과 영토의 매력, 개념의 마술과 실재의 매력을 낳는 것은 다름이기 때문이다. 지도와 영토를 이상적으로 일치시키려는 지도 제작자들의 광적인 계획 속에서 절정을 이루고 또 수그러든 재현적 상상 세계는 시뮬라시옹 속에서 사라진다. 이 시뮬라시옹의 작용은 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