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없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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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말 걷기의 기록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23. 3. 25. 12:00
벚꽃이 3월부터 폈던가, 일하는 곳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벚꽃이 만개했다. 재작년에는 벚꽃을 학교에서 보았고, 작년에는 프랑스에 있느라 벚꽃을 보지 못하고 봄을 넘겼다. 새로운 직장 생활에 적응도 필요했지만 집안의 크고 작은 경조사를 챙기느라 주말에도 쉬지를 못해 연초 몸이 성하질 않았다. 이제 봄이 오고 벚꽃이 핌으로써 시간의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가는 것 같지만, 그마저도 3월부터 서두르는 꽃망울들을 보니 마음이 벌써 쫓기는 듯하다. "모든 여행은 정확히 그 속도만큼 따분해진다." 최근 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루소는 타고난 산책가였다고 한다. 5G를 쓰고 우주 여행이 시작된 속도의 시대에 걷기라는 행위는 다른 어떤 수단을 통해 가급적 대체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다만 앞선 존 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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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호수주제 없는 글/印 2022. 12. 26. 22:02
# 한번은 친구가 내게 말했다, 너는 호수같은 친구였다고. 바다같이 넓은 마음, 바람처럼 변덕스런 마음, 해바라기처럼 한결같은 마음 등등 귀에 익을 법한 하고많은 표현을 제쳐두고 나를 '호수'에 빗댄 친구의 말을 들으면 속으로 조금 비웃었던 것 같다. 호수라는 낱말 뒤에 친구가 붙인 형용사는 고요함, 흔들리지 않음, 늘 그 자리에 있음 따위의 것들이었고, 나는 다시 한번 속으로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호수같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내 안에는 항상 정체를 알 수 없는 회오리가 있었다. 그 회오리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을 만큼 거셌고 내 마음을 아프게도 했다. 그래도 그가 보기에 내가 호수같았다면, 어느 누군가에게는 콩코드 호수가 되어주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 올해는 가을이 길어진 만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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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만남에 대한 기록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22. 12. 21. 11:27
# 학부 시절 교내 박물관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만났다. 약속장소인 강남역은 잘 정돈된 도로에도 불구하고 항상 인파로 붐벼서 이곳에서는 방향감각을 곧잘 잃곤 한다. 역에 늦게 도착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역 안에서 우왕좌왕하다 5분 정도 약속장소에 늦었다. 모임이라고는 하지만 셋이서 만난 조촐한 만남이었는데 오랜만에 얼굴을 보니 무척이나 반가웠다. 학생 때의 얼굴과 크게 달라지지 않아 더 반가웠다. 다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각자의 길을 묵묵히 걸으며 살아가고 있었다니 신기하다. 그 중 O 형은 작년 말에 짧게 얼굴을 보긴 했지만, S 형은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 한번 모였었으니 8~9년만에 보는 얼굴들인데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친숙하다. 국밥집에서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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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똥별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22. 12. 15. 17:03
# 간밤에 남쪽에서 올라온 먹구름이 이른 아침부터 눈을 쏟아내고 있다. 나는 어젯밤 하늘이 구름에 서서히 흐려져가는 걸 목이 빠져라 바라보았다. 한밤중 20분 남짓 쌍둥이자리 근처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는 걸 기다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쌍둥이자리 근처에서 둘, 오리온자리 근처에서 하나를 발견했다. 그동안 몇 백 년만에 찾아온다는 우주쇼를 소개하는 기사의 헤드라인을 봐도, 내게는 그저 수많은 인간사와 스캔들 사이에 끼어든 작은 뉴스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 어제 밤사이 유성우가 있을 거라는 글을 우연히 접한 순간, 곧장 점퍼만 둘러입고 밖을 나섰다. 마침 우주쇼가 있을 것으로 예정된 시각이었다. 최근 본가 근처에 새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집 앞에서 눈에 들어오는 하늘의 면적은 반의 반토막이 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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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하는 생활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22. 10. 3. 12:37
나는 우선 아침 시간을 이용해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천오백 원짜리 가성비 있는 커피를 파는 카페든, 오천 원짜리 풍미 있는 커피를 파는 카페든, 아침 시간에 찾는 카페는 언제나 한적하다. 요즘은 수필을 곧잘 찾아 읽곤 한다. 이전에는 소설이나 역사 서적들도 잘 찾아보았지만 두꺼운 책에는 선뜻 손이 가질 않는다. 카페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는 창가 쪽이다. 창가에 앉아 책을 읽으며 한낮의 열기가 서서히 올라오는 걸 바라보는 것도 작은 즐거움이다. 강아지와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다섯 살 난 강아지를 데리고 걷는 코스는 꼭 정해져 있다. 우리집 뒤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 시원한 가로수길을 걷는다. 가로수길이 끝나는 지점에 수풀이 우거진 지점이 있다. 우리집 강아지는 보도블럭보다는 흙이 있는 길을 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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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걷는다는 것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22. 8. 25. 23:06
[도시의 풍경] 서울의 풍경은 해를 거듭할 수록 발전하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대략 2002년 월드컵 때의 서울과 비교하자면, 지난 20년 사이 서울의 거리는 몰라볼 정도로 정갈하게 정비되었고 오래된 건물들은 새롭고 시원한 건물들로 대체되었다. 세종대로나 강남대로, 여의대로를 걷다보면 마천루가 즐비한 해외 유수의 도시가 부러울 게 없다. 성냥갑같던 아파트들도 근래에는 타워형 아파트로 바뀌면서 주거지의 풍경 또한 퍽 달라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보행습관] 아이러니한 점은 지난 10년간 사람들의 보행습관은 눈에 띄게 나빠졌다는 것이다. 나날이 번듯해지는 도시의 외관과 달리,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의 보행습관은 때로 참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인도와 횡단보도를 사선으로 걷는 건 기본이거니와,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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