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없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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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화문으로부터주제 없는 글/印 2024. 5. 12. 23:23
“창덕궁은 왕자의 난 이후로 조선시대 실질적인 법궁의 역할을 해왔고…” 앞에 서서 기계적으로 설명을 덧붙인다. 주말이 되면 박물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 시절, 도슨트를 희망하는 관람객이 도착하면 앞에서 으레 ‘조선시대 사실상의 법궁’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문장을 약간씩만 표현을 달리하며 줄줄 읊곤 했었다. 하루는 평일에 생긴 휴일을 이용해 창덕궁에 다녀왔다. 평일이어서 한산하게 둘러볼 수 있겠거니 생각했건만, 알록달록 개량된 한복으로 차려 입은 외국인들로 매표소가 인산인해다. 벌써부터 질리는 풍경이지만 그렇다고 도착한 발걸음을 돌리기도 아쉬워 입장료를 지불하고 돈의문을 통과한다. 마지막으로 창덕궁을 찾은 게 언제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지라, 생전 처음으로 창덕궁을 찾은 것처럼 모든 풍경이 새롭게만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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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부고주제 없는 글/印 2024. 4. 28. 20:08
하루는 엄마를 모시고 이천 산수유 축제에 다녀왔다. 일찍이 답사 차 이 지역을 들르면서 알게 된 행사로, 수도권에서는 가장 먼저 열리는 꽃축제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산수유(山茱萸)는 아파트 단지 안에서나 자투리 공원에서 곧잘 보이곤 하지만, 봄의 대명사 벚꽃에 밀려 그 수수함조차 알아차리기 힘든 나무다. 개나리의 노랑, 올리브의 초록, 레몬의 노랑이 절묘하게 배합된 산수유꽃이 늦은 오후의 햇빛을 받아 헤아리기 어려운 색을 발하고 있었다. 사실 이날 산수유꽃의 색깔은 도무지 마음에 와 닿지가 않았다. 정돈되지 않은 가로수길에는 행락객이 여념 없이 봄기운을 찾아 사진을 남기고 있었고, 길 옆 가판에는 버섯이며 들기름이며 장날처럼 물건을 팔러 나온 지역민들이 분주히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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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한 마음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24. 3. 31. 11:28
# 다사다난했던 29일의 금요일 아침은 우중충한 날씨와 함께 시작됐다. 주초까지만 해도 이번 금요일 날씨는 맑음이었건만 월화수목 날을 거듭할수록 금요일의 일기예보가 나빠졌다. 심각한 황사와 미세먼지, 비 예보까지 겹친 것. 날씨에 이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만큼 아침부터 기분이 나빠진 건, 올해 들어 약 2개월 넘게 준비해 온 한 프로그램 기획 때문이었다. 첫 촬영일에 지금껏 본 적 없는 터무니 없는 날씨라니. # 저녁에는 생애 세 번째로 야구장을 찾았다. 스포츠 관람을 좋아하진 않지만, 들뜬 기분으로 일정을 고르는 친구들을 보며 빠지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우리가 예매한 자리는 경기장 중앙의 외곽, 두 팀의 경기와 응원전이 훤히 보이는 자리였다. 예보대로 오후가 되며 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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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3일의 기록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23. 12. 23. 11:33
겨울이 되면서부터는 거의 블로그에 글을 남기지 못한 것 같다. 연말이 되면서 업무가 늘어난 것도 있고, 인사이동으로 인해 있던 사람이 떠나고 새로운 사람이 오면서 달라진 분위기에 적응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 그야말로 전격적인 인사이동이었고, 이 와중에 다행이라 해야 할지 내 옆에 앉게 된 선배는 까칠하지만 챙겨주는 츤데레 스타일이다. 저녁에는 공부하러 학교에 다녔는데, 한번은 일까지 늦게 끝나 택시를 타고 부랴부랴 학교에 간 적이 있다. 교수님은 공부를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나를 나무라셨다. 일을 하면서 사람과의 트러블로 인해 단단히 화가 난 적도 있지만, 그때는 돌이킬 수 없었던 일도 불과 일주일이 되니 무뎌진다. 다시 생각을 해봐도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손쓸 수 있는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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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어려운 것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23. 11. 21. 23:32
그리고 남은 것.. 나만의 리듬, 나만의 스텝, 나만의 선율대로, 기만 없이 딱 공명하는 만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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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晩秋)의 내장(內藏)주제 없는 글/印 2023. 11. 13. 21:21
올해 첫눈은 내장산에서 맞이했다.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0도를 오르락 내리락 하던 이번 주말 단풍을 구경하러 정읍에 다녀왔다. 갑자기 초겨울 날씨가 된 이번 주 전까지만 해도 11월 날씨가 맞나 싶을 정도로 따뜻한 날씨가 이어졌고, 서울만 하더라도 아직까지 새파란 은행나무가 남아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나는 막연히 내장산에 단풍나무도 꽤나 남아 있겠거니 생각했더랬다. 그렇게 해서 찾아간 내장산에서 날 맞이한 건 싸락눈이었으니.. 단풍지도를 확인했던 건 9월말경, 단풍시즌에 맞춰 한창 촬영시점을 조율하던 때였다. 단풍지도에 따르면 내장산은 11월 6일에 절정을 맞이하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내장산보다 한참 남쪽에 자리한 한라산은 내장산보다도 더 빠르게 단풍이 찾아올 예정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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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慶州), 흐린주제 없는 글/印 2023. 10. 14. 08:08
최근 K의 추천으로 라는 드라마를 봤다.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편인데, 는 에피소드당 러닝타임이 20분 남짓이어서 심심풀이로 하나씩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이 드라마는 내가 요새 주말에 짧은 일정으로 국내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있다고 말하자, K가 비슷한 내용을 그린 드라마가 있으니 한번 보라고 권해준 것이었다. 의 소재는 '딱 하루만 여행 다녀오기'인데, 국내를 가더라도 가급적 1박을 하는 내 여행보다도 더 짧은 일정이다. 경주로 출발하던 날도 그랬는데,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기 싫던 날 (그렇다고 집에 콕 박혀 있기도 싫던 날) 이르지도 않은 오전 시간에 간단히 짐꾸러미를 챙기면서 아직까지 경주에서 1박을 할지 말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전에 본 가 떠오르면서, 당일치기로 여행을 다녀온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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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처럼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23. 10. 3. 12:03
개천절까지 이어진 긴 추석 연휴다. 연휴 직전까지 뜨거웠던 낮의 햇살도 10월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청량한 가을 공기로 차갑게 식었다. 긴 연휴 동안 나는 본가에 머물며, 어릴 때부터 줄곧 살아온 동네를 떠나지 않는 일상을 보냈다. 집을 찾아온 동생 부부와 포켓볼을 치고, 점심을 먹으러 양평에 다녀온 것을 빼곤, 오전에는 카페에서 글을 읽고 오후에는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날들을 보냈다. 그것도 아니면 티비로 아시안 게임을 보는 식이었다. 그것만 해도 하루가 끝날 때쯤이면 꽤나 피곤한 상태가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연휴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어떻게든 여행을 다녀왔을 것이다. 하지만 뒤늦게 여행 계획을 세우기에는 금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빠듯하기도 했거니와, 그냥 가만히 그리고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