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없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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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날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23. 9. 11. 19:57
지오디 콘서트에 다녀왔다. 콘서트 전날까지도 누구랑 갈지를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가, 동생과 엄마를 모시고 콘서트장에 합류했다. 오전에 수업이 있었던 나는 피곤한 상태였지만, 아마 장거리 운전을 해야했던 동생이 더 피곤했을 것이다. 그래도 가족을 대동하고 가길 잘 했다 싶었던 것이, 나나 동생이야 지오디 세대라고는 하지만 지오디를 잘 알 리 없는 엄마도 엄청 좋아하셨다는 점이다. 엄마를 안 모시고 왔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정도였다. 푸드트럭에서 곱창과 생맥주를 사들고 잔디밭에 돗자리를 폈다. 입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늘색으로 된 셔츠나, 바지, 바람막이 등을 하나씩 걸치고 있었다. 공연시각이 되고 거대한 LED 판이 좌우로 갈라지면서 무대가 등장했다. 이번 콘서트는 'ㅇㅁㄷ지오디'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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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이사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23. 8. 26. 10:38
최근에 이사를 했다. 늘 그렇듯이 짐이랄 게 정해져 있고 많지도 않다. 그 중에 늘 껴 있는 건 찰스 에베츠의 커다란 흑백사진 벽보도 있다. 어쨌든 짐은 단출한데, 또 언제나 그렇듯이 이사 후에 짐이 정리되는 느낌이 드는 것도 아니다. 어느 정도는 필요한 것들을 새로이 사들여야 할 텐데, 넓지도 않은 집에 더 많은 물건을 들이기가 꺼려지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고민하다가 책장으로 쓸만한 선반을 하나 중고거래로 사들였다. 새까만 2단 철제 선반이다. 가운데 선반이 강화유리로 되어 있어서 좁은 방에서도 시야를 가리지 않는 시원한 디자인이다. 나는 장대비가 오락가락 하는 어느 저녁에 이 녀석을 사들고 30분 거리를 낑낑대며 걸어왔다. 거래한 장소에서 손에 들고 갈 수 있을 만큼 물건을 곧바로 분해한 뒤 준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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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 이야기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23. 8. 10. 08:53
하루는 자주 찾는 카페에 갔다가 만석이어서 별 수 없이 바로 옆 공원 정자에 잠시 앉았다. 비가 걷힌 뒤 푹푹 찌는 듯한 날씨였다. 그늘 아래 몸을 숨기고 넋놓고 앉아 있는데, 정자 위 마루에서 페트병으로 장난치는 아이의 소리가 들려왔다. 이 더위에 얼마나 넋을 놓고 있었던지 내가 오기 전부터 있던 아이인지 내가 오고 나서 나타난 아이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옆에는 웬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는데, 내게 다가와 연신 살갑게 부대낀다. 아마 나한테서 강아지 냄새가 나서일 수도 있고 천성이 사람을 좋아하는 강아지일 수도 있다. 그 품이 예뻐서 나도 놀아주게 된다. 사내 아이는 물이 반쯤 담긴 페트병을 던지며 노는 데 여념이 없다. 내가 강아지 나이를 물으니 그제서야 8개월이라고 짧게 답한다. 이름은 라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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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숲과 안반데기주제 없는 글/印 2023. 7. 31. 20:31
오늘은 필름카메라보다 디지털카메라에 손이 가는 날이다. 아직 사놓은 필름 여분이 있지만, 오늘은 마음이 지시하는 대로 디지털카메라를 집어들었다. 디지털 카메라와 함께 염두에 두었던 여행을 가보마 하고. 여행이라 거창한 이름을 붙이기엔 반일짜리 당일치기였지만, 서울을 오고가는 일은 긴 여행과 똑같은지라 금전적 부담 때문에 갈지말지 잠시 망설여졌다. 작년 반 년간 프랑스에 체류한 이후로 국외 여행보다 국내 여행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 올해 들어서 보름에 한 번 꼴로 서울을 벗어나 여행을 하고 있는 터였다. 행선지는 있지만 계획은 없다. 나는 예매 어플을 몇 차례 새로고침한 끝에 진부(오대산)행 열차 티켓을 하나 끊었다. 점심을 든든하게 먹어두고 싶었지만, 피서철 서울역은 어느 가게를 가도 사람으로 미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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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元曉)주제 없는 글/印 2023. 7. 28. 18:17
비가 갠 하루는 퇴근길에 자전거를 타고 원효대교로 나갔다. 영화 의 주된 무대이기도 한 원효대교는 별로 이용해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도보로 연결되는 진입로를 가까스로 발견, 난간이 달린 계단을 따라 원효대교에 올라섰다. 해를 등진 여의도의 마천루는 희뿌옇게 빛을 잃어 하나의 거대한 톱니바퀴가 되어 있었다. 맞은 편 용산 일대의 풍경만이 햇병아리처럼 노랗게 익어간다. 한강 위로는 비가 그친 하늘을 가로지르는 갈매기들이 삼삼오오 떼지어 앉을 자리를 찾는다. 일부는 한강 수면 위에 그대로 주저앉고, 개중 일부는 어지럽게 들어선 다리 위 가로등이나 송신선 위에서 자세를 고쳐 앉는다. 마포대교보다 폭이 좁은 다리 위로 크고 작은 차량들이 곁을 주지 않고 분주하게 앞을 달린다. 여의도의 풍경이 멀어지고 용산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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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바다들―서해주제 없는 글/印 2023. 6. 21. 00:09
# 시화(始華)의 바다는 따뜻하다. 바다 정면으로는 뭉툭한 바위섬이 올라 있고, 하늘에는 그대로 멈춰버린 연들과 분주한 갈매기들이 서로 다른 종류의 선을 그린다. 시화호 위로 에메랄드 색으로 페인트칠을 해놓은 송신탑이 도시로 도시로 끝없이 뻗어 있다. 그리고 바다 위로 늦은 오후의 태양이 아낌없이 떨어진다. # 오이도(烏耳島)의 바다는 혼잡하다. 땅딸막한 등대가 자리한 정방형의 항구에는 수산식당이 즐비하고 그 앞에는 주차된 차량이 빼곡히 늘어서 있다. 그리고 호객하는 직원들의 손짓. 부두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흔히 보이고, 조악하게 장식된 꼬마열차가 뱀처럼 가장자리를 누빈다. 그 복잡한 풍경 속에 저 멀리 인천 일대의 높다란 건물들이 두꺼운 띠를 이루며 희뿌옇게 바라다보인다. # 궁평(宮坪)의 바다는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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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사(麻谷寺)주제 없는 글/印 2023. 6. 9. 08:51
서울을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하늘에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는데, 곡두터널을 지날 즈음에는 두터운 구름이 걷혀 있었다. 곡두터널은 천안과 공주시를 이어주는 짤막한 터널이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린 차는 천안을 빠져나온 뒤부터 내내 구불구불 국도를 달렸다. 차머리 위로 흘러가는 나뭇잎은 벌써 한여름을 예고하고 있었다. 내가 이날 향한 곳은 마곡사였다. 내가 마곡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산사'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의 일이다. 안동을 여행하던 중 우연히 봉정사라는 곳을 찾게 되면서 산사의 존재를 알았다. 우리나라에 산 속에 자리잡은 사찰이야 한두 곳이겠냐마는 나는 이때의 여행을 계기로, 영주의 부석사와 보은의 법주사를 차례차례 찾았다. 경상남도와 전라남도 지방에 자리한 통도사와 선암사, 대흥사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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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바다들—동해주제 없는 글/印 2023. 6. 5. 00:33
# 망상(望祥)의 바다는 몽롱한 은빛 하늘로 인해 푸르름이 바래 있었다. 그럼에도 동해안에서도 큰 축에 속하는 해수욕장인지라, 때 아닌 더위를 피하기 위해 해안가 앞에 파라솔을 펼치고 진치고 있는 행락객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피서철 대목을 준비하는 상점가에서도 슬슬 분주함이 느껴졌다. # 나곡(羅谷)의 바다는 하천이 끝나는 지점에 대롱대롱 매달린 형상의 외진 해안이다. 해안가가 넓다고 할 수도 없고, 그마저도 들쑥날쑥 솟아오른 바위들로 인해 해안선이 흐트러져 있다. 그런 한적한 해안가에서 대여섯 명 정도가 바다낚시를 즐기고 있다. 사장(沙場)을 복원하기 위함인지 모래더미가 한가득 쌓아올려진 이곳은 방비되지 않은 채 버려진 곳 같기도 하다. # 구산(邱山)의 바다를 나는 좋아한다. 월송정의 서사는 고려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