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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에서 양양까지여행/2022 겨울 7번 국도 2022. 12. 31. 13:36
무계획으로 온 여행에서 두 번째 날, 내가 정해놓은 막연한 목표는 울진이나 동해에서 일정을 마무리해보자는 것이었다. 전날 서울에서 고성까지 움직인 거리를 감안하면, 고성에서 울진 또는 동해까지 움직이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간에 어떤 일정을 끼워넣느냐에 따라서 종착지가 달라질 것 같았다. 결국 이날 일정은 동해시에서 끝이 났는데, 그것도 가까스로 도착했다. 고성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두 번째 날은 마침 주말이었고 연말이 겹치면서 유명 관광지마다 생각보다 인파가 넘쳐났다. 사람이 많거나 정체가 심한 곳들을 피해 움직이다보니 시간이 더 소요되었다. 여하간 두 번째 날 나의 첫 번째 소소한 목표는 아침 일출을 보는 것이었다. 바닷가에 접한 숙소 테라스에서 동해의 해가 또렷하게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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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에서 고성까지여행/2022 겨울 7번 국도 2022. 12. 30. 22:22
유난히 눈이 잦은 올 겨울, 새로운 일을 앞두고 주어진 2주간의 여유 시간을 활용해 잠시 여행을 다녀올 만한 곳을 고민하다가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여행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무계획으로 출발한 여행. 처음에는 부산에서 고성으로 올라갈까, 고성에서 부산으로 내려갈까 고민하다가 북에서 남으로 이동하는 걸 택했다. 그러자면 서울을 출발해 강원도의 굽이굽이 산길을 가로질러야 한다. 좁은 국도에는 아직 빙판길이 남아 있을까 걱정했지만, 도로 상태는 양호했을 뿐만 아니라 염화칼슘을 너무 뿌린 나머지 아스팔트 도로가 뿌연 잿빛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해서 이번 여행은 모처럼 차를 타고 떠났다. 우리나라의 여러 지역 가운데 강원도는 개인적으로 가장 친숙한 곳 중 하나인데, 특히 강원도의 최전방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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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없는 삶일상/film 2022. 12. 28. 18:19
온풍기 앞에서 노곤노곤 꾸벅꾸벅 졸면서 관람한 영화라 리뷰다운 리뷰를 남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영화는 어쩐지 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La vie devant soi)』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었다. 레오(Léo)라는 꼬마는 스스로를 레올로(Léolo)라고 명명한 자신만의 세계에서 자신을 둘러싼 병적인 여건을 통과할 수 있는 해방구를 찾아나간다. 레오 가족의 병적인 모습들은 레오로 하여금 어린 아이다운 발랄한 상상력을 자극하기보다는 어두침침한 은신처로써의 뒤틀린 환상을 부추긴다. 변기 위에 올라앉아 '밀어 내(Pousse)!'라며 고함치는 레오의 엄마, 레오가 익사 직전에 이르기까지 그의 머리를 물에 처박는 할아버지, 동네 깡패에게 겁박을 당한 뒤 근육을 키우는 데 강박을 가지고 있지만 정신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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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호수주제 없는 글/印 2022. 12. 26. 22:02
# 한번은 친구가 내게 말했다, 너는 호수같은 친구였다고. 바다같이 넓은 마음, 바람처럼 변덕스런 마음, 해바라기처럼 한결같은 마음 등등 귀에 익을 법한 하고많은 표현을 제쳐두고 나를 '호수'에 빗댄 친구의 말을 들으면 속으로 조금 비웃었던 것 같다. 호수라는 낱말 뒤에 친구가 붙인 형용사는 고요함, 흔들리지 않음, 늘 그 자리에 있음 따위의 것들이었고, 나는 다시 한번 속으로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호수같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내 안에는 항상 정체를 알 수 없는 회오리가 있었다. 그 회오리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을 만큼 거셌고 내 마음을 아프게도 했다. 그래도 그가 보기에 내가 호수같았다면, 어느 누군가에게는 콩코드 호수가 되어주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 올해는 가을이 길어진 만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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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트 왓슨 展주제 있는 글/Arte。 2022. 12. 22. 11:01
지난 주부터 눈이 오락가락하면서 홀가분히 여행을 떠나기도 어려운 요즘, 2주 남짓 온전히 내게 주어진 자유 시간을 어떻게 써야 좋을지 고민스럽던 차에 우연히 TV의 문화코너에서 알버트 왓슨 전이 소개되고 있는 걸 보았다. 원래 알던 작가는 아니었지만 그가 촬영한 몇몇 사진을 보니 미디어에서 자주 접했던 사진이 많아 전시회를 둘러볼 만하겠다고 생각했다. 전시회에 소개된 그의 작품은 다양했다. 패션잡지 보그의 사진작가로 명성을 쌓은 만큼 일단 프라다, 아르마니, 리바이스 등 유명브랜드를 연출한 사진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다음으로 유명인사의 사진을 빼놓을 수 없다. 알프레드 히치콕, 스티브 잡스, 잭 니콜슨, 앤디 워홀, 나오미 캠벨 등의 사진이 있는데, 이들 사진들은 작가가 누군지는 몰랐어도 많은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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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만남에 대한 기록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22. 12. 21. 11:27
# 학부 시절 교내 박물관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만났다. 약속장소인 강남역은 잘 정돈된 도로에도 불구하고 항상 인파로 붐벼서 이곳에서는 방향감각을 곧잘 잃곤 한다. 역에 늦게 도착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역 안에서 우왕좌왕하다 5분 정도 약속장소에 늦었다. 모임이라고는 하지만 셋이서 만난 조촐한 만남이었는데 오랜만에 얼굴을 보니 무척이나 반가웠다. 학생 때의 얼굴과 크게 달라지지 않아 더 반가웠다. 다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각자의 길을 묵묵히 걸으며 살아가고 있었다니 신기하다. 그 중 O 형은 작년 말에 짧게 얼굴을 보긴 했지만, S 형은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 한번 모였었으니 8~9년만에 보는 얼굴들인데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친숙하다. 국밥집에서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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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똥별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22. 12. 15. 17:03
# 간밤에 남쪽에서 올라온 먹구름이 이른 아침부터 눈을 쏟아내고 있다. 나는 어젯밤 하늘이 구름에 서서히 흐려져가는 걸 목이 빠져라 바라보았다. 한밤중 20분 남짓 쌍둥이자리 근처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는 걸 기다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쌍둥이자리 근처에서 둘, 오리온자리 근처에서 하나를 발견했다. 그동안 몇 백 년만에 찾아온다는 우주쇼를 소개하는 기사의 헤드라인을 봐도, 내게는 그저 수많은 인간사와 스캔들 사이에 끼어든 작은 뉴스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 어제 밤사이 유성우가 있을 거라는 글을 우연히 접한 순간, 곧장 점퍼만 둘러입고 밖을 나섰다. 마침 우주쇼가 있을 것으로 예정된 시각이었다. 최근 본가 근처에 새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집 앞에서 눈에 들어오는 하늘의 면적은 반의 반토막이 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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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and Let Die일상/film 2022. 12. 12. 16:05
오랜만에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작품을 보고 왔다. 이후 그의 두 번째 로맨스 영화다. 두 작품 모두 폴 토마스 앤더슨 특유의 코믹적 요소와 독특하고 기발한 구성이 눈에 띤다. 다만 의 주인공들의 나이가 더 어리고—극중 개리는 15살로 25살 알라나를 꼬시는 것으로 나온다—영화의 배경도 1970년대 캘리포니아여서인지 영화가 전반적으로 더 풋풋하고 아련한 느낌이 있다. '개리' 역을 맡은 쿠퍼 호프먼은 필립 시모어 호프먼의 아들로 를 통해 데뷔했다는 걸 관람한 후에야 알았는데, 뒤늦게 그의 이목구비와 다부진 말투에서 필립 시모어 호프먼을 떠올릴 수 있었다. 한편 영화에서는 '리코리쉬 피자'의 뜻을 추론할 만한 단서가 나오지 않는다. '리코리쉬 피자'는 70년대 남캘리포니아에 실재하던 레코드샵을 가리키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