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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일상/book 2022. 11. 11. 23:25
……본래 하비히츠부르크는 매와 무관했을 것이고, 대신에 얕은 여울이나 항구를 가리키는 독일어인 Hafen과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합스부르크라는 이름은 조상의 뿌리를 기억하는 일이 유행하던 18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다시 나타났고, 실러의 유명한 역사 담시 「합스부르크 백작」에 힘입어 널리 통용되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생물학적 행운과 또 다른 포틴브라스 효과의 순간을 만나게 되었다. 오스트리아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생존이 전부인 때에 누가 승리를 이야기하는가?”라고 물었다. 초창기 합스부르크 가문이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생존이었다. ……당초 합스부르크 가문은 오스트리아를 통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몰랐겠지만, 오스트리아는 합스부르크 가문을 통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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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하여(برای)일상/music 2022. 11. 9. 17:38
برای توی کوچه رقصیدن 거리에서 춤을 추기 위하여 برای ترسیدن به وقت بوسیدن 입맞출 때의 두려움을 위하여 برای خواهرم، خواهرت، خواهرامون 내 자매, 당신의 자매, 우리의 자매를 위하여 برای تغییر مغزها که پوسیدن 썩은 두뇌를 바꾸기 위하여 برای شرمندگی، برای بیپولی 빈곤의 부끄러움으로 인하여 برای حسرت یک زندگی معمولی 평범한 일상을 그리워하기 위하여 برای کودک زبالهگرد و آرزوهاش 쓰레기를 뒤적이는 아이들과 그들의 꿈을 위하여 برای این اقتصاد دستوری 전횡적인 경제로 인하여 برای این هوای آلوده 더러워진 공기로 인하여 برای ولیع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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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일상/book 2022. 11. 8. 12:08
……하찮은 내 목숨 열개와 바꾸어도 아깝지 않을 백수, 젊고 아름다운 그 아이의 죽음은 그 부당한 의심에 대한 벌이었다. 아, 평생의 후회로도 그 죄를 씻을 수 없구나. 슬프다. 슬프고 슬프구나. 내가 궁금해했던 것을 지금 곧 알게 될 것이다. 사람이란 죽을 때 등잔에 기름이 다해 불이 꺼지듯, 방 안의 전등이 꺼져 암흑에 잠기는 것처럼 의식이 스러지면 모든 것이 그만인 것인가. 그럴 것이다. 그러하리라. —p. 163 지금 내 주위에는 얼빠진 망령들이 가득하다. 이들은 운 좋게 이곳을 빠져나간다 해도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는 짐 덩어리, 암 덩어리가 되어서 부적응자로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평생, 지루하기 짝이 없는 한평생을 그저 주어진 시간을 흘려보내는 미물처럼. 이들은 패배자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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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느헤미야·에스더일상/book 2022. 10. 29. 21:48
[스 10:2-4] 엘람 가문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대표로 에스라에게 말했다. “우리가 주변 민족의 외국인 여자들과 결혼하여 우리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다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이스라엘에 희망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모든 외국인 아내와 그 자녀들을 내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당신의 말대로, 하나님의 계명을 존중하는 사람들의 가르침대로 따르겠습니다. 계시에 명시되어 있으니 그대로 시행하겠습니다. 에스라여, 이제 일어나십시오. 우리가 뒤를 따를 테니 앞장서십시오. 물러나지 마십시오.” [느 4:15-18] 원수들은 우리가 그들의 계략을 모두 알고 있다는 것도, 하나님께서 그 계략을 무산시키셨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다시 성벽으로 돌아가 작업에 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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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일상/book 2022. 10. 28. 12:53
처음엔 책을 재미있게 읽다가 도중에 현기증이 오는 것 같았다. 화자가 아주 이성적인 톤으로 복수(複數)의 자아에 대해 집요하게 분석하기 때문이다.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는 글들보다도 오히려 읽기가 까다로웠던 것 같다. 내가 바라보는 제1의 나, 제2의 나, 제3의 나가 끊임없이 나온다. 그렇다고 서사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서사가 있다. 그래서 다행스럽게도 절반을 더 읽고나서부터는 어느 순간 작가가 말하려는 걸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고, 그 이후부터 다시 재미있게 읽기 시작했다. 글의 주제는 결국 다음과 같다. 현재를 사는 순간 나는 나를 알아볼 수 없다, 내가 나를 관찰하려는 순간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유리(遊離)된다, 나를 관찰하려는 순간에 발견하는 나는 나를 관찰하려는 나일 뿐 있는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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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문 우크라이나일상/book 2022. 10. 24. 13:30
사실 나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이 우크라이나 전쟁일 뿐, 이 세상에 전쟁은 얼마나 흔하디흔한가. 아프리카의 내전, 라틴아메리카의 마약 전쟁, 중국의 위구르 탄압… 프랑스에 머무르는 동안 우크라이나 전쟁이 개전되었고, 시내에서 프랑스인들이 반전 시위하는 것을 보면서도 어딘가 위선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의 천연자원 공급이 어려워지고, 러시아라는 강대국이 직접 전쟁에 가담하면서 세계질서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자, 그제서야 이 전쟁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이 책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피상적인 지식 이상의 것을 얻어보고 싶다는 읽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사회는 ‘조각보’처럼 복잡한 문화—동방 정교회와 가톨릭 정교회의 종교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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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폴린일상/film 2022. 10. 20. 16:48
Qui trop parole, il se méfait. Chrétien de Troyes, Perceval 최근 에릭 로메르의 작품들이 재개봉했길래, 무턱대고 이라는 작품을 보고 왔다. 1983년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지금 봐도 아무런 위화감이 없다. 말 많고 탈 많은 로맨스 영화로, ‘말이 많은 자, 화를 자초한다(Qui trop parole, il se méfait)’는 12세기 프랑스 시인의 문구와 함께 시작한다. 에릭 로메르의 영화가 늘 그러하듯 촌철살인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술술 발설하는 배우들과, 도입부의 글귀대로 말로 인해 손해를 보는 등장인물들의 얽히고설킨 로맨스가 펼쳐진다. 영화의 제목에 등장하는 폴린은 15세 소녀로 영화에서는 대개 조용한 관찰자처럼 나타난다. 사촌언니 마리옹과 함께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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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의 일기(上): 모나코(Monaco)Vᵉ arrondissement de Paris/Juin 2022. 10. 15. 15:14
이튿날 내가 향한 곳은 모나코다. 이탈리아 국경에 자리한 벤티밀리아(Ventimiglia) 행—프랑스 명칭 벙티밀(Ventimille)—열차를 타면 멍통(Menton)에 도착하기 전 모나코에 다다른다. 이 즈음부터는 카메라의 메모리가 부족해서 사진 일부를 삭제했는데, 최근 사진을 찾다보니 모나코에서 리옹에 이르는 약 사흘간의 사진기록이 사라졌다. 다행히 드문드문 휴대폰으로 남긴 사진이 있어 그때의 여정을 되짚어볼 수 있었다. 이러나 저러나 모나코에서부터는 여행을 즐기기보다는 여행을 그 자체를 위한 맹목적이고 기계적인 여행이 되어서, 이틀 뒤 리옹에 이르러서는 여행을 더 연장할 수 없다고 판단, 파리에 되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한국으로 귀국하는 비행편 일정을 2주일 정도 앞당긴 것도 이날의 일이다. 벤티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