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
Prologue. No More Hiroshima여행/2017 일본 히로시마 2017. 7. 29. 21:21
아직도 2011년 3월 11일의 기억이 생생하다.TV 화면에 실시간으로 흘러나오는 비현실적인 풍경을 강건너 불구경하는 기분으로 바라본 기억이 있다.동일본 대지진(東日本大震災)이라고도 불리는 이날의 재앙은 정부 차원에서 손쓸 수 없는 수준의 자연재앙이었고, 실제로 모든 후속조치는 졸속으로 이뤄졌다는 걸 언론―그마저 비공식적인 자료들이 완전 공개된 것은 아니겠지만―을 통해 알게 되었다.하지만 그 때까지도 세슘이니 피폭이니 하는 것들은 여전히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그리고 어느 순간 생각했다.더 이상 일본은 갈 수 없겠구나 하고.2박 3일 도쿄를 둘러봤던 기억도, 9일간 간사이 지방에서 친구와 함께 남겼던 추억들도 일순간 너무나 오래된 과거처럼 느껴졌다. 2015년이 되어 벨라루스 출신 저널리스트..
-
피서(避暑)여행/2017 초여름 영월 2017. 7. 24. 00:50
고씨동굴로 이어지는 다리 다음날 일정은 고씨 동굴이었다. 전날 청령포를 끝으로 첫날 일정을 마친 뒤, 나와 아버지는 이곳의 명물이라는 메기 매운탕과 냉면에 소주를 마셨다. 딱 성수기를 눈앞에 둔 비수기인지라 열려 있는 식당도 몇 안 되었고, 그나마도 손님은 우리 뿐이었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곳곳에 종교적인 문구가 걸려 있는 식당이었는데, 아주머니는 최대한 성심껏 우리를 대해 주셨다. 식사를 해결한 뒤에는 인근 펜션에서 매우 저렴한 가격에 하룻밤을 묵었다. 창문 너머 바베큐 요리를 하는 사람들의 왁자한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오른편으로 바라본 영월 풍경 이건 왼편 전날 냉면을 맛있게 먹었던 지라, 같은 가게에서 또 냉면을 아침으로 먹었다'a'.. 여전히 맛있었음. 오늘 오전 일정으로 아버지와 내가 가..
-
대화(對話) 3 : 인생(人生)여행/2017 일본 히로시마 2017. 7. 23. 22:23
"M군, 10년 뒤 꿈이 뭐야?""지금 일하는 회사의 해외지사에서 새 판로를 뚫고 싶어."국제개발협력을 공부하려고 아프리카의 케냐와 탄자니아를 다녀온 적도 있다는 걸 보면, M군은 국제적인 활동에 관심이 많은 것이 분명해 보인다. S상은 과장된 말투로 M군에게 진심이냐고 놀렸지만, 나는 M군의 말이 방금 지어낸 빈말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사실 무엇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아요. 일본의 경우 인구감소로 최근 취업상황이 많이 바뀌었지만, 한국의 경우 취업시장이 일본보다 훨씬 안 좋거든요. 취업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반년간 정말 열심히 준비했어요. 하지만 왜 열심히 하는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는데, 주변에 먼저 취업한 친구들을 보면 야근에 시달리고 전혀 행복해 보이지가 않았거든요. 그래도 ..
-
대화(對話) 2 : 후쿠시마(福島)와 다케시마(竹島)여행/2017 일본 히로시마 2017. 7. 21. 03:06
#후쿠시마(福島)"K상 그거 아나? 어느 월드컵에서였던가, 한국인들이 플래카드에 '쓰나미 축하합니다(津波おめでとう)’라 쓴 거. 일본사람들 그 때 상처받았어."나도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아도 지나가는 뉴스로 잠깐 본 기억이 있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아무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성보다는 감정에 앞서니까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비중있는 뉴스가 아니어서 사실 자세한 내용은 몰라요."당황해서 중언부언했던 것 같다."그게 미디어의 문제야. 한국에서는 당연히 큰 뉴스가 아니었겠지. 그렇지만 (우리에 대한 악감정이) 이 정도인 건가 하고 생각했어. 미디어로 치자면 여기 언론에서도 아베 스캔들이 터지든 어떻든 미디어에서는 지지율이 높다고 보도하거든. 하지만 다들 일이 잘못 흘러 가고 있다는 걸 알아. 그렇지..
-
대화(對話) 1 : 역사(歷史)여행/2017 일본 히로시마 2017. 7. 21. 01:14
"'아소(阿蘇)'의 '아', '쓰나미(津波)'의 '쓰'..."대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8시를 조금 넘긴 늦은 저녁이었다."일본사람들은 모두 평화주의자야. 이런 정신력으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구. 뭘하든 젊은 일본사람들은 반드시 지고 말 게 분명해. 안그래 M군?"S상의 기습적인 질문에 놀란듯, 잠시 M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머뭇머뭇 마지못해 대답한 M군은 이어서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다. 요코하마 출신으로, 와세다 대학 문학부를 졸업한 이후 유명 맥주업체에 입사하여 영업사원으로 일한지는 2년차라고 했다. 25세에 벌써 2년차의 경력이라니, 뭔가 뒤쳐진 기분이었다."문학부라 쓰고, 천재라 읽는다!"이어지는 S상의 농담. S상은 껄껄 웃고 M군은 머쓱해하는데, 농담이라기엔 재미도 없고 이해도 되지 않았..
-
왕의 숨결 따라여행/2017 초여름 영월 2017. 7. 18. 00:55
장릉 숲길 #1 장릉 숲길 #2 장릉 장릉(莊陵)은 조선왕조 제6대 왕인 단종의 능이다. 왕릉은 당연히 서울·경기 지역에만 있을 줄 알았는데, 강원도 영월의 외딴 곳에도 왕릉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역시나 처음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세조)에 의해 유폐되었는데, 유폐된 곳이 바로 영월이다. (겸사겸사 알아보니 북한에도 조선왕릉이 2기가 있다고 한다. 제릉(태조 신의왕후)과 후릉(정종)이 그것인데, 조선팔도로 따지자면 개성 역시 경기도에 속하니 경기 외 지역에 있는 왕릉으로는 결국 장릉이 유일한 셈이다) 다른 왕릉들이 그러하듯 장릉도 꽤나 언덕진 곳에 자리잡고 있어서 일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장릉 앞에는 무척 오래된 370년 나이를 먹은 느릅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
-
바위 따라 물 따라여행/2017 초여름 영월 2017. 7. 17. 15:53
요선정이 빠꼼히 보이고..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가물 수가 없었는데, 그새 충북지역에 물폭탄이 떨어져서 이제는 비 피해가 심하다고 한다;; 날씨도 중간이라는 게 있으면 좋을 텐데 참...피해지역이 무사히 복구되었으면 좋겠다. 요선정에 올라서니 왼편으로 조각된 불상이 보이는데 꼭 오뚜기 같이 생겼다오른편의 정자는 숙종과 영조, 정조가 사사한 어제시(御製詩)―임금이 지은 시―를 봉안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하는데,파란색깔의 현판이 인상적이었다 불상의 뒤로는 바위에 단단히 들러붙은 소나무가 시원하게 푸른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마저 여행기를 남겨보자면, 우리의 첫 일정은 요선암(邀僊岩)에서 시작되었다. 일명 '돌개구멍'이라고도 불리는 이 계곡의 기암괴석은 아마도 회오리처럼 굽이치는 모양 때문에 그러한 이..
-
Prologue. 영월송(寧越松)여행/2017 초여름 영월 2017. 7. 2. 01:39
올해 충북 내륙지역, 강원도 영서지역과 인연이 있는 것일까, 올봄 이래로 이 지역에 들른 도시만 원주, 충주, 제천, 그리고 이번에는 영월이다.취업이 결정된 뒤, 당분간 여행다니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 1박 2일로 아버지와 영월 여행을 다녀왔다. 영월은 조선의 여섯 번째 왕이었던 단종의 고장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소나무가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극심한 가뭄에 시달려 서강(西江)의 물줄기는 무척 가물어 있었지만, 소나무만큼은 푸른빛이 좔좔 흘러넘쳤다.땅을 딛고 구불구불 위로 뻗은 나무 껍질이 거북 등딱지 같은 모습을 하고서는, 가지 끝끝마다 푸른 그늘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한편 서울 경기 지역에 분포된 나머지 조선왕릉과 달리 유일하게 강원도에 자리잡고 있는 왕릉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영월의 장릉(莊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