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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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의 프랑수아 오종일상/film 2020. 4. 2. 22:23
틈나는 대로 영화관을 가던 게 어려워지면서 요즈음 이런저런 자구책을 찾아보게 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영화관을 운영하는 것뿐만 아니라, 영화를 만들었어도 관객이 없어 스크린에 내걸 수 없다는 것 자체가 정말 큰 문제인 것 같다. 하여간 집에서라도 영화를 보겠다고 맨 처음 시도했던 게 넷플릭스인데, 드라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영화가 너무 빈약하다. 덕분에(?) 이름만 접해보고 본 적은 없던 클래식 영화들―미국 명작들은 얼추 다 갖추고 있는 것 같다―이라도 찾아보고는 있지만 이걸로 충분치는 않다. 그나마 애플TV가 다국적에다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제공하고 있지만, 아직 애플TV가 우리나라에 언제 서비스를 론칭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별도의 플랫폼 없이 아이튠즈 스토어에서 영화 하나를 볼 때마다 렌탈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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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들(Les choses)일상/book 2020. 3. 31. 02:51
사실 이 책을 이렇게 후딱 읽을 줄은 몰랐다. 카페 마감시간을 1시간 반 여 앞두고 140여 페이지 되는 이 책을 휘리릭 읽었다. 속독을 한 건 책을 얼른 읽은 다음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려던 생각에서였는데, 그것도 타이밍을 잃어서 다 읽은 책을 그냥 고스란히 들고 왔다;; 120% 내 상황을 잘 나타내준 소설이었고, 아마 사회초년생이라면 누구나 다 느낄 법한 내용이었다. 사실 묘사가 너무 정확해서, 좀 더 장편소설이거나 아니면 연작이기를 바랐을 정도다. 물질적인 혜택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뿌리부터 부자유하다는 느낌. 소확행을 바라는 것 같지만, 사실은 부자이지 못한 자신에게 습관적으로 분노를 느끼는 일상. 보헤미안처럼 방랑하는 듯하지만, 행여 현재의 일상이 기획한 구조로부터 유리(遊離)될까봐 노심초사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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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세계일상/book 2020. 3. 30. 20:44
팩션(faction)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국내에 라고 소개되었지만 원제가 이다. 독일어로 그냥 ‘망가진 상태’을 뜻하는 두 음절의 간결한 형용사다. 한편 작가의 이름이 상당히 독특한데, 쿠르초(Curzio)라는 이름은 쿠르트(Curt)라는 원래 이름을 어느 정도 살려 쓰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라파르테(Malaparte)라는 필명은 보나파르트 나폴레옹(Bonaparte Napoleon)의 이름에서 차용한 것이다. (아버지의 성씨는 게르만 색채가 물씬 풍기는 주케르트(Suckert)다.) 이는 하나의 말장난으로, 직역하면 ‘좋은 편’이라는 의미의 ‘보나파르트(Bonaparte)’의 반대 의미로 ‘말라파르테(Malaparte)’라는 이름을 고심 끝에 택했다고 한다. 일종의 반테제를 제시하고 싶었던 것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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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春; puberty일상/music 2020. 3. 29. 00:17
가벼워진 건 겉옷 뿐 답답한 마음은 털어낼 수가 없구나. 오늘은 봄 같지 않은 봄에 벚꽃을 살펴보겠다고 숲길에 나온 사람들이 제법 많네. 안경과 선글라스 그리고 모자로 중무장 한 사람들을 보며 숨이 한번 턱 막히고, 마스크 색깔과 비슷한 벚꽃을 보면서 뒤틀린 반가움이 들어. //시원한 라떼 한 잔을 들고 잰걸음으로. 샷 추가한 라떼 한 잔을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은 주머니에 찔러넣고. 파란 블레이저에 파란색 책가방을 메고. Bon courage!;) # Lukas Graham / Drunk in The Morning, Love Someone # Alicia Keys / Tears Always Win # Bruno Mars / When I Was Your Man # John Legend / All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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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뷰티 또는 사이코일상/film 2020. 3. 23. 00:58
“I guess I could be pretty pissed off about what happened to me, but it’s hard to stay mad when there’s so much beauty in the world. Sometimes I feel like I’m seeing it all at once, and it’s too much; my heart fills up like a balloon that’s about to burst. And then I remember to relax, and stop trying to hold onto it. And then it flows through me like rain, and I can’t feel anything but gratit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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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편의 스탠리 큐브릭일상/film 2020. 3. 17. 17:52
1월경에 홈씨어터를 만들어보겠다고 빔프로젝터를 구매했었다. 빔프로젝터도 다른 전자기기들처럼 사양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인데 ‘HD 화질을 구현할 수 있는 제품’이라는 조건만 두고서 저렴한 가격대의 제품 중에 하나를 골랐다. 물건이 집으로 배송온 뒤 며칠 동안은 뜯어보지도 않고, 빔스크린으로 쓸 커다란 천―너무 새하얀 스크린보다 따듯한 천의 색감이 좋았다―을 하나 구하고, 빔프로젝터의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지지대를 구했다. 천장에 천을 고정해줄 수 있는 걸개를 준비하고, 노트북과 빔프로젝터를 연결해주는 HDMI 케이블까지 준비하고 나니―노트북의 OS가 무선으로 호환되지 않았다;;―영화를 틀 수 있는 대강의 외관은 갖췄다. 어느 정도 외양을 갖추고 나서도 영화를 볼 생각은 못하고 있다가, 최근 들어 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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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란한 세상일상/book 2020. 3. 15. 12:26
이 책은 이론(異論)의 여지없이 8할은 책의 겉면을 보고 구매한 책이다=_= 요새 리커버되는 책들이 많기는 한데 사실 을유문화사의 책은 그리 찾아 읽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찾는 서점에서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는 감각적인 표지를 발견했다. 책 표지에 귀의 해부도라니!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몇 권의 책이 리커버되어 나왔는데, 한 번 읽어본 적이 있는 오에 겐자부로의 책을 고를까 하다가 아예 생소한 작가들의 책을 충동적으로 세 권 골랐다. 충.동.적.으.로, 레이날도 아레나스는 볼테르의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를 읽었었을까? 왜냐하면, 좌충우돌 숨가쁘게 진행되는 세르반도 수사(修士)의 여정이 예측불허한 캉디드의 방랑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캉디드』에는 밑도 끝도 없는 낙관주의가 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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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 학파 3세대의 철학 한 스푼일상/book 2020. 3. 14. 21:31
푸코와 들뢰즈, 과타리의 글에서 한 번 데이고 프랑스 현대철학이 아닌 사상적 조류를 찾아보고 싶었다. 꼭 철학이 아니더라도 소설이든 사회과학책이든 중세,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보다는 시점상으로 가까운 근현대에 지어진 것에 좀 더 관심이 간다. 그래서 찾아본 것이 독일 현대철학이다. 악셀 호네트(Axel Honneth)는 (비록 본인은 이런 표현을 고사하기는 하지만) 3세대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이끌고 있는 좌장이고, 즉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로 대표되는 1세대와 하버마스로 대표되는 2세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명맥을 잇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읽기에 난해한 책일까봐 지레 겁을 먹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독자에게 친절한 책이었다. 이런 표현이 적절하다면 아주 잘 쓰인 논문 한편을 읽은 느낌이었다. (그렇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