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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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멋대로 해라일상/film 2020. 5. 22. 00:05
"Oui, je le savais : quand on parlait, je parlais de moi, et toi de toi. Alors que tu aurais dû parler de moi, et moi de toi." 이전에 본 누벨바그―, , ―는 취향에 맞건 맞지 않건 메시지를 건져낼 수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누벨바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장 뤽 고다르의 는 무얼 건져올려야 할지 모르겠다. 이럴 땐 보통 영화제목에서 힌트를 찾는다. 우리나라에 로 소개된 이 영화의 원제가 로 '숨가쁘게'라는 의미다. 이 한 마디만 딱 들었을 때는 비틀거리며 절박하게 파리의 거리를 가로지르는 미셸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른다. Michel: C'est vraiment dégueulasse. Patricia: 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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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타임일상/coffee 2020. 5. 17. 10:26
# 얼마전 어버이날을 맞아 부모님을 모시고 성북동에 다녀왔다. 막 날씨가 후텁지근해지던 때라 백숙으로 보양(保養)을 한 뒤 카페로 향했다. 카페 그늘에서 시간을 보낸 뒤 선잠로를 따라 굽이진 골목길을 걷기 시작했다. 성북동이 교통이 불편하기는 해도 몇 차례 왔었는데, 대사관과 공관이 많이 몰려 있다는 것은 이제서야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성북동을 왔던 게 5년도 더 된 일인데, 같은 공간을 다시 찾아도 발견하는 것이 달라진다는 것에 새삼 놀란다. 도대체 이전에 나는 성북동에 와서 무엇을 보고 갔던 걸까. 선잠로를 따라 세 번째로 찾는 길상사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다 거닐었던 흙길인데 여기에 법정 스님의 유골을 모신 장소가 있었던가? 무소유(無所有)라는 법정 스님의 가르침보다도, 이 장소를 떠올리지 못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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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 희곡선일상/book 2020. 5. 16. 22:33
체호프의 희곡은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오래전 시공사에서 나온 것을 한 번 읽었었다. (정확히는 중간에 읽다 말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다 근래에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희곡선을 다시 읽어보았다. 4월 초에 보려고 예매해두었던 연극 한 편이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모든 공연이 취소되면서, 아쉬움을 달랠 겸 체호프의 희곡들을 읽었다. 머릿속으로 무대의 모습과 조명, 인물들의 동작과 대사의 강약을 그려가면서. 나는 러시아 문학을 좋아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문학세계를 구가할 수 있었던 남성작가로서의 톨스토이를 은연중에 비판하지만, 러시아 문학은 분명 투박하면서도 굵직하고 명료한 매력이 있다. 서구 열강에 비해 낙후된 사회문화(가령 지주와 농노의 대비)와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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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의 누벨바그(Nouvelle vague)일상/film 2020. 5. 5. 20:56
프랑수아 트뤼포의 는 앙투안이라는 소년이 비행 청소년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다. 아녜스 바르다의 를 보고난 뒤, 누벨바그 두 편을 찾아보았는데, 그 중 한 편이 다. 도 그렇듯, 영화에는 파리의 풍경이 한가득이다. 아녜스 바르다의 영화가 클레오라는 여인과 거울에 비친 클레오라는 환영(幻影)을 다룸으로써 아름다움(美)에 대한 인식을 환기하는 데 반해,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에는 치기 어린 아이의 행동과 그 행동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사회라는 시스템 안에 통제되는 방식을 조명한다. 이 영화에도 아녜스 바르다의 영화만큼이나 거울이 자주 등장하는데, 앙투안이라는 캐릭터를 보면서 어쩐지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에 나왔던 말콤 맥도웰이라는 캐릭터가 떠올랐다. 보기에 따라 앙투안의 행동이 지나치다고 할 수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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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턴에서 그라나다, 그리고 코펜하겐 (feat. bandas españolas)일상/music 2020. 5. 4. 23:50
# Houston, tenemos un poema / Love of LesbianNave a Houston, llevo tiempo insistiendo 휴스턴 호, 벌써 호출한지 오래 되었다 Y, al no haber respuesta, tendré que recitar un poema sideral. 응답이 없다면 별의 시(詩)를 읊을 수밖에 없네 El mensaje es de un enfado muy profuso. 메시지는 커다란 분노를 담고 있지 Los versos son del yanqui y la música es del ruso. 행(行)은 미국녀석들 것이고, 음률은 러시아녀석들 거야Houston, tengo miedo, quiero bajarme de aquí. 휴스턴, 두렵다, 나를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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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일상/book 2020. 5. 3. 21:16
우리는 사랑해야만 한다. 누군가를 미워하기에 우리의 삶은 너무 짧다. 아이의 시선에서 순수한 형태의 사랑을 읽을 수 있었던 글, 모두로부터 버림받은 아이의 눈동자에서 세상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던 글이었다. 삶을 비관하고 자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긍정할 수 있는 것은 모모(모하메드)와 같은 꼬마에게만 가능한 것일까. 이미 세상에 너무 많은 감정―그것이 애정이든 불편함이든 무심함이든―을 안고 있는 나 같은 어른은 모모가 경탄스럽기까지 하다. 모든 것은 담백해야 하고 간결해야 한다. 삶을 얻는 것은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만, 어떻게 살 것인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삶 자체가 부정(否定)당할 뻔했던 소년이 삶이라는 만화경을 향해 가슴 펴고 마주하는 모습, 그 천진하고 개구진 모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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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일상/book 2020. 5. 1. 21:50
버지니아 울프의 을 읽은 뒤 이 책을 집어든 것을 순전히 우연의 일치라 해야할지…… 집을 나서며 가장 얇은 책을 고른다는 것이 아니 에르노(Annie Ernaux)의 . 이전에 읽다 만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의 을 떠올리게 하는 책 제목 때문에, ‘사건의 반전(反轉)’이나 ‘인식의 환기(喚起)’가 압축적으로 담긴 글을 잠시 기대했던 것 같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 이 책만큼 어떠한 인식을 환기시키는 글도 없지만. 임신 중절을 시도하는 어느 대학생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의 글과 매끄럽게 이어진다. 글에는 뱃속 아이의 아빠에 대한 부분이 사실상 도외시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화자의 행위와 감정 그 자체에 온전히 집중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차우셰스쿠 독재통치 하 불법적으로 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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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일상/book 2020. 4. 30. 21:58
이븐 할둔의 두꺼운 아랍 역사서를 읽는 틈틈이 쏜살문고에서 나온 책을 읽고 있다. 책이 가볍고 얇아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앞서 를 재미있게 읽어서, 여러 권의 문고본을 주문해 두었었는데, 은 그 가운데 처음으로 읽은 책이다. 낚시를 통해 사유(思惟)를 건져 올린다는 도입부의 문장이 낯익은 걸 보면, 책을 읽기 전에 다른 글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접한 적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책의 서문을 읽으면서 이 책이 페미니즘의 입문서 또는 (거창하게 말하자면) 바이블쯤 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기억해냈다. 사실 처음 책을 집어들 때에는 이라는 제목에서 자전적인 이야기를 기대했었는데, 이 책은 그런 성격의 이야기와 거리가 멀다. 자기만의 방과 연간 오백 파운드의 수입. 여성이 자신의 생각을 훼손당하지 않은 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