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없는 글/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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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좋은 길주제 없는 글/印 2021. 11. 10. 10:55
얼마전 화랑로로 사진을 찍으러 다녀왔다. 화랑로는 서울에서 걷기 좋은 길로 꼽히는 명소이기도 하지만, 도시 외곽에 위치하다보니 경치에 비해 사람의 발걸음이 적은 곳이다. 화랑로라는 이름은 아마도 인접한 육군사관학교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최근 이 일대는 정부에서 주택공급안을 발표하면서 언론의 보도를 타기도 했던 지역인데, 아름드리 나무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 지역의 제반 여건(특히 교통여건)을 고려했을 때 이 지역에 대규모 주택을 공급한다는 건 지역 사정에 어두운 결정이 아니었나 싶다. 여하간 화랑로의 오른편으로는 몇 년 전 철길을 공원화한 경춘선 숲길이 있었지만, 나는 일렬 종대로 선 플라타너스 나무를 보고 싶어 화랑로를 따라 걸었다. 사실 이날 들고 나오려던 카메라는 작년 여름 중고로 마련한 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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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만에 다시 찾은 명동주제 없는 글/印 2021. 8. 10. 03:55
마지막으로 명동을 찾은 게 1년도 훌쩍 넘은 것 같다. 코로나 이전이라고 해서 명동을 자주 찾았던 것은 아니지만, 몇 주 전 모처럼 명동으로 나섰다. 뉴스로 익히 보긴 했지만 명동 거리마다 공실이 많아서 휑한 상태였다. 그나마 을지로 방면으로는 직장인의 수요가 있는지 먹자골목 쪽으로 사라진 가게는 적은 편인 것 같았다. 평일 낮 퇴근시간이 가까워져 오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옥을 나서는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눈에 띈다. 어떤 사람들은 일찍이 야근을 준비하는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그늘가에 서서 시간을 보챈다. 장마가 턱없이 길었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마른 장마로 일단락되었고 연일 하늘에서 뭉게구름을 찾는 게 어렵지 않다. 갓 개인 듯 청아한 하늘 아래에서는 시커먼 빌딩들이 동서남북을 무질서하게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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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질 무렵주제 없는 글/印 2021. 4. 12. 00:54
유백색 꽃잎을 남김없이 떨운 벚나무가 말라붙은 피처럼 거무죽죽한 꽃받침을 앙상하게 드러내며 초봄의 황망한 인사를 마쳤다. 내게 아른아른 물결치던 벚꽃의 가녀린 손길이 아쉬워질 즈음, 무언가가 내 코 끝을 그윽하게 간질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내 옆에는 아직 만개하지 않은 라일락이 작고 아담한 포도 송이처럼 내 곁에서 숨죽이고 있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 달라는 듯이,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하지만 꽃잎을 틔우기 전일지언정 4월의 꽃향기는 꽁꽁 여민 꽃잎을 보란듯이 비집고 나왔다. 라일락 나무도 이렇게 클 수 있구나 싶을 만큼 높다랗게 자랐다. 햇빛에 어깃장을 놓으며 배배 휘감아 올라가는 나무 줄기를 보니, 꽃이 진 뒤에 본다면 등나무와 헷갈릴 수도 있겠다 싶다. 가까이서 본 라일락 꽃송이에는 화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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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석에서 노들까지주제 없는 글/印 2021. 1. 22. 01:35
흑석동의 재개발 소식이 들려왔다. 부동산 시장의 여러 지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고, 그에 발맞춰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숨가쁘게 쏟아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인간에게 정주(定住)의 역사가 시작된지도 수만 수천 년에 이르는데, 정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당장 잠잘 곳이 없는 게 아닌데도 어딜가나 부동산은 핫이슈다. ‘강남불패’라는 말이 적나라하게 암시하듯 부동산은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문제다. 이제 ‘집’은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승부를 가려야 하는 ‘것’이 되었다. 흑석동은 교통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대학 시절 두어 번 흑석동에 사진을 찍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 적이 있다. 그러고선 마지막으로 흑석동을 찾았던 게 언제였는지도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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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일기—눈 온 뒤 낙산에서주제 없는 글/印 2021. 1. 20. 22:55
초승달이 아슬아슬하게 기울어진 밤이다. 대한(大寒)을 넘기고 있는 이번 1월, 서울에는 세 번 눈이 내렸다. 낙산에서 찍은 이 사진들은 올해 들어 처음으로 눈이 내린 다음날에 찍은 사진이다. 혜화동이 아닌 창신동에서부터 낙산공원에 올랐는데, 매섭도록 추운 날씨였다. 그날 저녁 뉴스에는 한강에 얼음이 얼어붙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장갑을 끼고 나왔는데도 손이 꽁꽁 얼어서 셔터를 간신히 누를 수 있었고, 배터리 충전을 깜박했는지 카메라가 방전되었을 때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내려오는 길은 동대문에서 끝났다. 아쉬운 대로 낙산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갈무리해본다. # 사진일기: 2021년 1월 20일의 주제; 인생에서 가장 흔한 것 또는 그런 것 중의 하나 실패. 살면서 성공이라 부를 만한 것도 있었지만, 그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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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일기—성수동 야경주제 없는 글/印 2021. 1. 5. 00:05
어릴 적 그림일기를 쓰던 생각을 떠올리면서 “사진 일기”라는 포맷을 떠올랐다. 사진은 벌써 햇수로는 작년이 되어버린 며칠 전에 찍은 것이다. 원래는 일몰 전에 미리 가 있다가 사진을 찍으려고 생각을 했는데, 낮에 이런저런 행정처리가 생각보다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해가 진 뒤에야 사진 찍으려고 마음먹은 장소에 도착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석양이 남아 있는 틈을 타서 조금 급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집에 와서 사진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니 잠실 방면으로 찍었던 사진의 노이즈가 너무 심했다. 셔터스피드라도 좀 더 열어놔여 했던 건데... 잠실 방면으로 보이는 한강과 마천루 조합도 볼 만했는데 아쉽지만 건질 수 있는 사진이 단 하나도 없다...=_= # 질투(enviada) “”(「사랑에 빠지기」(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