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ᵉ arrondissement de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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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6일의 일기: 두 번의 사냥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i 2022. 5. 16. 16:40
# 오늘은 시험이 두 개 있는 날이었다. 사냥감을 잡느냐 놓치느냐 하는 마음으로, 사냥감을 놓치면 사냥에 나서도 말짱 도루묵이라는 마음으로 시험에 임했다. 이날 학과 전체에서 총 2개의 시험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나는 오늘 있었던 2개 시험을 모두 응시한 유일한 학생이 되었다. 각자 시간표가 다르긴 하겠지만, 다른 학생들은 도대체 어떤 과목들에서 학점을 인정받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첫 번째 시험인 연금정책 수업에는 6명의 학생이, 두 번째 시험인 공공재정학 수업에는 3명의 학생이 응시했다. 한 학기 동안 수업에 출석했던 학생들의 인원을 생각해볼 때 60% 정도의 학생들만이 시험에 응시한 셈이다. 일단 학기 초 수업을 고르고 확정이 되고나면 학점인정을 받을 의사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우리나라와 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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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의 일기: 천천히, 확실히(lentement mais sûrement)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i 2022. 5. 15. 17:37
# 오늘도 거의 모든 시간을 학교에서 보냈다. 일요일에는 도서관을 비롯해 대부분의 시설이 문을 닫는데, 시험기간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심지어 주말에 영업을 하지 않더라도 공간 자체는 개방을 해놓던 학교 카페테리아마저 닫혀 있었다. 학교 밖 카페에서 자릿세를 내는 식으로 공부를 하는 것도 영 내키지 않아, 에흐네스 정원에서 공부하는 걸 택했다. 정원에서 공부를 한다는 게 내게는 아직도 너무 낯설지만, 시험이 코앞이기도 하고 급한 대로 벤치를 하나 골라 공부했던 자료들을 늘어놓고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오후 반나절을 그렇게 정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이날 정원에 있던 학생들 대부분이 하루종일 정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친구들과 떠들다가 클래식을 틀어놓고 책을 읽다가 다시 노트북으로 뭔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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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4일의 일기: 나만의 세상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i 2022. 5. 14. 17:36
# 점심을 먹고 잠깐 눈을 붙이고 있는데—어제부로 매우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어디서 격한 비트음악이 들려왔다. 파리는 경찰차나 구급차를 제외하면 소음이 많은 도시는 아니건만, 어마어마한 진동에 몽롱했던 정신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주 멀리서 울리던 진동은 기숙사 코앞에 이르렀다. 도대체 무슨 일인 건가 (잠시도 가만 두질 않는구나..) 싶어서 가방을 싸들고 밖을 나섰는데, 약간 조악한 차림새의 젊은 인파가 행렬을 이루어 보클랑 가를 지나가고 있었다. 행렬의 선두에는 디제잉을 하는 남자 두 명이 차량 위에서 흥을 돋우고 있었고, 맨 끝에는 경찰차 두어 대가 따라붙고 있었다. 행렬에는 일곱여덟 대 정도의 개인 차량까지 동원됐는데, 차량 바깥에 골판지 같을 걸 둘러서 베를린 장벽이니, 아스테릭스니,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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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3일의 일기: 에릭 로메르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i 2022. 5. 13. 15:09
# 오전에는 K와 오후에 있을 각자의 발표를 연습하고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여기선 단순히 글로 풀어내는 공부보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고 토론하는 능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가장 시수가 적었던 노동경제학 수업에서마저 발표과제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오히려 노동경제학보다 시수가 많았던 수업 중에는 시험으로 평가가 이뤄지는 과목도 있어서, 그렇지 않아도 시험 직전 주에 잡힌 발표 일정이 퍽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K의 방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서로의 발표를 체크해주고, 점심을 먹으러 시테 유니벡시테로 이동했다. 점심을 먹으며 이탈리아에서 온 K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시테 유니벡시테의 학생 식당에서 밥을 먹는 건 이곳에 도착한 뒤로 처음인데, 듣던 것보다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물론 팡테옹 캠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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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2일의 일기: 주인공(主人公)과 조연(助演)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i 2022. 5. 12. 17:19
# 오늘은 HB의 마지막 수업이 있었다. “결산하기(Faire le bilan)”라 해서 한 학기 (또는 학생에 따라서는 한 해) 동안 프랑스에서 겪었던 어려움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원래 예정된 문화인류학 수업을 (지정된 논문에 대한) 페이퍼 제출로 대체하고 싶다고 미리 의사를 밝히고, (페이퍼를 제출한 다음) HB의 수업을 연달아 두 개를 들었다. ECLA에서 열렸던 수업들은 이번 학기 내게 작은 안식처가 되었던 곳이다. 기본적으로 ECLA에서 열리는 프랑스어 수업은 외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매우 개방적인 성격이 강하고, 서로 비슷한 고충을 안고 있는 외국인들끼리의 정보 공유까지는 아니더라도 고충 공유(?)도 수월하다. # 별의 별 얘기가 다 나온 것 같다. 이탈리아에서 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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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1일의 일기: 사람사람들(les gens)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i 2022. 5. 11. 17:23
# 오후 결정이론 수업이 끝나고 센 강변을 쭉 걸었다. 파리대학에서 수업이 있는 수요일이면 수업이 끝나고 산책 겸 루브르 방면으로 쭉 걸어나갔던 기억이 많다. 오늘은 파리에 온 이후로 가장 날씨가 좋은 날이었다. 이제 센 강변을 따라 루브르까지 걸을 일도 몇 번 남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아쉬운 생각이 들 법도 한데, 그런 미련 같은 건 잘 모르겠다. 나를 시험해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은 다 해보려고 했던 이곳. 언젠가 지난 기억도 모양을 달리 할 때가 오겠지만, 문득 내게 이곳은 영영 머나먼 타국으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지지난 주 몸 상태가 최악인 상태로 수업에 들어와서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는데, 결정이론에서 오늘 새로 다루기 시작한 주제는 일단 이해하기에 전혀 어려운 내용이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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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0일의 일기: 말말말(言)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i 2022. 5. 10. 18:26
# 이곳에 온 뒤로 내가 완고한 사람이란 걸 깨닫는 순간들이 많다. 평소 나 자신이 다양한 삶의 방식과 새로운 문화에 관심이 많다고 생각해 왔음에도 이곳에 좀처럼 녹아들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고서 놀랄 때가 많다. 그럼에도 그 높던 장벽이 많이 낮아진 편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여전히 인사를 나누는 아주 짧은 순간에도 여전히 나라는 사람의 정신을 단단히 붙들어두려는 노력이 섞여든다. # 이곳에는 다양한 학생들이 있듯이 참 다양한 종류의 억양이 존재한다. 이곳에서 내가 주로 쓰는 언어는 영어와 프랑스어인데, 먼저 영어의 경우 내가 들어서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경우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 중 독일, 북유럽에서 온 친구들이 영어를 쓸 때인 것 같다. 특히 북유럽 사람들은 영어를 왜 잘하는지 는 모르겠지만,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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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9일의 일기: 네 뜻대로 하세요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i 2022. 5. 10. 01:45
# 학기 초 간신히 개통했던 교내 와이파이가 먹통이 된지도 거의 한 달 가까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이제는 노트북을 쓰기 위해 핫스팟을 쓰는 데 익숙해져서 교내 와이파이 사용은 그냥 포기했다. 교내 와이파이를 쓰려면 사실상 기능 차이가 없는 계정을 두 개를 생성해야 하는데, 계정 하나는 다른 계정에 접근하기 위한 형식상의 계정이다. 하나의 교내 와이파이를 쓰기 위해 복수의 계정을 만들다보니 저희들끼리 알 수 없는 이유로 충돌하는 경우도 생긴다. 초기 계정을 만들기 위해 접속했던 화면은 DOS 초창기 시절을 연상케 하는 그다지 오래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UI였었다. 필요한 걸 죄다 생략하는 것보다야 조금 복잡한 것 자체를 나쁘게 보진 않는데, 당시 문의를 주고 받았던 담당부서 직원—담당자도 물어물어 가까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