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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일의 일기 (上): 마르세유(Marseille) —비유 포흐(Vieux Port)로부터Vᵉ arrondissement de Paris/Juin 2022. 7. 31. 10:41
# 새벽 6시 파리 리옹 역에서 마르세유 행 열차가 출발했다. 새벽 6시에 발착하는 열차는 있지만, 기차역으로 바래다 줄 대중교통은 없다. 나는 기숙사에서부터 파리의 공용 자전거를 타고 리옹 역에 갔다. 리옹 역 앞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전거 회전율이 낮아서 자전거를 거치할 공간이 늘 부족하다. 오늘도 모든 거치대가 만차다.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다른 자전거에 연결하는 방식으로 간이 주차를 했는데, 거치가 완료됐다는 안내 메시지가 오지 않았다. 아마도 기계 인식이 안 된 모양이라 짐작했다. 이미 열차 시각이 다 되어서 자전거 고정이 단단하게 되었는지 정도만 먼저 확인하고 일단 열차에 탑승했다. 새벽 열차에서 모자란 잠을 보충하면서도 추가 이용시간에 대한 과금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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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노 피셔 展주제 있는 글/Arte。 2022. 7. 30. 16:40
사진전을 보기 위해 아주 오래간만에 성곡 미술관을 찾았다. 사진전을 보는 것도 2년만의 일이다. 모처럼 찾은 경희궁 뒷길 역시 시간의 흐름을 비껴가지 못하고 제법 크고 작은 공사들이 진행되는 모양이었다. 미술관을 찾은 이날은 그야말로 장마 끝 찜통 더위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었다. 이 전시회는 TV의 문화 코너를 보고 알게 되었다. SNS를 하지 않는 나는 TV에서 접하는 자잘한 소식들을 눈여겨 봐두곤 한다. 이 사진전이 좀 더 눈길을 끌었던 건 '동베를린' 출신의 작가라는 점 때문이었다. 파리에서 한국으로의 귀국을 앞두고 있었을 때, 가장 가보고 싶었던 도시가 베를린이었다. 결국 이런저런 사정으로 가보지는 못했지만 독일의 '베를린'은 늘 내게 어떤 종류의 감상을 불어넣는다. 깊은 역사적 상흔이 남아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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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4일의 일기: 퐁텐블로(Fontainebleau)Vᵉ arrondissement de Paris/Juin 2022. 7. 23. 23:10
# 오늘은 N과 퐁텐블로에 다녀왔다. 전날밤 오늘 무슨 계획이 있냐고 N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왔고, 학기를 마친 뒤 일정이 있을 리 없는 나는 어디 바람이라도 쐬자는 말에 번개 일정을 짜는 데 착수했다. 그렇게 해서 정오 쯤 N과 리옹 역에서 만나 R 노선을 타고 퐁텐블로로 함께 이동했다. 나는 학기가 끝난 뒤, 베르사유, 에펠탑, 루브르를 주파하는 다소 무리한 일정을 소화했던지라, 사실 이날 굉장히 피로감이 몰려 왔고 파리를 빠져나가는 열차 안에서 완전히 곯아떨어졌다. # 마침 퐁텐블로 성에서는 예술사 축제(Festival de l’historie des arts)가 열리고 있었다. 게다가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다. 축제에서는 굉장히 다양한 테마—족히 서른 개는 되는 것 같았다—로 그룹 투어가 제공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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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일의 일기: 루브르(Louvre)Vᵉ arrondissement de Paris/Juin 2022. 7. 18. 15:28
# 학기가 끝나고 몰아서 가고 있는 유명 관광지 중 남은 한 곳이 루브르 박물관이다. 이곳은 내가 다녀본 프랑스의 여러 관광지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예매를 해야 했던 곳이다. 전날 루브르 박물관에 무턱대고 갔다가 되돌아 왔던 기억이 있어서, 이날은 미리 오후 한 시에 입장 예약을 해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람이 너무 많아서 두 번 갈 생각은 들지 않는 곳이다. # 루브르 박물관에서 반드시 봐야 하는 세 가지 작품이라면,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 그리고 모나리자—프랑스 사람들은 보통 그림 속 인물의 프랑스식 이름인 조콩드(Joconde)라고 부른다—를 꼽는다. 그 외에도 유명작품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그 양이 워낙 방대하고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보니 몇 가지 작품을 정해서 집중하는 게 좋다.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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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裸木)일상/book 2022. 7. 16. 10:52
전쟁은 누구에게나 재난을 골고루 나누어주고야 끝나리라. ・・・・・・거의 광적이고 앙칼진 이런 열망과 또 문득 덮쳐오는 전쟁에 대한 유별난 공포. 나는 늘 이런 모순에 자신을 찢기고 시달려, 균형을 잃고 피곤했다. —p. 49 남의 불행을 고명으로 해야 더욱더 고소하고, 맛난 자기의 행복・・・・・・. —p. 63 설사 그들의 부가 전통이나 정신의 빈곤이란 약점을 짊어졌다손치더라도 부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두려운 것일까? —p. 76 “그런 거리를 실감할 수 있느냐 말예요? 짐작이라도 할 수 있어요? 게다가 몇천, 몇만, 심지어 몇억 광년 따위를 짐작이라도 할 수 있나 말예요?” —p. 115 수복 후의 나날들. 텅 빈 집과 뒤뜰의 은행나무들. 그 자지러지게 노오란 빛들. 바췻빛 하늘을 인 노오란 빛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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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독후감 세 편일상/book 2022. 7. 15. 16:21
『토지』, 박경리 1부에 비해 2부에서는 무대공간이 확연히 넓어졌다. 1부에서는 지리산 자락 하동이 무대의 전부였다면, 2부에서는 서울은 물론 간도와 연해주, 중국을 아우르는 공간적 무대가 펼쳐진다. 빠른 공간적 팽창에 맞물려 서사도 숨가쁘게 흘러가는 듯하다. 김훈장의 죽음, 길상과 서희의 혼인은 무너져가는 구한말의 신분제를 보여주는 한편, 조준구의 몰락과 김두수의 등장은 외세와 결탁한 기회주의자들이 전면에서 움직이는 당시의 혼탁한 사회상을 잘 보여준다. 『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이 소설은 중학교 때 『상실의 시대』라는 이름으로 된 책으로 읽은 적이 있다. 지금에 와서 드는 생각은 원제인 『노르웨이 숲』을 『상실의 시대』라 번안한 건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이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독자에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