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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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짝 뒷걸음으로여행/2024 겨울비 당진과 예산 2024. 1. 29. 12:34
주말 이틀 내내 출근을 하는 바람에 매우 피곤한 하루였던 것 같다. 또 그 짬을 내어 여행갈 생각을 하다니, 어떤 식으로든 쉼표를 제대로 찍고 싶었던 모양이다. 추사고택에 이어 내가 향한 곳은 백설농부라는 한 카페였다. 같은 예산이지만 다시 삽교천을 건너는 짧지 않은 여정이었다. 카페에 도착한 뒤 나는 일에서 오는 피곤함을 누르고 카페에 앉아 제니 오델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을 정독하기 시작했다. 요새 눈을 떼기 어려운 책이다. 이 카페를 찾은 이유는 자연경관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고 싶다는 단순한 바람 때문이었다. 나무로 지은 카페 일대에는 텃밭이며, 정원이며, 농원이 가꿔져 있지만 엄혹한 계절인지라 싱그러운 풀빛은 찾아보기 어렵다. 메말라가는 몇 가닥 억새들이 초라하게 부대낄 뿐, 멀리 바라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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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갯짓과 울부짖음여행/2024 겨울비 당진과 예산 2024. 1. 25. 18:21
당진에는 아마 지금쯤 많은 눈이 내렸을 것이다. 삽교천과 안성천이 커다란 하구를 만들며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이 일대는 예로부터 넓게 일컬어 내포(內浦)라고 불렸다. 지금의 예산, 아산, 서산, 홍성을 아우르는 지역으로, 그러므로 오늘날 홍성 지역에 만들어진 내포 신도시라 함은 상당히 좁은 의미를 띤다 하겠다. 여하간 두 물줄기가 만나는 아산만은 경기도와 충청도를 구분짓는 지리적 경계인 동시에 문화적 경계이기도 하기에, 당진 부둣가를 활발히 메운 공업단지를 뺀다면 이미 서해대교를 지나는 순간부터 상당히 전원적인 풍경이 차창을 가득 채운다. 그 풍경에 하나의 이채로운 색깔을 덧입히는 것이, 이 지역에 스며든 카톨릭교회의 정취다. 당진은 한국사 최초의 가톨릭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고장이기도 하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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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금강을 따라여행/2024 함박눈 공주 2024. 1. 11. 19:48
공주는 작년 여름 수해를 크게 입은 지역 중 하나다. 수해는 유적지도 빗겨가지 않아서 공산성 역시 물에 잠기는 불상사를 피하지 못했다. 다행히 무령왕릉 매표소에서 확인해보니 공산성도 둘러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해서 무령왕릉 다음으로는 공산성을 가보기로 했다. 성(城)의 서문이자 정문인 금서루에 도착하자, 가파른 비탈 아래로 마흔세 개에 달하는 공적비가 일렬로 늘어서 있다. 입구에서 회전교차로 쪽을 바라보면 가운데에는 무령왕의 거대한 동상이 있고, 그 뒤로는 무령왕릉을 닮은 아치형 관문이 서 있다. 원래는 공산정을 출발점으로 시계 방향으로 성벽을 따라 걸으려 했지만, 공사구간이 있어 반시계 방향으로 성벽을 걸었다. 부소산성과는 다른 걷는 재미가 있고, 방위체계에 따라 성의 동쪽에는 청룡 깃발이, 서쪽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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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됨의 새로움여행/2024 함박눈 공주 2024. 1. 10. 23:01
즉흥적으로 떠나는 당일치기 여행. 이번에는 공주다. 공주는 개인적으로 낯설지 않은 도시지만 한번도 여행을 위해 들른 적은 없는 곳이다. 근래에 제민천 일대를 중심으로 도시 재생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얼핏 들어서, 백제의 옛 수도가 아닌 새로운 도시공간으로서 공주를 찾게 되었다. 물론 결과적으로 첫 공주 여행이었던 만큼 유적지를 주로 둘러보게 되었지만. 이동수단은 KTX 산천. 내가 탄 열차는 익산에서 여수와 목포로 분기하는 열차였다. 내 자리는 오른쪽 창가석이었고 시야가 탁 트인 창문 바로 옆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다. 서울역을 출발한 열차는 용산역에서 잠시 정차한 뒤 한강철교에 올라선다. 그러면 저 먼 발치에서 여의도의 스카이라인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한강철교를 건널 때마다 항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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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I여행/2021 한여름 세 도시 2021. 7. 18. 11:29
몇 년만에 다시 찾는 대전인지 모른다. 3년간 시간을 보냈던 대전은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기억이 있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으로 다시 한 번 찾고 싶은 곳이었다. 대전에서 내가 하루 머물렀던 곳은 도마동의 저렴한 숙소였다. 대전에 있을 당시 유성구에 있었고 서구로 나오더라도 둔산까지만 나왔었기 때문에 도마동은 처음 가보았다. 딱히 잠잘 곳이 근사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둔산이나 대전역 근처의 비싼 숙소를 대신해 도마동에 머무르기로 했다. 하지만 대전에 와서 둘러보려고 했던 곳들은 예전에 시간을 오래 보냈던 유성구 일대였으므로, 간단히 짐 정리를 하고 도마동을 빠져나와 유성구로 향했다. 301번 버스를 타고 은하수 네거리와 둔산, 정부청사, 만년동을 지나 연구단지 네거리에 도착했다. 연구단지 네거리는 좋아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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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III여행/2021 한여름 세 도시 2021. 7. 16. 15:35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라고 한다면 낙화암이 바라다보이는 백마강변이 아닐까 싶다. 규암마을을 빠져나와 내가 향한 곳은 낙화암 바로 맞은편에 있는 나루터였다. 지도만 봐서는 차를 세울 수 있을 만한 곳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원하는 위치로 이동했다. 다행히 지도에서 확인해 두었던 나루터 옆 길목은 한적한 공간이 많았고, 잡초가 우거진 공터에 차를 세우고 길로 나섰다. 길가를 따라서 드문드문 캠핑장비를 갖춘 새하얀 차량들이 보인다. 지난 여행에서는 부소산성을 거쳐 낙화암에 올랐다. 부소산성의 가장 높은 지점에 이르면 길은 다시 낙화암의 가파른 절벽을 따라 전망대까지 아래로 이어진다. 그때도 지금만큼이나 무더운 날씨였던 것 같다. 하지만 기억은 상황과 흐름에 따라 모양을 바꿔가니 확실하다고 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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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II여행/2021 한여름 세 도시 2021. 7. 14. 00:04
평소보다 늦게 일어난 뒤 향한 곳은 정림사지다. 처음 여행을 왔을 때 들렀던 곳이지만 벌써 기억에서 가물가물하다. 이전에 들러본 적이 없는 곳을 둘러볼 계획이라곤 해도 부여에 왔는데 아무리 그래도 정림사지는 보고 가야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에 도착한 정림사지에는 인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는데, 지난번 부여를 여행 왔을 때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덕분에 한적하게 정림사지의 오층석탑과 석불좌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저번 여행과 달라진 점이라면 정림사지 내부의 박물관이 리노베이션했다는 점이다. 큰 기대 없기 박물관으로 들어갔는데, 디지털 방식으로 정림사지의 이모저모를 소개하고 있어서 세부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석탑과 와당(瓦當)에 대한 설명 부분을 재미있게 보았다. 정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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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과 보령 사이여행/2021 봄 원산도 2021. 4. 29. 13:05
오후 6시 20분 안면도 행 버스가 출발한다. 3시 20분에 예정됐던 약속을 마치고 모처럼만에 고속터미널로 향했다. 버스보다 기차를 선호하는 탓에 주로 기차역을 이용하다보니 버스터미널을 이용할 때마다 늘 길을 헷갈린다. 안면도로 가는 버스는 센트럴시티 터미널에서 타야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경부 영동선 터미널에서 헤매고 있다. 평소보다 조금 이른 저녁을 먹고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반포의 좁다란 진입로를 지나 퇴근 시간이 다가오는 경부고속도로 위에 올라탄다. 먹구름이 낀 답답한 날씨다. 태안의 천리포나 만리포는 가본 적이 있지만, 안면도까지 내려가본 적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기억에 없는 듯하다. 보령의 대천해수욕장도 가보았지만 천수만 쪽으로 올라가볼 생각은 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지도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