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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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없는 남자 II일상/book 2020. 1. 2. 00:15
요새는 책을 읽다 말고 곧잘 꾸벅꾸벅 졸곤 한다. 카페에 앉아 책을 읽다가도 눈꺼풀이 스르르 내려온다. 타고나기를 체력이 좋은 편에 속하지 않는 나는 동생 말마따나 실속도 없어서 크고 작은 계획을 세워놓고선 독서에만 골몰하지만 이마저도 알차지 못한데,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전편에 비해 두 번째 읽는 「특성없는 남자」는 도통 눈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아마 직전에 「정치적 감정」의 논리적인 텍스트를 꾸욱꾸욱 읽다가 소설로 넘어오니 문체가 달라져서 좀 더 뻑뻑하게 읽혔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갈피해둔 곳들을 짚으며 갈무리를 하다보니 소설의 숨은 뜻들을 곱씹어볼 수 있어 다행이다. 역사인식(歷史認識). 인간 이성에 대한 확신을 갖고 새 역사를 열어보이려는 장력(Tension)과 이성에 대한 과신을 꺼림칙하게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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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e-en-scène일상/music 2020. 1. 1. 07:15
Keane // Somewhere Only We Know, Everybody's Changing,Fleetwood Mac // Men of the World,Oasis // Don't Look Back In Anger, Stand By Me,Nirvana // Smells Like Teen Spirit, 자취방으로 옮겨온 뒤로 줄곧 스피커를 하나 장만하고 싶었다. 소음 문제 때문에 사운드 빵빵한 고성능의 스피커를 찾았던 건 아니고, 노래도 들으면서 외국어 뉴스도 겸해서 듣기에 적당한 스피커를 찾았다. 보스(Bose) 스피커를 저울질하다가, 때마침 블랙프라이데이에 이은 사이버먼데이에 마셜(Marshall)의 킬번(Kilburn)이라는 모델을 할인된 가격에 구입했다. 물건을 받아본 게 크리스마스 직전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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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감정일상/book 2019. 12. 31. 19:43
'감정'이라는 명사를 '정치적'이라는 형용사가 꾸미고 있는 책의 제목만으로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치와 감정은 언뜻 보기에 어울려선 안 될, 오히려 분리시켜 봐야할 개념들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으레 제목만으로 단숨에 시선을 잡아끄는 책들이, 읽는 과정에서는 상당한 시간과 인내를 요한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지만 일단은 책을 집어들었다. 요즘처럼 혐오(嫌惡)와 배제(排除)가 팽배한 우리 사회에서 저자 마사 누스바움은 어떤 정치적 인간을 논할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이 책은 계량화된 사회과학적 논의가 쏟아지는 오늘날 독특하게도 귀납적 추리를 통해 서사(敍事)를 이끌어간다. 수치화되지 않은 것들을 불신하는 오늘날의 독자들을 감안한 듯, 저자의 글에는 풍부한 예술작품(시와 오페라, 희극과 비극, 건축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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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多情)하거나 무정(無情)하거나 또는 비정(非情)하거나일상/film 2019. 12. 30. 20:46
대단히 사랑스러운 영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은 대략 일곱 여덟 편의 영화를 봤지만, 그간 이런저런 영화를 봐도 를 뛰어넘는 작품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고등학교 때 봤던 의 잔상이 강렬해서였을 것이다. 그래도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부단히 다루는 '가족'이라는 소재 안에서 조금은 다른 느낌의 무게감을 안겨줬던 것이 라 할 수 있는데,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리고 있는 이 작품은 임종을 앞둔 노년 남성의 에세이(essaie)를 그리고 있어서 절로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고, 가벼운 쇼크마저 받았었다. 국가간의 물적교류가 단절이 되어도 문화적 교류까지 끊겨서는 안 된다고는 하지만, 요새 일본영화들이 국내에서 거두고 있는 실적이 신통치 않은 듯하다. 흥행성 여부를 떠나서 예전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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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일상/book 2019. 12. 14. 00:22
요새 너무 다기망양(多岐亡羊)하게 독서를 한다고 느껴 찾은 책이다. 만성적인 야근에 시달리면서도—요새는 일상패턴이 정돈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차마 이 얇은 책 한 권은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절반 가량은 희극이 가지는 의미를 되새기지도 않고 기계적으로 활자를 '본' 것 같은 느낌마저 들지만 말이다. 몇 주만에 칼퇴를 기대했던 이번 금요일도 여지 없이 계획에 없던 업무들이 쏟아졌고, 업무를 서둘러 마무리한다고 했는데도 지하철역에서 내리니 이미 10시가 되어 있었다. 건조하다 못해 감쪽같이 증발해버릴 것 같은 일상에 어떻게 해서든 숨통을 틔어야 할 것 같았다.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씨에 카페에 들어갔지만 이미 카페인은 충분한 상태였기에 와인을 한잔 주문했다. 은 이미 일전에 읽었던 책이다. 사느냐 죽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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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퀘스천일상/book 2019. 12. 11. 01:18
사놓은지가 좀 된 책이다. 가끔은 인문학만 들여다보는 것 같아 과학서적 코너를 서성인다. 과학에도 여러 주제가 있지만, 요 근래에는 뇌인지학이나 우주와 관련된 서적이 많이 깔려 있는 듯하다. 이라는 꽤 거창한 이름을 달고 있는 이 책은, 처음에는 생물학과 화학, 물리학을 총망라하는 다양한 질문이 다뤄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의외로 단출한 질문 하나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 세계는 아름다운가? 세상의 아름다움을 규명(糾明)하기 위한 노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꾸준히 이루어져 왔고, 오늘날에는 뉴턴이 초석을 닦아 놓은 고전물리학 위에 아인슈타인 이래로 발달한 양자역학이 꼭 들어맞게끔 포개어졌다. 책을 읽으면서 기시감이 들었던 것은 아마도 주제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카를로 로벨리의와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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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되는 반전(反轉) : 멜로와 추리일상/film 2019. 12. 8. 23:58
영화에서 큰 소득을 얻지 못한 11월달이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작품이 연거푸 스크린에 상영되었지만 단 한 편도 챙겨보지 못했고, 프랑스 영화도 벌써 여럿 개봉을 한 상태지만—은 못보더라도 만큼은 보면 좋으련만..—요즘처럼 퇴근이 일정치 않아서야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게다가 공휴일이 하나도 없는 11월에는 크고 작은 영화제—단편영화제나 프리미어 영화제, 프라이드 영화제 등등—를 참관하는 소소한 재미가 있었는데, 뭐 이미 예매해뒀던 키라 무라토바(우크라이나 여성감독)의 영화티켓도 '예정에 없던' 야근으로 인해 취소해야 했으니까...이젠 뭐 속상하지도 않다. 그런 가운데 간신히 건져올린 이라는 영화는 내 오랜 갈증을 해소해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프랑스 영화가 내담자-정신분석가의 구도를 대단히 좋아하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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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ry-Go-Round일상/music 2019. 12. 5. 23:55
Hi #아무런 예고도 없이 TF팀에 차출되어 며칠간 밤을 새며 일을 했다. 하루종일 문서작업을 하느라 키보드를 부여잡고 있다보니 목디스크가 도져 어깨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면서도 그저 내게 '주어졌기 때문에' 일을 했다. 예정에 없이 임원 한 명까지 이틀간 팀원처럼 밤을 샜는데, 이 사람이 자정을 넘길 즈음 주크박스—서정적인 중국가요 아니면 비트감 있는 한국 락이 섞여 있었다—를 틀었다. 일렉기타 사운드가 곁들여진 노래들이 싫지만은 않았는데, 그 중 음악검색까지 이끈 것이 서문탁의 이다. 뜯어보면 가사가 특색있는 것도 아니고, 약간은 J-pop스러운 감성도 느껴지지만 이처럼 사람을 잡아끄는 것을 보면 형언(形言)하기 어려운 매력이라는 것은 목소리에도 있나보다. 사실 일이 많아 힘든 건 문제 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