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
식인문화의 수수께끼일상/book 2019. 9. 19. 20:33
문화유물론(Cultural Materialism)에 기반해 인류 문명에 대해 설명을 시도하고 있는 이 책은, 사회과학과 인문학 사이에서 모호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문화인류학을 과학적으로 명쾌하게 풀어낸다. 이 책은 역사에서 수없이 되풀이 되었던 크고 작은 사건―가령 전쟁이나 제국의 흥망성쇠―을 인간 본성을 윤리적인 관점에서 파악함으로써 안이하게 인식하기를 거부한다. 예를 들어 프로이트 학파에서 ‘전쟁’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하는 주장이, 그와는 반대로 인과관계가 뒤집혀 있으며 대단히 단순화된 ‘정언명제’를 정초(定礎)함으로써 그릇된 일반화로 빠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사소한 의문은 다음과 같다. 유발 하라리의 에서 같은 경도보다는 같은 위도에 놓인 지역에서 동질적인..
-
자동화사회I : 알고리즘 인문학과 노동의 미래일상/book 2019. 9. 13. 00:12
유별난 걸지 모르지만 요새 내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혁신'이다. 그 다음으로 듣기 싫은 말은 '4차 산업혁명'=_= 절로 진저리가 쳐지는 이 단어는 세보지는 않았어도 우리 회사 팀명에 포함된 것만 해도 몇 십 개는 족히 될 것 같다. 심지어 정부 중앙부처 명칭에도 떡하니 들어갈 뿐만 아니라 온갖 정책 명칭에 양념처럼 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세태 속에서 가정 먼저 드는 생각은 '혁신'의 정의(定義)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혁명(革命), 개혁(改革)이라는 좀 더 오래된 (그리고 교과서적인?) 표현을 두고 '혁신(革新)'이라는 말을 쓰는 게 언제부터 이렇게 대유행이 된 걸까. 정말 경악스러운 것은 '△△혁신'이라고 할 때 '△△'가 무엇인지조차 정의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
-
편집적 영화감상일상/film 2019. 9. 6. 23:20
선남선녀와 화려한 소재의 등장으로 단숨에 시선을 잡아끄는 것을 보면 과연 디즈니는 디즈니:) 무대 배경으로 거대한 숲과 화려한 성이 어우러져 등장하다보니 독일과 프랑스를 뒤섞어 놓은 느낌이다. 어쩐지 신데렐라와 왕자의 풋풋한 연기와 계모로 연기한 케이트 블란쳇의 원숙한 연기가 잘 버무려지지 않은 느낌이 들었던 영화. 3시간이라는 부담스러운 러닝타임 때문에 개봉 당시에는 관람하지 못했다가 뒤늦게 영화를 찾아봤다. 영화관이 아닌 곳에서 편히 봐도 여전히 부담스러운 러닝타임인데 1,300만의 관객을 동원한 걸 보면 놀랍다. 흔히들 마블의 세계관이 있다고 하는데 마블물을 좋아하지만 사실 그 세계관이라는 게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사실 세계에 대한 관점이 담기지 않은 영화가 있을까?) 다만 타..
-
2666-V일상/book 2019. 9. 5. 00:03
작가가 신(神)과 같은 존재일 리 없지만, 또한 소설이라는 것 역시 인간의 손에서 나온 것이기에 필연적으로 불멸(不滅)의 존재는 아니지만, 로베르토 볼라뇨라는 사람의 작품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악의 본질을 깊이 파고들겠다는 작가의 야심찬 구상은 물론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누구라도 악의 심연을 낱낱이 밝혀낼 수는 없다. 다만 악의 성질을 얼마나 가까이서 규명(糾明)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때문에 첫 번째 권부터 아르킴볼디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가진) 묘령의 작가를 등장시켜, 이 세상의 악(惡), 그리고 악의 우스꽝스러움, 악의 현시(現示), 악의 편재(偏在), 악의 순수성에 대해 종횡무진하며 글을 전개해 나가는 로베르토 볼라뇨의 발상은 정말이지 감탄스럽기까지 하..
-
-
캘리포니아 타이프라이터일상/film 2019. 8. 8. 22:08
여러 말이 필요 없는 영화다. 내가 평소 느끼는 것들을 99% 표현한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자기가 아닌 키보드로 이 글을 작성하고 있지만 말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제레미 메이어라는 조각가다. 그는 타자기로 무엇을 생산하거나 소통하는 대신 완전히 해체하여 조각의 부품으로 활용한다. 어찌 보면 타자기라는 주제로 영화가 담고자 했던 주제로부터 약간 빗겨나 있는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가 만드는 인물, 사슴, 연꽃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정교하고 느낌이 있다. 여하간 본론은 디지털의 홍수 속에서 아날로그가 갖는 강점을 되새기자는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몸소 타자기를 통해 아날로그적인 삶을 보여준다. THE TYPEWRITER INSURGENCY We assert our rig..
-
2666-IV일상/book 2019. 8. 7. 23:35
산타테레사에서 발생하는 끊임없는 연쇄살인과 이 뒤를 쫓는 형사, 후안 데 디오스 마르티네스 그리고 그와 어색한 연인(戀人) 관계를 유지하는 엘비라 캄포스 박사. 마킬라도라 공장에서 여성을 표적으로 하는 의문의 살인 사건은 무엇으로 설명될 것인가, 이에 유력한 용의자료 부상한 하스라는 독일계 미국인. 문화부 기자였던 세르히오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살인의 행진에 점점 휘말려 드는데.. 내가 보기에 최악의 공포증은 만사 공포증, 그러니까 모든 것을 두려워하는 것과 공포 공포증, 즉 자신의 공포증을 두려워하는 공포증이에요. 두 공포증 중 하나를 겪어야만 한다면 뭘 선택하겠어요? 공포 공포증이지요. 후안 데 디오스 마르티네스가 대답했다. 잘 생각하세요. 그건 결정적인 약점이 있어요. 원장이 말했다. 모든 걸..
-
긴장감(緊張感)의 앞면과 뒷면일상/film 2019. 7. 23. 19:48
動 유혈이 낭자하고 피비린내 나는 영화. 존 윅 시리즈는 처음인데, 주인공도 액션도 배경도 멋진 영화다. 이런 액션 영화는 뚜렷한 스토리 없이 끝없이 액션만 펼치다 식상하게 끝을 맺는 경우가 있는데, 이 영화는 창의적인 액션―개를 동원한 액션 연기―도 많고 제로섬 게임처럼 인간관계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설정도 시선을 끈다. 주인공 존 윅은 룰이랍시고 젠체하는 심판관을 상대로 통쾌하게 자신의 성역을 지킨다. 보는 내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함무라비 법전의 문구를 떠올리게 했던 영화. 靜 이라는 다소 서늘한 분위기의 영화 제목답게, 이 영화는 과는 다른 의미에서 스릴감이 있는 영화다. 이 화려하고 현란한 화면으로 동적인 긴장감을 준다고 한다면, 을 지배하는 긴장감에는 정적이 감돈다. 냉철하고 절제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