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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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타자들일상/book 2019. 5. 9. 18:09
얼마전 이라는 영화를 보고나서 ‘나와 다름’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했던 적 있었는데, 그저 소수 또는 약자에 대한 존중을 ‘다름에 대한 인식개선’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을 맺었었다. 이졸데 카림은 ‘정체성의 감소’라는 개념을 동원하여 다원화된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정치적 인간이 될 것인지 논의하며, 오늘날 득세하는 포퓰리즘을 좌파/우파 각각의 시점에서 비판을 제기한다. 개인적으로는 꽤나 난해한 미셸 푸코의 보다는 논문처럼 명료한 단어와 함께 논리를 펼쳐나가는 이번 글이 훨씬 재미있게 읽혔고, 페이지 하나하나마다 예리한 분석이 담겨 있어서 다시 한 번 읽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시민들이 탈정치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통념과 달리, 양태(樣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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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고 한심한 사람들의 해피엔드일상/film 2019. 5. 3. 20:35
영화를 본 뒤 맨 처음 드는 생각은 차갑다는 것이다. 차가워도 너무 차갑다. 프랑스의 따스한 풍광을 담고 있으면서도 어쩌면 이렇게 무심하리만치 차가울 수 있는 것일까. 영화에는 대가족의 다양한 군상(群像)―로랑 일가(一家)―이 묘사되어 있지만, 어느 인간 하나 인간냄새가 풍기지 않는다. 라는 영화의 제목은 철저하게 조롱이다. 첫째 전혀 ‘해피’하지가 않다. 둘째 영화에 ‘엔드’가 빠져있다. 영화 속 인물들의 부조리한 삶은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생산될 것임을 암시한다. 나중에 뒤돌아 생각해보면 오싹하다. 공사현장이 붕괴되는 장면에서는 라디오의 선율이 흘러나온다. 완벽히 제3자의 입장에서 사고현장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앵글.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엄마의 일상을 휴대폰으로 담는다. 화장실에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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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못난 쏨뱅이일지라도일상/film 2019. 4. 30. 23:35
‘다름’이라는 주제는 내게 가장 어려운 주제 중 하나이다. ‘다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름’을 규정하는 시도는 실로 다양한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가령 ‘평등’이라는 개념은 절대적 평등과 상대적 평등으로 나누어 각각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늘 첨예하게 대두되는 문제는 절대적 평등과 상대적 평등, 이 둘을 나누는 문제가 아니다. 과연 어느 선(線)까지를 상대적인 차이로 수용할 것인지를 정하는 문제야말로 지난(至難)한 문제이다. 꼭 이러한 철학적 논의가 아니라 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쌀쌀한 날씨를 누군가는 후텁지근하다고 느낄 수 있고, 누군가는 불쾌해 하는 일을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여길 수 있는 것처럼 아이러니한 상황은 일상에서도 쉽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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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코뿔소의 비밀일상/book 2019. 4. 29. 17:52
우리나라의 역사가 아닌 다른 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지만, 잘 알려진 역사보다 덜 알려진 역사를 읽는 일은 더욱 흥미롭다. 그래봐야 잘 알려진 역사라고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아프리카의 중세사’를 다룬다는 이 책을 접했을 때 반드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리카의 역사에는 아마도 프랑스대혁명이나 명예혁명, 독립전쟁만큼 극적이거나 주변국으로 파급력이 컸던 역사적 이벤트는 적을지 모른다. 하지만 알려지지 않았을 뿐 아프리카는 아직 들려줄 이야기가 많을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아프리카의 중세사에 대해 알려주는 극히 제한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문자화된 문명의 흔적이 적을 뿐만 아니라 강력하게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한 국가도 일시적으로 존속했을 뿐이다. 무엇보다 매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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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통과 우리의 고통일상/film 2019. 4. 27. 01:49
작년 초겨울부터 개봉을 기다렸던 영화다. 대단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영화를 보게 된 것도 카페에서 멍하니 책을 읽다가 바로 옆 영화관에서 이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것을 알고 상영시작 5분 전에 즉흥적으로 발권하여 본 것이다. 거의 일 년 가까이,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죽죽 읽어나가고 생각없이 영화를 보는 것이 주말의 유일한 낙이 되었다. 잡음으로 시끌벅적한 일상에서 유일하게 음소거를 하는 시간. 이 시간에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써는 무엇이 생산적일지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영화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다루다가 결말에 이르러 대단히 사회적인 이슈를 다룬다. 이혼을 앞둔 제냐-보리스 부부는 아이가 느끼는 혼란과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행복을 최우선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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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 사진에 대하여일상/book 2019. 4. 18. 18:14
사진에는 사진가가 의도하지 않은 것이 포착될 수 있다. 벤야민에 따르면, 사진에 찍히는 현실은 눈이 보는 현실과는 다른 층위들로 이루어져 있다. 현실에는 눈이 볼 수 없는 층위들, 곧 사진이 없으면 지각될 수 없는 층위들이 있다는 뜻이다. 사진은 우연히 빛점이 가닿은 곳이다. 역사가 재발견되기를 기다리는 시간과 장소가 있다면, 그것은 찍히기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그때 그곳, 그 짧은 한때, 그 작은 한곳이다. p. 27 초점이 카메라나 사진과 관련된 용어이기는 하지만, 초점(focal point)의 어원에는 불타는 지점이라는 의미가 있다(그 의미는 독일어 Brennpunkt의 어원에 좀 더 선명하게 남아 있다). 초점은 난로 같은 온기로 발길을 붙드는 곳, 타오르는 불의 시시각각 달라지는 형체들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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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히어로일상/film 2019. 4. 14. 16:27
라는 제목부터가 시선을 사로잡았던 영화로, 금요일 퇴근길 이 영화를 보았다. (아마도 직위해제된 상태인 듯한) 경찰 한 명(아스게르)이 전화로 신고를 접수하고 수리하는 다소 부산스러운 장면과 함께 영화의 도입부가 시작된다. 영화가 스릴러물이다보니 '신고'라는 소재를 토대로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기다리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계속 기다려도 영화의 장소에 변화도 없고 경찰은 계속 신고를 수리하기만 한다. 정확히 어떤 장면을 포착해야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생각을 하는 순간, 아스게르가 한 여성이 납치되었다는 신고를 접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된다. 그렇다. 이 영화는 일체 장소의 이동없이 협소한 사무실을 배경으로 아스게르의 목소리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긴박한 목소리만을 도구 삼아 이야기를 전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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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역사일상/book 2019. 4. 9. 18:58
올해 처음으로 남기는 북리뷰는 미셸 푸코의 저작이다. 을 통해 미셸 푸코의 글을 접한 뒤 대충 예상은 했지만, 마음에 드는 구절들을 갈무리한 지금도 그의 글을 제대로 이해한 것 같지가 않다. 의 서두에 그가 밝힌 것처럼 자신의 글이 자신의 손을 떠나 다른 이의 수중(手中)에 들어가는 순간 전혀 다른 텍스트가 된다고 했듯, 한참 부족한 나의 독서를 이해해줄까. 광기와 이성, 비(非) 광기와 비(非) 이성, 인간과 환경의 관계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아서, 두 개의 면인 듯 사실은 알고 보면 하나의 면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미셸 푸코는 역설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단언(斷言)이 생략되어 있을 뿐, 미셸 푸코는 이 거대한 텍스트를 통해 '영원히 균형을 이룰 수는 없지만 바로 그 불안정한 상태의 지속이 일종의 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