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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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모독일상/book 2019. 6. 25. 00:08
회사로 가는 길은 늘 지루하고, 그래서 사람 없는 지하철 안에서 슈슈슉 읽어내려간 책. 로베르토 볼라뇨의 책에 인용된 까닭에 페터 한트케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이렇게 전위적인 동시대 작가의 대표작이 연구되고 번역되어 이렇게 지하철 안에서 편안히 읽을 수 있다는 게 참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책은 굉장히 얇고 가볍지만, 작품이 소쉬르의 언어학에서 말하는 '빠롤(parole)'에 천착해 있고 프랑스 구조주의의 영향을 받은 만큼 내용은 상당히 난해하다. 꼭 이상의 를 읽는 듯한 느낌. 게다가 희곡의 후반부에 관객을 향해 반말투로 뇌까리는 대사를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이 작가, 참 건방지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뒤이어 드는 생각은 이렇게 저돌적인 작품에게 큰 호응을 보낸 독일 시민들의 문학적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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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6-I일상/book 2019. 6. 22. 23:25
로베르토 볼라뇨 전집 장만+_+Good LUCK~ 어느 날 나는 관리자 중 한 사람과 만났지요. 난 그런 바보 같은 머그잔을 만드는 게 지겹다고 말했어요. 그 관리자는 좋은 사람이었어요. 이름이 앤디였지요. 항상 노동자들과 대화하려고 노력하던 사람이었지요. 그는 내게 우리가 전에 만들던 머그잔을 만들고 싶냐고 물었어요. 난 바로 그거라고 대답했지요. 진심으로 말하는 거예요, 딕? 그는 물었어요. 난 정말로 진지하게 말하는 거라고 대답했어요. 그러자 새로운 머그잔 때문에 더 일을 많이 해야 하나요? 관리자는 물었어요. 난 전혀 그렇지 않다고, 일은 동일하다고, 그러나 전에는 머그잔들이 내게 해를 끼치지 않았지만 지금의 컬러 머그잔들은 내게 상처를 준다고 말했어요. 그게 무슨 말이죠? 앤디가 다시 물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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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영화 두 편일상/film 2019. 6. 21. 23:19
학생 때처럼 편한 시간에 영화를 보러가지는 못하지만, 관심이 가는 영화제에는 혼자서라도 발걸음을 한다. 그렇게 들른 곳이 아랍 영화제. 아랍 영화제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매년 빠짐없이 영화제에 간 것 같다. 이번 영화제에서 관람한 작품은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하고 아랍영화제의 개막작이기도 했던 이다. 영화는 정부군과 반정부군이 대치하고 있는 내전상황에서 고달프게 살아가는 시리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사드 정권의 폭압 아래, 정부군과 반정부군이 도시의 이 구역 저 구역을 가리가리 쪼개어 관할하고 다마스쿠스 근교. 사람들은 바로 옆 구역을 가기 위해서도 검문을 거쳐야 하는가 하면, 민간인을 대상으로 불심검문도 아무렇지 않게 이루어진다. 한국전쟁 때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한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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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가까이일상/music 2019. 6. 18. 08:12
# Favorite Song 애송이의 사랑, A’ddio /양파 To heaven, 아시나요 /조성모 반복해서 듣는 요즘 노래가 질려서 예전 노래를 뒤진다. 마땅히 다시 반복해서 듣고 싶은 예전 노래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던 차에 발견한 (조금은) 옛 곡들. 이 직전까지는 보아(BoA)—mp3가 대중화되기 전 앨범을 사서 들었던 몇 안 되는 가수—노래를 되감아 듣고 있었다. 여하간 앞의 두 사람은 가요에 눈뜨기 직전에 활동한 가수들이라 엄청 좋아했던 기억은 없는데, 오랜만에 찾아들으니 노래가 좋다. 가사도 똑같은 우리말인데 20여년 전—찾아보니 꼭 20년 전,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IMF로 불경기에 빠져있을 때다—의 표현법은 지금과는 또 사뭇 다르다. 말을 이해 못하겠는 건 아닌데, 요즘 노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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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아는 비밀일상/film 2019. 5. 14. 18:03
_##] 페넬로페 크루즈와 하비에르 바르뎀의 출연만으로 무조건 봐야겠다고 생각한 영화. 스페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명랑하고 쾌활해 보이지만, 이면에는 인간의 어두운 측면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들인 것 같다. 나는 ‘스페인 영화’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르가 미스터리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음울한 작품부터 시작해서, 나 에 이르기까지··· 꼭 스페인 영화가 아니더라도 스페인어권인 남미의 영화들도 대체로 어두운 톤이다. 사실 이번 영화는 감독의 개성과 철학이 면면히 녹아든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처럼 작품의 완성도를 추구하는 작품이라기보다는, 나 처럼 작심하고 만든 추리물이라 할 수 있다. 은 마치 을 연상시키는 시계탑 안에서 목가적인 분위기와 함께 스토리의 포문을 연다. 뒤이어 결혼식에서 발생한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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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타자들일상/book 2019. 5. 9. 18:09
얼마전 이라는 영화를 보고나서 ‘나와 다름’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했던 적 있었는데, 그저 소수 또는 약자에 대한 존중을 ‘다름에 대한 인식개선’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을 맺었었다. 이졸데 카림은 ‘정체성의 감소’라는 개념을 동원하여 다원화된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정치적 인간이 될 것인지 논의하며, 오늘날 득세하는 포퓰리즘을 좌파/우파 각각의 시점에서 비판을 제기한다. 개인적으로는 꽤나 난해한 미셸 푸코의 보다는 논문처럼 명료한 단어와 함께 논리를 펼쳐나가는 이번 글이 훨씬 재미있게 읽혔고, 페이지 하나하나마다 예리한 분석이 담겨 있어서 다시 한 번 읽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시민들이 탈정치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통념과 달리, 양태(樣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