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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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일상/book 2016. 12. 19. 18:37
지난 두 세기 동안,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우리 세계는 협량(狹量)과 희망과 절망의 폭풍에 난타당해 왔다. 자, 강을 생각해 보아라. 단단한 땅, 튼튼한 제방 사이를 오래오래 흘러가는 넓고 웅대한 강을... 어느 시점에 이르면 흘러가는 강은 기진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 너무 넓은 공간을 흘렀기 때문이요, 마침내 바다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로써 강은 더 이상 제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강의 정체성은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다. 바로 이곳에서 강은 강 자체의 삼각주가 된다. 주류(主流)는 남을지 모르나 지류는 사방으로 흩어진다. 혹 어떤 흐름은 흐르기를 계속하고, 혹 어떤 흐름은 다른 흐름에 휩쓸리나 어느 흐름이 어느 흐름을 낳고 어느 흐름에 휩쓸리는가는 아무도 모른다. 어느 것이 여전히 강이고 어느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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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일상/film 2016. 12. 18. 20:50
이 역시 이번 베니스 영화제에 출품된 작품으로, 영화제에서 3개 상을 수상하며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이탈리아 영화제에 앞서 강력하게 추천된 작품이었고,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탈리아말로는 "Orecchie"인데, 우리말로 바꾸니 라는 단음절이 되어서 더욱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의 영화였다. 헤아려보면 올해 65편의 영화를 봤는데, (하나하나 감상이 모두 떠오르지는 않지만)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중에 하나로 남을 것 같다. 적어도 연말에 생각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보기 좋았다. 영화에서 내가 끌어낸 주된 메시지는 "삶에는 유머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주인공은 매사 심각하고 생각이 많은 인물이다. (주인공이 나랑 정말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직접적(대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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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타임일상/coffee 2016. 12. 15. 23:05
저녁을 먹고 추운 날씨에 종종걸음으로 걷던 중, 광화문에 낯익은 원두가 진열돼 있길래 호기심에 들어가 보았다.마포의 유명카페인 의 원두가 어쩐 일로 광화문에..??! 라는 카페인데, 앉아서 먹을 자리는 없고 테이크아웃 매장이다.커피 내려주시는 분께 여쭤보니, 에스프레소 머신을 수입하는 에이전시가 프릳츠와 계약을 맺어 협업하고 있다고 한다..머신을 제공하는 대신 원두를 제공받는 식으로..카페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에스프레소 머신을 수입하는 에이전시에서 이런 카페를 운영한다는 게 신기했다.다른 지점이 더 있냐고 또 여쭤보니, 원래는 경기도 광주에 있는데 서울에 테이크아웃 매장은 광화문이 처음이라고 하셨다.여튼 문을 연지 한 달도 안 됐다고 하니, 어쩐지 못 보던 카페라고 생각했다. (검색해보니 광주에 있는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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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 Off Your Brain, just for a moment일상/film 2016. 12. 12. 11:18
다시 보니 포스터에 숨은 그림이 있었다;; 왜 저런 일러스트를 넣었는지는 영화를 보니 알 것 같다. 여성과의 만남에 집착하지만 곧 사소한 단점을 꼬투리 잡아 떠나버리는 "톰마소"의 이야기. "톰마소"는 여성편력이 화려하다기보다는 일종의 병적인 심리상태에 놓여 있는 인물이다. 본인의 망상과 욕망을 '절제'하려고 하지만 사실 그의 연애패턴은 매우 '무절제'하고 '이기적'이기까지 하다. 겉모습은 '어른'이지만 하는 행동이나 사고방식만 봐서는 '어린이'인 이른바 "어른이"다. 심리치료사는 그에게 그의 안에 내재된 "어린이(Bambino)"를 발견하라고 요구한다. 그와 끝까지 밀당했던 소니아 역시 톰마소를 보고 "그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다"고 조롱한다. 사실 가장 괴로워하는 건 "톰마소"이고, 본인이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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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참 내 말 좀 들어보시오 쫌!!일상/film 2016. 12. 11. 19:35
I am not a client, a customer, nor a service user. 저는 고객, 손님, 이용자가 아닙니다.I am not a shirker, a scrounger, a beggar nor a thief. 게으름뱅이, 걸인, 거지, 도둑이 아닙니다.I am not a insurance number, nor a blip on a screen. 저는 보험등록번호, 컴퓨터화면의 처리신호가 아닙니다.I paid my dues, never a penny short, and proud to do so.저는 한 치의 모자람 없이 의무를 다했으며, 이를 자랑스럽게 여깁니다.I don't tug the forelock but look my neighbour in the eye.호의를 얻고자 굽실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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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들마치일상/book 2016. 12. 11. 11:25
오늘날에도 수많은 테레사가 태어나지만, 불행히도 그들은 명성을 드높일 서사적 삶을 찾아내지 못한다. 고귀한 정신은 있지만 그런 정신을 발휘할 기회가 없어서 실수투성이 삶을 살 것이다. 그들의 실패가 아무리 비극적이라 해도 그 실패를 읊어줄 훌륭한 시인이 없으며, 죽어서 잊혀도 그들을 위해 읊어줄 사람이 없다. 그들은 캄캄한 미로 속에서도 희미한 등불에 의지해 고상하게 사상과 행동을 일치시키려 애썼다. 그러나 결국 보통 사람들 눈에는 그런 노력도 다만 추상적인 모순으로만 보인다. 왜냐하면 이들, 뒤늦게 태어난 테레사들에게는 그 열렬히 자발적인 영혼에게 지식의 역할을 해줄 일관된 사회적 신념이나 사회적 질서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들의 열정은 막연한 이상과 평범한 여성의 동경 사이에서 방황하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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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일상/book 2016. 12. 10. 17:03
"내 영혼의 대장간에서 아직 창조되지 않은 인류의 양심을 벼리고 싶다" "모든 의사가 질병을 치료하는 동안, 신경외과의는 정체성이라는 혹독한 용광로 속에서 일한다. 모든 뇌수술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본질인 뇌를 조작하며, 뇌수술을 받는 환자와 대화할 때에는 정체성의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더해 뇌수술은 대개는 환자와 그 가족에게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이며, 그래서 인생의 중대한 사건들의 그렇듯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이처럼 결정적인 전환점에서 요점은 단순히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어느 쪽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이다. 뇌는 우리가 겪는 세상의 경험을 중재하기 때문에 신경성 질환에 걸린 환자와 그 가족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계속 살아갈 만큼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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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LA)에서 전해 온 세레나데일상/film 2016. 12. 9. 22:02
배우들 참 좋다~ 생각하면서 개봉하자마자 본 영화. 나만 그렇게 느낀건지, 영화에서 인종차별적인 장면들이 나와서 작품 자체는 좋다면서도 심히 거슬렸던 영화이기도 하다. "사기당하다"라는 표현을 꼭 "shanghaied"로 써야 하는지, 잘못 걸려온 전화에 왜 중국어를 우스꽝스럽게 따라하며 끊어버리는지 좀 짜증나더라. 우리나라에서도 귀찮은 전화에 한국어 모르는 척을 한다는 우스갯말도 있다지만, 괜히 영화에 아시안들이 안 나오는 것처럼 보이고..여튼 별 거 아닌지는 몰라도 좀 그랬다. 그런 몇몇 아쉬운 부분들만 뺀다면 영화는 정말 좋았다!!! 영상, 노래, 안무 모두 다 좋았다. 첫 장면부터 방대한 뮤지컬의 스케일에 시선이 사로잡히기도 하고, 후반부에 파리가 묘사되는 영상,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단둘이 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