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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나무들은일상/book 2023. 6. 23. 08:52
모처럼 최승자 시인의 수필집을 집어들었다. 최승자 시인의 시집과 산문집을 읽은 적은 있지만, 수필집을 읽어보는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최승자 시인의 시가 마음에 드는 것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또 다른 시집을 찾아보는 것보다 수필집이 더 홀가분하게 읽힐 것 같아 이 책을 고른 것도 있다. 손에 꼽을 만큼 시를 읽는 나로서는 아직까지 운율이라든가 압축이라든가 하는 것보다는 줄글이 더 편하기만 하다. 산문집을 포함해 그녀의 시는 대체로 인간 내면의 어둡고 공허한 부분을 다루고 있어서, 수필집도 내용이 무거우려나 궁금했는데 다행히 에 담긴 그녀의 일상은 평범하고 익살스럽기도 하다. 이 책은 부제(副題)가 말하듯이 작가가 아이오와에 가서 다른 3개월 남짓 다른 나라에서 온 작가들과 교류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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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무녀도(巫女島)여행/2023 초여름 고군산군도와 관아골 2023. 6. 22. 08:47
계절이 여름에 가까워지면서 한동안 주말이 되면 비가 오는 날이 이어지곤 했다. 한 주는 주말에 날씨가 맑을 것이라는 예보를 보고 군산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순전히 즉흥적인 생각은 아니고 요 근래 가보고 싶은 곳으로 한동안 머릿속에 점찍어둔 곳이었다. 하고 많은 곳 중 군산을 점찍어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바다가 보고 싶다는 지극히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또 그 많은 바닷가 중에 군산을 찾게 된 까닭이라 하면, 한동안 동해는 자주 여행을 했었고 남해를 가자니 너무 멀고 수도권 지역의 바다를 보자니 도시를 벗어나는 느낌이 들지 않으니 군산이 여러모로 내가 찾는 여행지에 부합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군산은 서울로부터의 직선거리로 멀진 않아도 교통편으로 접근하기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나는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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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바다들―서해주제 없는 글/印 2023. 6. 21. 00:09
# 시화(始華)의 바다는 따뜻하다. 바다 정면으로는 뭉툭한 바위섬이 올라 있고, 하늘에는 그대로 멈춰버린 연들과 분주한 갈매기들이 서로 다른 종류의 선을 그린다. 시화호 위로 에메랄드 색으로 페인트칠을 해놓은 송신탑이 도시로 도시로 끝없이 뻗어 있다. 그리고 바다 위로 늦은 오후의 태양이 아낌없이 떨어진다. # 오이도(烏耳島)의 바다는 혼잡하다. 땅딸막한 등대가 자리한 정방형의 항구에는 수산식당이 즐비하고 그 앞에는 주차된 차량이 빼곡히 늘어서 있다. 그리고 호객하는 직원들의 손짓. 부두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흔히 보이고, 조악하게 장식된 꼬마열차가 뱀처럼 가장자리를 누빈다. 그 복잡한 풍경 속에 저 멀리 인천 일대의 높다란 건물들이 두꺼운 띠를 이루며 희뿌옇게 바라다보인다. # 궁평(宮坪)의 바다는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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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뒤피(Raoul Dufy) 展주제 있는 글/Arte。 2023. 6. 20. 18:03
라울 뒤피라는 동일 작가를 두고 우리나라 두 곳에서 전시가 이뤄진다는 뉴스를 보고, 하루는 전시회를 관람하기 위해 여의도로 향했다. 라울 뒤피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퐁피두 센터와 제휴된 전시회다. 특별전이니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라울 뒤피의 특별전 입장료가 퐁피두 센터 입장료의 두 배가 되는 걸 보자니 우리나라 미술관의 비싼 입장료를 실감한다. 흔히 야수파로 분류되는 그의 작품들을 맨 처음 봤을 때 떠오르는 작가는 샤갈이다. 다채로운 색깔로 캔버스 위에 임의의 구획을 만든 뒤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이 샤갈의 그것과 닮았다. 다만 라울 뒤피의 작품에서 사람은 좀 더 생략돼서 표현되는 경향이 있고, 자주 사용되는 소재(그의 활동무대이기도 했던 마르세유의 바다)도 샤갈과는 차이가 있다. 색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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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사(麻谷寺)주제 없는 글/印 2023. 6. 9. 08:51
서울을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하늘에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는데, 곡두터널을 지날 즈음에는 두터운 구름이 걷혀 있었다. 곡두터널은 천안과 공주시를 이어주는 짤막한 터널이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린 차는 천안을 빠져나온 뒤부터 내내 구불구불 국도를 달렸다. 차머리 위로 흘러가는 나뭇잎은 벌써 한여름을 예고하고 있었다. 내가 이날 향한 곳은 마곡사였다. 내가 마곡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산사'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의 일이다. 안동을 여행하던 중 우연히 봉정사라는 곳을 찾게 되면서 산사의 존재를 알았다. 우리나라에 산 속에 자리잡은 사찰이야 한두 곳이겠냐마는 나는 이때의 여행을 계기로, 영주의 부석사와 보은의 법주사를 차례차례 찾았다. 경상남도와 전라남도 지방에 자리한 통도사와 선암사, 대흥사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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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바다들—동해주제 없는 글/印 2023. 6. 5. 00:33
# 망상(望祥)의 바다는 몽롱한 은빛 하늘로 인해 푸르름이 바래 있었다. 그럼에도 동해안에서도 큰 축에 속하는 해수욕장인지라, 때 아닌 더위를 피하기 위해 해안가 앞에 파라솔을 펼치고 진치고 있는 행락객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피서철 대목을 준비하는 상점가에서도 슬슬 분주함이 느껴졌다. # 나곡(羅谷)의 바다는 하천이 끝나는 지점에 대롱대롱 매달린 형상의 외진 해안이다. 해안가가 넓다고 할 수도 없고, 그마저도 들쑥날쑥 솟아오른 바위들로 인해 해안선이 흐트러져 있다. 그런 한적한 해안가에서 대여섯 명 정도가 바다낚시를 즐기고 있다. 사장(沙場)을 복원하기 위함인지 모래더미가 한가득 쌓아올려진 이곳은 방비되지 않은 채 버려진 곳 같기도 하다. # 구산(邱山)의 바다를 나는 좋아한다. 월송정의 서사는 고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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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과 은총일상/book 2023. 6. 4. 11:13
에서 시몬 베유에 관한 글귀를 발견하고 그녀의 글을 읽어보았다. 은 국내에 번역된 몇 안 되는 그녀의 글 중 하나인데, 메모에 가까운 그녀의 짧은 글들을 엮어놓은 것이다. 이야기의 흐름이 있게끔 글들을 엮어놓았다고는 하지만, 기승전결이 있는 글은 아니라서 소제목을 보고 읽고싶은 부분을 그때그때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런 글의 특성상 그녀의 흩어진 생각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다. 책의 제목인 에서 중력은 하강하는 에너지로써 상승하는 에너지인 은총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소개된다. 유한한 인간은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데, 하강으로 이끄는 에너지로써 중력과 같은 것들로는 인간의 유한한 상상력, 욕망, 악이 거론된다. 이런 것들은 중력과 같아서 인간과 가까운 곳에서 힘을 미치고 강력한 인력을 지닌다. 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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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리고 여기일상/music 2023. 6. 3. 15:56
J'ai osé, enfin j'ai oséTe dire Ce qu'il y avait derrière Mon sourire J'ai osé, enfin j'ai osé T'écrire Qu'est-ce qui pouvait arriver Au pire? Et toi tu flottes Sur un nuage brillant Et jamais Ne te lasses Et tu ne vois Qu'ici et maintenant Le temps sur toi ne laisse pas de trace Ici et maintenant, REB Même dans l'au-delà moi, je suivrai tes pas Les hauts, les bas on saura éviter les balles Da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