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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하회마을여행/2023 봄비 안동 2023. 5. 16. 22:03
비내리는 하회마을에는 제법 사람들이 있었다. 두 번째 하회마을 방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면 지난 번 여행에서 들르지 못한 부용대를 들렀다는 것이다. 지난 번 뚜벅이 여행을 할 때에는 호우로 인해 배다리가 유실되어 부용대 쪽으로 넘어갈 수 없었다. 이번에도 여전히 배다리는 없었지만, 그 대신 차가 있었기 때문에 하회마을을 빠져나와 부용대에 자리한 화천서원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하회마을에 두 번째로 왔다고 해서 새로이 볼 게 없던 건 아니었다. 일단은 안동시 전체가 비내리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축제 분위기였기 때문에, 그 연장선상에서 하회마을에서도 소소한 놀이거리가 제공되고 있었다. 나와 히데는 마을 안에 마련된 공간에서 붓글씨를 써보기도 하고 절구를 찧어보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서예를 할 때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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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일본인 친구를 사귀다여행/2023 봄비 안동 2023. 5. 15. 11:33
안동에서 히데(秀)를 만난 건 순전히 우연이라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내가 묵던 게스트하우스는 유난히 외국인이 많아서 체코나 스코틀랜드에서 온 사람들이 있었다. 아침시간에 우연하게 우리나라 사람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과 주방에서 간단히 인사를 했는데, 알고보니 나가노에서 온 히데토시(秀俊)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가 한국인이라 생각했고, 고등학생에서 갓 대학생이 된 정도의 나이대로 보았다. 그래서 공용공간에서 식사를 하며 ‘혼자 여행오셨냐’고 한국어로 간단히 묻자 그가 우물쭈물 대며 한국어가 안 된다는 제스쳐를 취했을 때, 얘기를 나눠보니 일본인이고 나보다 한 살 아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깜짝 놀랐던 것이다. 우리는 곧 동행인이 되어 아홉 시 반쯤 하회마을에 가기로 했다. 안동은 차가 없이는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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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일상/book 2023. 5. 14. 10:04
네 근심 하나님의 어깨 위에 올려놓아라 그분께서 네 짐 지고 너를 도우시리라. 선한 이들이 쓰러져 파멸하는 것을, 그분 결코 그대로 두지 않으시리라. [시 55:22-23] 하나님, 만군의 하나님, 돌아오소서! 주님의 복되고 환한 얼굴빛 비춰 주소서. 그러면 우리가 구원을 받겠나이다. [시 80:19] 흰 구름과 먹구름이 그분을 둘러싸고, 공평과 정의 위에서 그분의 통치가 이루어진다. 불이 주님 앞에서 환히 빛나니 험준한 바위산 꼭대기에서 타오른다 그분의 번개가 번쩍 세상을 비추니, 깜짝 놀란 땅이 두려워 떤다. 산들이 하나님을 보고는 땅의 주님 앞에서 밀초처럼 녹아내린다. 하늘이 선포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바로잡으실 것임을. 그대로 되는 것을 모두가 보리니, 참으로 영광스럽구나! [시 9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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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월송정(越松亭)여행/2023 봄비 안동 2023. 5. 13. 05:15
만휴정에 이어 내가 향한 곳은 다른 곳도 아닌 월송정(越松亭)이다. 월송정에 대해서는 많은 부연이 필요하지 않다. 싱그러운 소나무와 바다가 있는 곳. 그리고 그 완충지대에 봉긋 솟아오른 둔덕, 둔덕의 곡선을 어지럽히는 첨예한 정자. 비가 내리는 월송정을 가보고 싶었고 나는 당진영덕고속도로를 달려 그곳에 도착했다. 불과 5개월 전쯤 이곳을 찾았기 때문에 기억 속 낯익은 진입로와 주차장이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낸다. 사철 푸른 소나무가 펼쳐진 이곳의 풍경이 겨울과 크게 달라졌을 건 없다. 겨울에도 그랬듯이 이곳의 금강송들은 싱그러운 붉은 몸통 위로 진녹의 침엽을 하늘로 뻗어올리고 있었다. 먹구름을 떠받치는 덩치 큰 소나무들을 올려다보면 좀전까지 진녹의 빛깔을 띄었던 잎사귀들은 이내 빛을 등진 시커먼 응달로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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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出張)주제 없는 글/印 2023. 5. 12. 18:15
출장을 다니며 좋은 경치를 구경해도 결국 드는 생각은 여행이란 내 돈 주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사실 내 옆에 있던 K 팀장의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곧바로 수긍했는데, 처음 가는 출장이 아무리 설렌다 하더라도 장거리 운전을 하고 익숙치 않은 길을 다니다보면 지치게 마련이다. 출장을 가지 않았더라면 사무실에서 했어야 할 업무 전화들은 여지 없이 걸려 온다. 결국 업무의 연장선상인 것이다. 그래도 잡학다식한 K 팀장과의 동행은 그렇지 않으면 심심했을 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부산과 거제를 거쳐 통영에 왔을 때 비는 시간을 이용해 잠시 한산도에 다녀왔다. 이순신은 임진왜란 당시 한산도 앞바다에서 처음으로 학익진 전법을 구사했다고 전해진다. 그런 작전이 구상되고 훈련이 이뤄졌던 곳이 바로 제승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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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만휴정(晩休亭)여행/2023 봄비 안동 2023. 5. 11. 00:52
빗길 운전은 긴장되는 일이어서 안동으로 들어온 뒤에 지난 여행에서 자주 찾았던 카페로 향했다. 카페로 가는 길에 보니 불과 3년 사이에 안동역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안동역의 위치가 옮겨졌다는 것이다. 청량리발 KTX역이 신설되면서 구 역사는 문화플랫폼으로 변모해 있었다. 지난 여행에서 안동행 완행 열차를 탔던 걸 떠올리며 조금 아연했다. 다른 한편으로 모디684라는 이름—‘모디’는 경북 방언으로 ‘다함께’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으로 탈바꿈한 옛 안동역 광장 앞으로는 라는 타이틀로 행사가 크게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나중에 히데(秀)와 차전놀이를 구경하게 된다. 카페를 입장했을 때 나는 냄새로 이 공간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흠칫 놀랐다. 아기자기한 다육식물과 화초,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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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안동여행/2023 봄비 안동 2023. 5. 10. 20:44
안동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내내 비가 내렸다. 터널 하나를 통과하면 빗줄기가 약해졌다가, 다른 터널을 통과하면 빗줄기가 굵어지곤 했다. 터널 하나를 지나면서 과연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다가도, 다음 터널을 지나면 아무래도 이번 여행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번갈아 들곤 했다. 국내에서도 아직 가보지 않은 지역이 많기 때문에 한번 간 적이 있는 여행지는 잘 가지 않는 편이다. 그럼에도 안동을 다시 찾게 된 건 그냥 이전의 기억이 좋았기 때문이라고밖에는 달리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20년도 장마철 5일간 머무르면서 들렀던 카페, 보았던 풍경들이 모두 좋았다. 빗길을 운전하면서도 날씨와 상관 없이 안동에 잘 쉬었다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바로 그 때문인지 모르겠다. 최근 경상남도 지역에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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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9일상/book 2023. 5. 2. 19:37
1894년 갑오경장은 형식이나마 천인(賤人)의 면천 조치를 취했고 이어 동학란이란 거센 바람도 신분제도, 그 오랜 폐습을 완화하는 데 이바지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뿌리 깊은 천인들의 애사(哀事)가 일조일석에 달라질 수는 없는 것이다. 역인(驛人), 광대, 갖바치, 노비, 무당, 백정 등 이들은 변함없는 천시와 학대를 받는 것이었고, 양반이 상민을 대하는 것 이상으로 상민들은 그들 천민 위에 군림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백정이라면 거의 공포에 가까운 혐오로 대했으며 학대도 가장 격렬했었다. p. 199 “호랑이가 늑대를 잡아먹고 늑대는 고라니를 잡아먹고, 짐승들 세계와 뭐가 다르다 하겠습니까. 그것이 자연의 법이라면 우리가 하는 일,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모두 헛된 꿈이지요. 인간이 인간을 다스린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