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프랑스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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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의 일기: 리옹(Lyon)Vᵉ arrondissement de Paris/Juin 2023. 1. 4. 00:33
리옹(Lyon)은 이번 남프랑스 여행의 종착지이다. 내 기억 속 리옹 여행은 대단히 빈약한 일정으로 꾸려졌었는데, 다시 기억을 소환해보면 주요 명소는 놓친 게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우선 나는 이번 여행에서 숙박을 전혀 정해두지 않은 채로 이동했기 때문에, 리옹에 도착했을 때에도 가장 먼저 했던 건 숙소를 찾는 일이었다. 리옹에 도착하기 전 인터넷으로 찾아봤을 때 리옹엔 예산 범위 안에서 숙박시설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도 경험상 어딜 가든 당일 취소 케이스가 생겼던지라, 리옹 도심에서 멀지 않으면서 배낭여행객의 리뷰가 많은 대형 게스트하우스 두 곳을 직접 찾았다. 하지만 내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가서 적절한 숙소를 찾지 못했고, 결국에는 리옹에 머물지 않는 쪽을 택했다. 마지막에 리옹 페하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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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의 일기(上): 모나코(Monaco)Vᵉ arrondissement de Paris/Juin 2022. 10. 15. 15:14
이튿날 내가 향한 곳은 모나코다. 이탈리아 국경에 자리한 벤티밀리아(Ventimiglia) 행—프랑스 명칭 벙티밀(Ventimille)—열차를 타면 멍통(Menton)에 도착하기 전 모나코에 다다른다. 이 즈음부터는 카메라의 메모리가 부족해서 사진 일부를 삭제했는데, 최근 사진을 찾다보니 모나코에서 리옹에 이르는 약 사흘간의 사진기록이 사라졌다. 다행히 드문드문 휴대폰으로 남긴 사진이 있어 그때의 여정을 되짚어볼 수 있었다. 이러나 저러나 모나코에서부터는 여행을 즐기기보다는 여행을 그 자체를 위한 맹목적이고 기계적인 여행이 되어서, 이틀 뒤 리옹에 이르러서는 여행을 더 연장할 수 없다고 판단, 파리에 되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한국으로 귀국하는 비행편 일정을 2주일 정도 앞당긴 것도 이날의 일이다. 벤티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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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의 일기(下): 영화의 도시(Ville cinéphile, Cannes)Vᵉ arrondissement de Paris/Juin 2022. 9. 16. 13:53
# 칸느의 경우에도 굳이 따지자면 만족스런 여행이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제가 열리지 않는 기간의 칸느는 남프랑스의 특색 없는 도시처럼 생각된다. 하기야 우리나라에서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큰 도시인 부산이나 전주도, 영화제가 아닌 때에 여행을 가면 영화와 관련된 구경거리를 찾기 어렵다. 그래도 영화 박물관 하나 정도는 있을 거라 기대했건만, 영화의 거리가 조성되어 있는 부산의 국제시장 쪽과 비교를 해도 도시가 너무 말끔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날 여행에서 칸느에서 A를 다시 만남으로써 말동무가 생겼다는 것이다. 물론 A와 합류하는 것도 순탄치는 않았지만. # 칸느로 넘어오는 버스 안에서 A에게 마지막으로 받은 메시지는 크화세트 해변(Plage Croisette)에서 해수욕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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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의 일기(上): 향수의 도시(Capitale du parfum, Grasse)Vᵉ arrondissement de Paris/Juin 2022. 8. 30. 12:38
# 전세계 향수의 수도라 불리는 그라스 여행은 꽤나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A는 아침 시간에 엉티베(Antibes)를 가볼 생각이라고 했고, 나는 그라스에 가보려 한다고 말했다. 오후에 칸느에서 서로 합류하기로 한 뒤, 나는 니스 시(Nice-Ville) 역에서 종점이 그라스인 열차를 탔다. 해안을 달리던 열차는 엉티베를 지나는 지점에서부터 구불구불한 산길로 접어든다. 가끔 방훈(芳薰)을 낼 목적으로 방에 향수를 뿌리기는 하지만, 몸에 뿌리는 향수는 쓰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쓰는 건 향수라기보다는 차라리 방향제라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다만 '향수'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라가 프랑스고, 마침 향수로 유명한 도시가 남프랑스에 있다고 하니, 정확한 실체도 모르는 상징적 장소을 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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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8일의 일기(下): 니스에 이르다(À Nice)Vᵉ arrondissement de Paris/Juin 2022. 8. 28. 23:41
니스에서 R을 만나게 된 건 뜻밖의 일이었다. 라시오타를 거쳐 니스에 도착해 호스텔에 체크인을 할 때, 마침 R이 인사를 해온 것이다. R은 꺄시스에서 만난 투숙객으로, 따져보면 니스에서 다시 만난 게 전혀 뜻밖의 일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전날 R에게 꺄시스를 떠나면 다음에는 니스에 갈 거라는 말을 했었기 때문이다. 일정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녀도 니스에 갈 예정이라기에 서로 여행 정보를 공유했었다. 바캉스 기간에는 뛰는 물가보다 숙박이 가장 큰 문제였기 때문에, 꺄시스를 먼저 떠나게 된 나는 내가 알아보고 있는 숙소에 대해 이야기했다. 좋은 조건에 숙소를 구한 것 같다고 얼핏 말은 했었지만, R은 불현듯 니스로 오는 일정을 앞당겨 나보다도 먼저 니스에 와 있었던 것이다. 내가 아침에 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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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7일의 일기: 꺄시스(Cassis) —오르락 내리락Vᵉ arrondissement de Paris/Juin 2022. 8. 12. 21:43
# 꺌렁끄 덩 보(Calanque d'en Vau)는 꺄시스의 서북쪽에 위치한 협곡으로, 꺄시스를 찾는 여행객이라면 반드시 트레킹을 하는 코스다. 꺌렁끄 덩 보까지 가는 길에는 크게 두 개의 협곡이 더 있다. 가장 먼저 어제 잠시 들렀던 포흐 미우(Port Miou)가 있고, 다음으로 포흐 팡(Port Pin)이 있다. 두 협곡 모두 남서쪽을 향해 비스듬히 입을 벌리고 있다. 이들 지명에는 모두 '포흐(Port)'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지만, 포흐 미우만이 해안가를 따라서 소규모 여객선이나 보트들이 정박해 있다. 한편 종착지인 꺌렁끄 덩 보는 앞의 두 협곡과 달리 남동쪽으로 협곡이 바다로 이어져서 앞의 두 협곡과 지도상으로 직각을 이룬다. 꺄시스는 전형적인 휴양 도시로 나이 지긋한 관광객의 비율도 높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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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6일의 일기: 꺄시스(Cassis) —절벽에 오르다Vᵉ arrondissement de Paris/Juin 2022. 8. 3. 15:28
# 꺄시스는 내가 남프랑스로 넘어오면서 기대했던 지중해의 파랑을 처음으로 만끽했던 곳이다. 나는 아침에 마르세유에서 더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바로 꺄시스로 넘어가기로 했다. 숙소를 나설 때 열차표를 예약을 하고, 숙소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중앙역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열차 도착 20분 전이 되어도 전광판에 열차 정보가 뜨지 않았다. 다시 확인을 해보니, 마르세유 중앙역이 아니라 지선이 주로 발착하는 블랑캬흐 역에서 열차가 출발한다는 걸 알았다. 20분 안에 주파하는 게 불가능한 거리는 아니었지만, 블랑캬흐 역으로 향하는 1호선 메트로마저 코앞에서 놓치면서 완전히 열차 시간을 맞출 수가 없게 되었다. 너무 허무하게—사실은 내 불찰이지만—5.6유로 열차티켓을 날린 게 아까웠다. 결국 새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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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일의 일기 (下): 마르세유(Marseille) —파니에(Le Panier)까지Vᵉ arrondissement de Paris/Juin 2022. 8. 2. 00:12
# 마르세유가 초행인 관광객이라도 마르세유라는 도시의 분위기가 프랑스의 다른 도시들과 사뭇 다르다는 걸 어렵지 않게 느끼게 될 것이다. 마르세유 중앙역에서 마르세유의 중심가인 비유 포흐(Vieux port)를 가로지르는 라 꺄느비에흐(La Canebière)를 걷다보면, 같은 프랑스가 맞나 싶을 정도로 도시의 인적 구성 자체가 다르다. 행인의 절반 이상이 북아프리카나 서아프리카에서 온 이민자들로 보이고, 이는 메트로로 내려가 보아도 마찬가지다. 스카프를 두르고 길을 다니는 여성들도 많이 보인다. 마르세유가 프랑스 제2 대도시권역의 중심지다보니 식당이든 숙소든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많다는 걸 좋아하는 관광객도 있고, 마르세유의 수상쩍은 도시의 분위기와 치안 상황에 불안해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마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