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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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Nazi)와, 춤추는 나비일상/film 2020. 2. 24. 00:51
Schau nicht weg. 최근 보기 드물게 여러 편의 독일 영화가 개봉했다. 그 중 한 편('1917')은 1차 세계대전을 다루고 있고 나머지 두 편('조조 래빗'과 '작가 미상')은 2차 세계대전을 다룬다. 세 편 모두 아카데미 시상식—맞다, 봉준호 감독에게 영예를 안겨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이다^~^—에 노미네이트되었는데, 이 중 두 편('1917'과 '조조 래빗')은 영어로 된 영화이고, 다른 한 편('작가 미상')은 온전히 독일어로 되어 있다. '1917'은 마찬가지로 독일이 일으킨 전쟁을 다루기는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의 참화 속에서 영국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반면, '조조 래빗'과 '작가 미상'은 독일이 일으킨 전쟁 속에서 독일인들이 느꼈던 양가적인 감정을 다루고, 또한 전쟁의 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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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냘픈 날갯짓일상/film 2020. 2. 7. 21:05
올해 봤던 영화 가운데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영화는 단연 여감독들의 작품들이다. 이 그러하고 이번에 본 작품 가 그렇다. 작은 몸집의 벌새가 공중에 떠 있는 모습은 마치 정지화면 같지만, 이를 위해 벌새는 1초에 60번의 날갯짓을 한다. 마찬가지로 은희를 비롯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하루하루 무수한 날갯짓을 마음 속에 띄운다. 느낌 또는 생각의 파동이 느릿느릿한 화면 속에 꽉 차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영화를 봤다. 영화는 1994년 여름의 이야기를 다룬다. 사실 나는 영화 속 세대의 감성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한다. 김일성 주석 사망이나 성수대교 붕괴 사고는 아주 어릴 적의 일이다. 그 뿐 아니라, 아마 영화에 등장하는 은희나 지영 같은 인물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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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쥔 순응자일상/film 2020. 2. 6. 00:40
모처럼 명절을 맞아 같은 기간에 개봉한 영화 한 편을 봤다. 바로 . 동생이 내일 우리 가족 다 같이 영화관 갈까? 하는 제안에 곧장 예매를 했다. 보통 명절에 부랴부랴 영화티켓을 예매하면 괜찮은 위치에 자리 네 개가 연달아 있는 경우가 드문데, 다행히 조금 뒤쪽이기는 해도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자리를 구했다. 명절이 확실히 영화관 대목이기는 한지, 영화관에 가까운 층으로 갈수록 주차하기가 팍팍했다. 역사적 맥락 안에서 스토리를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역사 속 주인공을 스토리의 소재로 삼으면 어쩐지 부담스럽다. 예를 들어, 70~80년대 군부독재를 살아간 서울시민들의 애환을 담은 이야기라고 하면 괜히 더 궁금하지만, 독재정권의 정점에 있던 대통령과 막후의 핵심인물이었던 중앙정보본부장, 경호실장이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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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편의 스페인 영화일상/film 2020. 1. 25. 00:58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는 몇 초 동안 화면만 봐도 알 수 있다. 육감적으로 마블링된 패턴을 배경과 함께 포문을 여는 영화는, 뒤이어 코발트 빛 풀장의 수면 아래로 멍하니 눈을 뜬 채 부유浮遊하는 한 남자의 모습으로 연결된다. 마침내 수면 위로 고개를 젖힌 남자—살바도르(안토니오 반데라스)—의 시선은, 빨래터에서 물을 긷는 아낙네—꼬마 살바도르의 어머니(페넬로페 크루스)가 등장한다—들을 그리는 장면과 엮인다.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페넬로페 크루스라니 그저 반가울 따름이다. (페넬로페 크루스는 어느 순간에 나이듦이 멈춰버린 것 같다=_=) 대단히 자전적自傳的인 영화다. 그래서일까 처음에는 공감할 포인트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사실 이 이야기가 자신의 삶을 그리고 있다는 것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서 깨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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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영화 두 편 : 두꺼비와 어느 영웅일상/film 2020. 1. 24. 01:51
이라는 작은 규모의 영화제를 찾아 오랜만에 서울아트시네마에 들렀다. 이탈리아 영화를 보는 것 역시 참 오랜만인데, 다양한 영화를 보여주는 이런 영화관의 존재가 감사하게 느껴진다. 이런 영화제 소식은 한국에 살고 있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일지라, 과연 관객석에는 이탈리아 사람들도 보였다. 이 이라는 영화는 2019년 베니스 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진출한 작품으로 소개되고 있는데, 거창한 제목에 큰 기대를 건 것일까 너무 피상적이고 아무런 깊이감이 느껴지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다. 뭐 하나 제대로 파고든 게 없는 영화였는데, 가장 거슬렸던 장면은 미국식 교육환경에서 자라난 피에르파올로(루카 전처의 아들)가 이탈리아어를 배우러 로마에 온 아일랜드 유학생 마리안느에게 다짜고짜 '이탈리아는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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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영화 두 편 : 얼룩말과 페르소나일상/film 2020. 1. 23. 02:55
모처럼 프랑수아 오종의 영화를 봤다. 영화 는 아동성추행을 지속해온 어느 사제에 대한 고발을 다루는 이야기로, 호평 가운데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했다. 영화를 보게 된 것―개인적으로 종교적인 색채가 가미된 영화를 좋아하진 않는다―도 그런 높은 평가의 영향이 크다. 관능미 넘치는 영화를 줄곧 제작해왔던 프랑수아 오종이 픽션에 기반한 사회고발적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도 관심을 끌었지만 말이다…… 앞서 말한 영화의 소재―아동성추행을 지속해온 사제와 이를 묵인해온 카톨릭 교계―는 미국영화 를 떠올리게 하는데, 접근 방식은 두 영화가 정반대이다. 는 교단의 폐부를 파헤치기 위해 기자들이 문제를 발굴하고 이슈화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에서는 피해자들이 직접 발벗고 나서서 범행을 저질러왔던 한 사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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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켓과 부츠와 바지와 장갑과 모자일상/film 2020. 1. 17. 13:08
새해 첫 픽은 이다. 영상화면에 비친 장 뒤자르댕Jean Dujardin의 매력적인 미소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영화제목 때문에, 일찍부터 꼭 봐야겠다고 마음먹던 영화였는데 상영관도 많지 않고 그마저도 시간이 맞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다 얼마 전 작심하고 영화를 관람했다. 장르도 모르면서 프랑스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봤는데, 크로테스크한 분위기가 압도하는 영화다. 이와 비슷한 프랑스 영화로는 이자벨 위페르 주연의 와, 마찬가지로 기괴스럽기 짝이 없는 줄리아 듀코나우 감독의 가 떠오른다. 그래도 만큼 살벌한 영화는 아니고, 정도의 달콤살벌(?)한 무드가 이어진다. 또한 장총을 메어 들고 겨울숲으로 사냥을 떠나던 어느 프랑스 영화―삽입곡이었던 Fleetwood Mac의 가 무척 잘 어울렸다―의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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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多情)하거나 무정(無情)하거나 또는 비정(非情)하거나일상/film 2019. 12. 30. 20:46
대단히 사랑스러운 영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은 대략 일곱 여덟 편의 영화를 봤지만, 그간 이런저런 영화를 봐도 를 뛰어넘는 작품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고등학교 때 봤던 의 잔상이 강렬해서였을 것이다. 그래도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부단히 다루는 '가족'이라는 소재 안에서 조금은 다른 느낌의 무게감을 안겨줬던 것이 라 할 수 있는데,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리고 있는 이 작품은 임종을 앞둔 노년 남성의 에세이(essaie)를 그리고 있어서 절로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고, 가벼운 쇼크마저 받았었다. 국가간의 물적교류가 단절이 되어도 문화적 교류까지 끊겨서는 안 된다고는 하지만, 요새 일본영화들이 국내에서 거두고 있는 실적이 신통치 않은 듯하다. 흥행성 여부를 떠나서 예전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