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film
-
시간을 수선(修繕)해 드립니다일상/film 2020. 6. 28. 00:11
기억이 더 가물가물해지기 전에 리뷰를 남겨야 할 것 같다. 이 영화의 포스터를 보고 맨 처음 떠올랐던 것은 라는 프랑스 영화다. 프랑스 사람들은 시간(le temps)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단지 과거-현재-미래를 이동한다는 의미를 떠나 시간의 흐름을 재해석하는 데에 천부적인 기질이 있는 것 같다―두 영화의 공통점 모두 서로 다른 두 개의 시점들을 엮는다는 점일 것이다. 이와 반대로 두 영화가 차이나는 지점 또한 바로 그 '시간을 다루는 방식'에서 생겨나는데, 는 실제로 불연속적인 시간의 변환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반면, 는 아주 철저하게 현재에 천착하고 있다. 에 그려지는 빅토르의 화양연화(花樣年華; la belle époque)는 어디까지나 '연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연출된 가상의 과..
-
전망 좋은 방일상/film 2020. 6. 12. 23:10
“Women like looking at a view. Men don't.” 은 한 번도 귀에 접해본 적이 없는 영화다. 1986년에 제작된 영화가 재개봉한 것을 보면 남다른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하루는 일찍 일을 마치고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봤다. 와 이후 오랜만에 보는 영국 영화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와 같은 다른 유럽국가들과 달리, 개인적으로 영국 영화는 심심한 느낌이 있다. (부정적 의미가 아닌 비교의 의미에서 그렇다.) 아무래도 젠틀맨(Gentlemen)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레이디 퍼스트(Lady First)를 내세우거나, 행동을 단정하게 가다듬거나 하는 모습이 어쩐지 섬나라 특유의 점잔 빼는 느낌이 있다. 섬나라라는 온화한 분위기 안에서 형성된 특유의 완고함과 약간의 결벽..
-
미셸 르그랑(Michel Legrand)의 선율에 맞춰일상/film 2020. 6. 4. 22:35
어제는 34개 트랙에 달하는 미셸 르그랑(Michel Legrand)의 OST 앨범을 방에 무작정 틀어놓았다. 그리고 볼륨도 줄이지 않은 채 잠이 들었다. 뮤지컬 영화 에 흘러나오는 OST 곡들이다. 주인공들이 무도회장에서 불렀던 노래, 역 대합실에서 불렀던 노래, 보석상에서 불렀던 노래, 부둣가에서 불렀던 노래, 성당 앞에서 울려퍼진 노래, 주유소에서 재회한 옛 연인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가며, 소리를 통해 영화 속 장면들을 되겼다. 한동안 누벨바그의 흑백 영화만 보다가 총천연색의 뮤지컬 영화를 보니 산뜻한 기분이 든다. 코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의 작품 에 출연한 베테랑 배우 꺄트린 드뇌브(Catherine Deneuve)의 노련한 연기를 떠올리면서, 젊은 시절의 풋풋한 그녀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
-
네 멋대로 해라일상/film 2020. 5. 22. 00:05
"Oui, je le savais : quand on parlait, je parlais de moi, et toi de toi. Alors que tu aurais dû parler de moi, et moi de toi." 이전에 본 누벨바그―, , ―는 취향에 맞건 맞지 않건 메시지를 건져낼 수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누벨바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장 뤽 고다르의 는 무얼 건져올려야 할지 모르겠다. 이럴 땐 보통 영화제목에서 힌트를 찾는다. 우리나라에 로 소개된 이 영화의 원제가 로 '숨가쁘게'라는 의미다. 이 한 마디만 딱 들었을 때는 비틀거리며 절박하게 파리의 거리를 가로지르는 미셸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른다. Michel: C'est vraiment dégueulasse. Patricia: Q..
-
두 편의 누벨바그(Nouvelle vague)일상/film 2020. 5. 5. 20:56
프랑수아 트뤼포의 는 앙투안이라는 소년이 비행 청소년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다. 아녜스 바르다의 를 보고난 뒤, 누벨바그 두 편을 찾아보았는데, 그 중 한 편이 다. 도 그렇듯, 영화에는 파리의 풍경이 한가득이다. 아녜스 바르다의 영화가 클레오라는 여인과 거울에 비친 클레오라는 환영(幻影)을 다룸으로써 아름다움(美)에 대한 인식을 환기하는 데 반해,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에는 치기 어린 아이의 행동과 그 행동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사회라는 시스템 안에 통제되는 방식을 조명한다. 이 영화에도 아녜스 바르다의 영화만큼이나 거울이 자주 등장하는데, 앙투안이라는 캐릭터를 보면서 어쩐지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에 나왔던 말콤 맥도웰이라는 캐릭터가 떠올랐다. 보기에 따라 앙투안의 행동이 지나치다고 할 수도 있..
-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일상/film 2020. 4. 27. 23:37
Toutes portes ouvertes 모든 문은 열린 채En plein courant d'air 가득 흐르는 바람 사이로Je suis une maison vide 나는 빈 집에 홀로 있네Sans toi, sans toi 그대 없이, 그대 없이 Comme une île déserte 마치 황량한 섬처럼 Que recouvre la mer 어찌 바다는 뒤덮는가 Mes plages se devident 나의 해안은 휘감긴다Sans toi, sans toi 그대 없이, 그대 없이 Belle, en pure perte 상실 안에서 아름다운Nue au coeur de l'hiver 한겨울의 구름Je suis un corps avide 나는 텅빈 몸통이네Sans toi, sans toi 그대 없이, 그대 없이 R..
-
두 편의 요르고스 란티모스일상/film 2020. 4. 26. 23:56
는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다.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무능한 통치자가 보여주는 히스테릭한 면모가 매력적인 영상 안에 아주 효과적으로 그려진 영화다. 또한 역시 권할 만한 뛰어난 영화다. 묻힐 뻔했던 과거의 사건에서 촉발된 아슬아슬한 위기감이 주인공의 위선과 맞물려 살벌하게 전개되는 영화다. 한편 역시 매력적인 영화다. 행동과 언어가 유리(遊離)된 인물들은 희한한 시스템을 쌓아올린 후 서서히 붕괴해간다. 또한 는 어떠한가? 제약된 공간 안에서 사랑이라는 자원을 두고 벌이는 남녀들간의 갈등상황은 그 모티브만으로도 충분히 기발하다. 야근 후 곧바로 잠을 청하기 싫었던 어느 하루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필모그래피를 뒤적이다 아이튠즈 스토어에서 라는 작품을 발견했다. 그리고 4.99 달러를 결제한 뒤 시청했다...
-
두 편의 북유럽 영화일상/film 2020. 4. 17. 21:49
"What if you go there and discover there is no God?" 북유럽 영화로 묶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설국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북유럽 영화로 묶어보았다. 실제로 중부 유럽이라는 것 자체가 지리적으로 경계가 모호하기도 하고 말이다. 폴란드 영화감독 파벨 파블리코프스키의 작품은 로 처음 접했는데, 흑백으로 촬영된 점과 가로:세로=1.2:1 비율로 된 화면을 쓴다는 것이 서로 공통적이다. 뿐만 아니라 소재도 비슷하고 '선율'이 가득한 화면도 닮았다. 가 냉전 속에서 세파에 휩쓸려 난파당하는 한 연인의 사랑을 다룬다면, 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부모님의 족적을 따라가는 한 수녀의 이야기를 다룬다. 에서는 두 연인의 사랑을 통해 유럽대륙에 거칠게 드리워진 육중한 철의 장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