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film
-
악(惡)의 평범함에 대하여일상/film 2017. 8. 24. 00:03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서 거창하게 포스팅의 제목을 빌려왔는데, 대박이다 이 영화. 내가 추려낸 가장 큰 메시지는 '인간이 어떻게 나약한가?'하는 점이었다. 인간은 돈, 재물 등 물질적인 것에 약하지만 때로 물질적이지 않은 것에 대해 약하기도 하다.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할 때보다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신앙을 빙자한 테러, 사이비 종교집단의 무차별공격, 절대권력에 대한 맹종 등이 그러한 예다. 실체를 알 수 없는 것은 바로 그러한 연유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전설이 전설을 낳고, 경외심이 경외심을 낳고, 복종이 복종을 낳는다. 그런 점에서 '말'이라는 것이 무섭다. 인간이 다른 생물체와 다른 것은 '복잡한 언어'를 쓴다는..
-
깨진 유리창, 전화벨, 그리고 바칼로레아일상/film 2017. 8. 22. 00:30
1. MODERN ROMANIA이 영화와 감독 크리스티안 문쥬―이라는 작품을 통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국내에도 널리 알려졌다―가 고발하는 루마니아의 사회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루마니아의 근대사를 알아둘 필요가 있고, 루마니아의 근대사는 차우셰스쿠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가 없다.루마니아의 제1대통령이었던 차우셰스쿠가 재임한 약 16년(1974~1989)은, 한 번 잘못 쓰여진 역사적 경로가 현재를 얼마나 좌지우지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독재자로서의 집권기간 동안 차우셰스쿠는 2,000만 인구의 루마니아인 대다수를 도청하여 말과 행동을 통제했을 뿐만 아니라, 비합리적인 경제정책으로 농업자원이 풍부했던 루마니아에 경제파탄을 가져온다. 차우셰스쿠의 억압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허물을..
-
Adieu! Berliner Mauer일상/film 2017. 8. 2. 00:52
때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11월 전후. 동독의 체제 선전에 열성적이던 크리스티안은 불의의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다. 이내 의식을 되찾지만 그녀는 독일이 통일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아들 알렉스는 크리스티안의 건강을 생각해 '통일 이전의 독일'이라는 한 편의 쇼를 연출한다. People we used to consider enemies now want to live in our midst.It's our country's birthday today.Seen from space, it's tiny.We know our country isn't perfect.But the ideals we believe in continue to inspire people all over the world.We ..
-
하마야~ 돼지야~일상/film 2017. 7. 16. 00:29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영화를 보러 갔다. 즉흥적인 결정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정말 재미있게 봤다. 영화도 영화지만, 서로 다른 관점에서 영화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1. Pork영화는 육식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공장식 축산에 대해 고발하는 영화다. 오늘날의 인류는 기본적인 수준의 단백질을 충족시키기 위해 가축을 기르는 것을 넘어, 대량으로 가축을 기르고 GMO도 서슴지 않는다. 아이러니한 점은, 영화의 도입영상에 소개되는 것처럼 전세계 70억 명의 인구 중 8억 가까운 인구는 식량 부족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손쉽게 수많은 고기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말이다. 식량 과잉의 이 시대에 (게다가 비만이 문제되는 시대에) 누군가는 여전히 식량 부족에 허덕이는 것이다..
-
뒤틀린 욕망의 끝일상/film 2017. 6. 26. 21:12
라는 작품의 제목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라는 작품이었다. 발레하는 여학생과 남자 간호사간에 벌어지는 엽기적 로맨스인데 묘하게 이 영화와 오버랩되었다. 또 한 가지 떠올랐던 영화는 어쩌면 당연하지만 미카엘 하케네의 다. 병들고 왜곡된 욕망의 뒤엉킴, 그들 스스로도 천박하다고 부르는 욕망들. 완전 막장이라며 나온 관객도 있었지만, 나는 과장됨 없는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다. 물론 속 이자벨 위페르와는 다르고, 감독의 연출도 다르다. 개인적으로도 의 인상이 더 강렬하게 남아있다. 더군다나 스토리라인이 비교적 단순한 에 비해 는 인물관계도 꽤 복잡할 뿐만 아니라 실험적인 연출기법-컴퓨터 그래픽의 합성 또는 등장-을 사용하기도 한다. 가장 큰 차이는 그러나 남성과 여성의 대결구도 아..
-
황혼에서 새벽까지(Dusk to Dawn)일상/film 2017. 6. 7. 00:51
「황혼에서 새벽까지」. 여주인공―또한 방송인이기도 한―'헤바'가 극중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이름이다. 주로 정치적 사안을 다뤄오던 그녀는, 승진을 앞둔 남편 '카림'의 요청에 따라 방송에서 정치적인 이슈를 가급적 다루지 않기로 한다. 그래서 새로이 편성된 테마가 「황혼에서 새벽까지」다. 원래는 시시콜콜한 가십을 다루려던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다양한 사연을 가진 여성 게스트들을 접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황혼에서 새벽까지」라는 의미심장한 프로그램의 이름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집트의 여성이―더 나아가 여성 모두가―맞이할 여명(黎明)을 암시하는 듯하다. 영화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헤바' WHO is SCHEHERAZADE?영화는 어느 악몽과 함께 시작한다. 그 꿈의 주인은 '헤바'. 그녀는 도무지 ..
-
조르바가 되지 못한 사나이일상/film 2017. 6. 6. 17:58
88분 영화 치고는 꽤 밀도 있게 전개된 영화였다. "그건 프로젝트잖아. 꿈이 아니라.(It's a project, not a dream)" 림(여자주인공)이 헤디(남자주인공)에게 건넨 말이다. 림이 헤디에게 꿈을 묻자, 언젠가 자신의 그림을 화집으로 출간하고 싶다는 헤디. '하늘을 날고 싶다든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이 꿈이지'하고 되받아치는 림. 아마도 '꿈'이라는 게 요원(遙遠)한 무언가가 아니라 현실에서 실제 이루어낼 수 있는 무언가―프로젝트―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망망대해나 무인(無人)의 황량한 초원에 홀로 서 있는 '헤디'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나는 당신에게 한 번도 무언가를 해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어요!" 스물다섯 먹은 다 큰 어른이 엄마 앞에서 눈물을 보이면서 외치는 말이..
-
냇물과 들판, 사랑스런 얼굴들일상/film 2017. 6. 4. 17:42
올해에도 아랍영화제를 다녀왔다. 현장발권의 경우 무료라서 유럽단편영화제와 마찬가지로 돈들이지 않고 영화를 봤다. 대신 대기자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해서―더 일찍 오면 바로 표를 받을 수 있다―입장시각이 약간 늦어지기는 했지만, 영화를 재미있게 본 것으로 만족했다. 무슬림에 대한 편견이 늘어가는 요즘 같은 시기에, 아랍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정말 많지가 않은 것 같다. 그나마 아랍영화제라는 귀중한 기회를 통해 그 동안 이라크의 영화, 튀지니의 영화를 볼 수 있었는데, 이집트 영화는 올해가 처음이다. 유스리 나스랄라는 현재 이집트를 대표하는 감독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나는 처음 귀에 접한 감독이었다. 하긴 아랍권 전체를 통틀어도 내가 알만한 감독은 없기는 하지만. '샤디아(左)'에게 서투르게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