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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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처럼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23. 10. 3. 12:03
개천절까지 이어진 긴 추석 연휴다. 연휴 직전까지 뜨거웠던 낮의 햇살도 10월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청량한 가을 공기로 차갑게 식었다. 긴 연휴 동안 나는 본가에 머물며, 어릴 때부터 줄곧 살아온 동네를 떠나지 않는 일상을 보냈다. 집을 찾아온 동생 부부와 포켓볼을 치고, 점심을 먹으러 양평에 다녀온 것을 빼곤, 오전에는 카페에서 글을 읽고 오후에는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날들을 보냈다. 그것도 아니면 티비로 아시안 게임을 보는 식이었다. 그것만 해도 하루가 끝날 때쯤이면 꽤나 피곤한 상태가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연휴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어떻게든 여행을 다녀왔을 것이다. 하지만 뒤늦게 여행 계획을 세우기에는 금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빠듯하기도 했거니와, 그냥 가만히 그리고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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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날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23. 9. 11. 19:57
지오디 콘서트에 다녀왔다. 콘서트 전날까지도 누구랑 갈지를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가, 동생과 엄마를 모시고 콘서트장에 합류했다. 오전에 수업이 있었던 나는 피곤한 상태였지만, 아마 장거리 운전을 해야했던 동생이 더 피곤했을 것이다. 그래도 가족을 대동하고 가길 잘 했다 싶었던 것이, 나나 동생이야 지오디 세대라고는 하지만 지오디를 잘 알 리 없는 엄마도 엄청 좋아하셨다는 점이다. 엄마를 안 모시고 왔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정도였다. 푸드트럭에서 곱창과 생맥주를 사들고 잔디밭에 돗자리를 폈다. 입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늘색으로 된 셔츠나, 바지, 바람막이 등을 하나씩 걸치고 있었다. 공연시각이 되고 거대한 LED 판이 좌우로 갈라지면서 무대가 등장했다. 이번 콘서트는 'ㅇㅁㄷ지오디'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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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이사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23. 8. 26. 10:38
최근에 이사를 했다. 늘 그렇듯이 짐이랄 게 정해져 있고 많지도 않다. 그 중에 늘 껴 있는 건 찰스 에베츠의 커다란 흑백사진 벽보도 있다. 어쨌든 짐은 단출한데, 또 언제나 그렇듯이 이사 후에 짐이 정리되는 느낌이 드는 것도 아니다. 어느 정도는 필요한 것들을 새로이 사들여야 할 텐데, 넓지도 않은 집에 더 많은 물건을 들이기가 꺼려지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고민하다가 책장으로 쓸만한 선반을 하나 중고거래로 사들였다. 새까만 2단 철제 선반이다. 가운데 선반이 강화유리로 되어 있어서 좁은 방에서도 시야를 가리지 않는 시원한 디자인이다. 나는 장대비가 오락가락 하는 어느 저녁에 이 녀석을 사들고 30분 거리를 낑낑대며 걸어왔다. 거래한 장소에서 손에 들고 갈 수 있을 만큼 물건을 곧바로 분해한 뒤 준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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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 이야기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23. 8. 10. 08:53
하루는 자주 찾는 카페에 갔다가 만석이어서 별 수 없이 바로 옆 공원 정자에 잠시 앉았다. 비가 걷힌 뒤 푹푹 찌는 듯한 날씨였다. 그늘 아래 몸을 숨기고 넋놓고 앉아 있는데, 정자 위 마루에서 페트병으로 장난치는 아이의 소리가 들려왔다. 이 더위에 얼마나 넋을 놓고 있었던지 내가 오기 전부터 있던 아이인지 내가 오고 나서 나타난 아이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옆에는 웬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는데, 내게 다가와 연신 살갑게 부대낀다. 아마 나한테서 강아지 냄새가 나서일 수도 있고 천성이 사람을 좋아하는 강아지일 수도 있다. 그 품이 예뻐서 나도 놀아주게 된다. 사내 아이는 물이 반쯤 담긴 페트병을 던지며 노는 데 여념이 없다. 내가 강아지 나이를 물으니 그제서야 8개월이라고 짧게 답한다. 이름은 라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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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위치와 바나나주스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23. 4. 26. 03:03
지금 일하는 곳의 장점은 내가 좋아하는 장소들을 부담 없이 갈 수 있다는 점이다. 광화문의 서점이라든가 신촌의 단골 샌드위치 가게라든가, 좋아하는 라면집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가까이에 있다. 서울이 아닌 곳에서 꽤 오랫동안 일을 했던 나로서는 이런 환경이 감사할 따름이다. 하루는 아무 점심 약속이 없던 날 신촌의 샌드위치 가게를 찾았다. 나를 알아본 아주머니는 반갑게 인사한다. 일은 할 만한지, 요즘 장사는 어떤지 등등을 이야기하신다. 나는 샌드위치 하나와 아몬드가 가미된 바나나주스를 하나 주문했다. 지난번 왔을 때보다 손님이 늘어서 코로나라는 긴 터널을 지나오신 아주머니의 얼굴은 한결 누그러져 있었다. 같은 날 샛강을 건너 여의도로 향하는 길에 당산 방면으로 넘어가는 석양은 한여름 오렌지빛을 발한다.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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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세요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23. 4. 8. 12:31
# 올해는 유난히 벚꽃 볼 일이 많았다. 하루는 부모님을 모시고 양평 근교의 한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리옹식 음식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레스토랑은 북한강변에 자리잡고 있었다. 엄마는 종종 색깔 있는 옷을 입고 나서는 이런 나들이를 좋아하시곤 한다. 코스 요리 대신 부모님이 하나씩 양껏 맛보실 수 있도록 단품으로 된 뵈프 부르기뇽, 꺄나흐 콩피, 라자냐 등을 주문했다. 이날은 벚꽃을 구경하려는 인파가 몰리면서 평소 한 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를 두 시간 좀 안 되게 걸렸는데, 사장님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더니 부모님과 조심히 오라고 했고 식후에는 예정에 없던 마카롱까지 준비해주셨다. 부모님의 건강을 바라며 모처럼만에 가족간의 시간을 보냈다. # 귀여리의 벚꽃은 만개하기 전이었다. 북한강변을 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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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말 걷기의 기록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23. 3. 25. 12:00
벚꽃이 3월부터 폈던가, 일하는 곳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벚꽃이 만개했다. 재작년에는 벚꽃을 학교에서 보았고, 작년에는 프랑스에 있느라 벚꽃을 보지 못하고 봄을 넘겼다. 새로운 직장 생활에 적응도 필요했지만 집안의 크고 작은 경조사를 챙기느라 주말에도 쉬지를 못해 연초 몸이 성하질 않았다. 이제 봄이 오고 벚꽃이 핌으로써 시간의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가는 것 같지만, 그마저도 3월부터 서두르는 꽃망울들을 보니 마음이 벌써 쫓기는 듯하다. "모든 여행은 정확히 그 속도만큼 따분해진다." 최근 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루소는 타고난 산책가였다고 한다. 5G를 쓰고 우주 여행이 시작된 속도의 시대에 걷기라는 행위는 다른 어떤 수단을 통해 가급적 대체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다만 앞선 존 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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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만남에 대한 기록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22. 12. 21. 11:27
# 학부 시절 교내 박물관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만났다. 약속장소인 강남역은 잘 정돈된 도로에도 불구하고 항상 인파로 붐벼서 이곳에서는 방향감각을 곧잘 잃곤 한다. 역에 늦게 도착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역 안에서 우왕좌왕하다 5분 정도 약속장소에 늦었다. 모임이라고는 하지만 셋이서 만난 조촐한 만남이었는데 오랜만에 얼굴을 보니 무척이나 반가웠다. 학생 때의 얼굴과 크게 달라지지 않아 더 반가웠다. 다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각자의 길을 묵묵히 걸으며 살아가고 있었다니 신기하다. 그 중 O 형은 작년 말에 짧게 얼굴을 보긴 했지만, S 형은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 한번 모였었으니 8~9년만에 보는 얼굴들인데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친숙하다. 국밥집에서 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