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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4일의 일기: 수영(la natation)Vᵉ arrondissement de Paris/Avril 2022. 4. 4. 16:29
# 오전 오후를 학교 도서관에서 보내고 오후 다섯 시쯤 14구에 있는 수영장으로 향했다. ‘Piscine Thérèse et Jeanne Brulé’라는 수영장으로 포흐트 도흘레엉(Porte d’Orléans)과 바로 맞닿은 곳이다. 이전부터 수영장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어깨 결림이 생각보다 오래 이어져서 오늘은 기필코(!!) 수영장을 한 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프랑스에 오면 운동할 경우를 대비해서 한국에서 수영복과 수영모, 수경 일체는 챙겨온 상태였다. 진작부터 수영을 해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선뜻 수영장을 찾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수영장에 갔다가 예상치 못한 여러 절차를 밟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 살고 있는 5구를 중심으로 수영장을 가장 먼저 알아봤었지만, 재정비로 개장이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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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의 일기: 신발도 길이 들어야Vᵉ arrondissement de Paris/Avril 2022. 4. 3. 20:02
# 여전히 곤혹스러운 일요일이 왔다. 도서관마저 문을 닫고 식사를 해결하기도 가장 곤란한 날이다. 원래는 이번 주말 여행이라도 다녀오려다가, 지난 남서부 지방을 다녀오며 쓴 여행경비를 결산해보니 적지 않은 지출이 발생해서 잠정 보류했다. 숙소든 교통이든 최저가격으로 다녀왔는데도—예를 들면 ‘le moin cher’라는 표시가 뜨는 열차표로만 이동하고 숙박은 최대 하루 60~70유로 선에서 해결했다, 당연히 기념품을 산 일도 없었고..—일단 파리를 벗어나는 순간 비용이 불어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곰곰히 따져보면 내가 다녀온 툴루즈만 해도 파리로부터 680km 가량 떨어져 있다보니 사실상 마르세유(파리에서 780km)를 다녀온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서울에서 부산까지가 400km 정도다. 그렇다보니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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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일의 일기: 시간을 내 편으로Vᵉ arrondissement de Paris/Avril 2022. 4. 2. 21:28
# 오늘은 세 번째로 오르세 미술관에 다녀왔다. 아침에 미술관을 찾았지만 주말인 만큼 사람이 많은 편이다. 오늘은 꼭 고흐와 고갱 작품을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5층을 먼저 향했다. 5층은 유명한 인상파 작품들이 많이 몰려 있어서 항상 붐비는 공간이고, 고흐의 전시실은 그 안에서도 가장 붐빈다. 막상 바로 옆 고갱 전시실로 넘어가면 사람이 확 줄어든다. 후기 인상파인 고흐와 고갱의 전시실을 나온 다음 지난 번에 보았던 인상파 전시실의 작품들도 다시 한 번 쓱 둘러 보았다. 오늘 방문에서 재발견한 화가는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이었다. 그림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가장 프랑스적인 느낌이 든다고 생각했다. 한편 전시실 벤치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르누아르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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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의 일기: 한파(寒波)Vᵉ arrondissement de Paris/Avril 2022. 4. 1. 17:52
# 오늘은 주로 사람들을 만나는 일에 시간을 보냈다. 원래 오전에 오르세 미술관에 다녀올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전날 새벽 L과 갑작스럽게 오전 약속을 잡게 되었다. 아침에 민음사에서 나온 보들레르의 『악의 꽃(Fleurs du mal)』을 들고 나왔다. 왼쪽 페이지는 프랑스어 원문으로 오른쪽 페이지는 한국어 원문으로 되어 있고, 핑크색 표지가 퍽 감각적인 느낌이 있어 프랑스인들의 취향에 잘 맞을 것 같았다. 원래는 책을 완독하고 나서 L에게 줄 생각이었지만, 시(詩)라는 게 음미해가면서 읽어야 하는데 앞으로도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서 지금까지 적당히 읽은 걸로 만족하고 L에게 줄 겸 챙겨서 나왔다. # 오후에는 중국인 친구인 Z와 잠시 산책을 하고 (둘 모두 붐비는 시간을 피해 학생식당에 오다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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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1일의 일기: 학교 안 사계절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rs 2022. 3. 31. 17:35
# 오늘은 보기 드물게 파리에 눈이 내렸다. 눈 예보가 있기는 했지만 사실 반신반의했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 봄외투도 못 입겠다 싶을 만큼 온화한 날씨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무마다 새 순이 올라오고 꽃이 만개한 학교에 눈이 내리니 이보다 아이러니한 풍경도 없다. 오전까지 빗줄기였던 게 오후에 흰 뭉치로 바뀌어 있었을 땐 우박인가 하고 생각했다. 학교 지붕에 새하얗게 쌓이는 무언가를 보고 오늘 눈 예보가 있었다는 걸 뒤늦게 떠올렸다. 하루 종일 날씨도 무척 변덕스러웠다. 오전에는 비가 내리다 오후가 되면서 맑게 개었는데, 그러더니 곧장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오늘 HB가 오후 프랑스어 수업에서 브르타뉴의 날씨를 묘사하며 알려준 표현대로 "하루에도 맑은 날씨가 여러 번 찾아온다(il fait beau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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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0일의 일기: 6구를 걷다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rs 2022. 3. 30. 17:45
# 대선을 앞두고 있는 이곳에서는 대체로 마크롱의 당선을 예측하는 분위기다. 후보가 많기도 하지만, 여론몰이를 하고 있는 마린 르펜(극우)이나 멜랑숑(좌익) 같은 정치인들은 상당한 지지세를 확보하고 있기는 하지만 중도 유권자로의 확장성이 제한적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2012년부터 세 차례 국민연합(rassemblement national)—옛 국민전선(Front national)—의 후보로 대선에 출마하고 있는 마린 르펜은 이번 대선을 끝으로 더 이상 당을 대표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배수의 진을 치면서까지 마크롱을 추격하고는 있지만 결과를 뒤집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르펜과 멜랑숑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현재 결선투표가 가장 유력한 두 후보 마크롱과 르펜의 공식 슬로건을 들여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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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에서 온 여인일상/film 2022. 3. 30. 17:20
Elsa Bannister: I told you, you know nothing about wickedness. Michael O'Hara: A shark, it was. Then there was another, and another shark again... 'till all about, the sea was made of sharks, and more sharks, still, and no water at all. My shark had torn himself from the hook, and the scent, or maybe the stain, it was, and him bleeding his life away drove the rest of them mad. Then the beasts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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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햅번과 마릴린 먼로일상/film 2022. 3. 30. 01:45
최근 필모테크 뒤 캬흐티에 라탕(filmothèque du quartier latin)에서 두 편의 영화를 봤다. 한 편은 코엔 형제의 , 다른 한 편은 폴 토마스 앤더슨의 다. 영화관에는 크게 두 개의 상영관이 있는데 는 오드리 햅번 관에서, 는 마릴린 먼로 관에서 관람했다. 오드리 햅번 관은 파랑으로, 마릴린 먼로 관은 빨강 컨셉으로 꾸며 놓아서 특색 있는 영화관이다. 를 먼저 보았는데, 역시 이전과 마찬가지로 예정된 시각보다 10분여 늦게 시작했다. 두 영화의 공통점이라면 필립 시모어 호프만이 출연한다는 점 정도다. 나는 코엔 형제의 작품에 담긴 유머 코드나 그들이 보여주려는 세계를 잘 이해하지는 못하는 편이라서 코엔 형제의 작품을 찾아보지는 않는데, 하루는 가장 늦은 시각에 상영하는 작품 중 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