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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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 청송(靑松) 가는 길여행/2020 장마 안동 2020. 8. 5. 18:21
안동 터미널을 출발하여 청송으로 향하는 버스는 먼저 청송 터미널을 들른 뒤 다시 주왕산입구 정류소로 향한다. 안동 터미널에서 탈 때에도 탑승자가 네 명밖에 안 되는 적은 인원이었는데, 청송 터미널에서 한 차례 승객이 내리고 나니 주왕산으로 향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아마 정오를 넘겨서 산행을 가겠다는 사람이 흔치는 않을 터=_= 어쨌든 청송에 이르니 날씨가 개였는데, 이러한 사실을 미리 알았는지 몰랐는지 주왕산 입구에는 전국 각지에서 대절한 전세버스가 가득했다. 사실 나는 주왕산의 일반적인 산행코스에 대해서는 잘 몰랐고, 막연하게 주산지(注山地)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산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주왕산입구 정류소에서 내린 다음에 한 번 더 농어촌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조금 안 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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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날. 불시착(不時着)여행/2020 장마 안동 2020. 8. 4. 00:36
점심식사를 걸렀으니까 다시 안동역으로 되돌아왔을 때는 배가 고팠다. 안동에 오면 관광객들이 반드시 가는 식당이 몇 군데 정해져 있는데, 영 평점이 안 좋아서 그냥 포털에서 리뷰가 많으면서 평점도 좋은 곳을 갔다. 안동국밥은 서울에서도 맛볼 수 있는 음식이지만, 시장이 반찬이라고 안동에서 먹는 안동국밥이 더 맛있다. 식사를 마치고 보관함에 넣어두었던 가방을 다시 찾아 이제는 숙소로 향한다. 이스라엘 여행에서 몇 번 물먹은 경험 때문에 개인적으로 에어비앤비를 별로 신뢰하지 않게 되었는데, 짧은 시간 안동 여행을 준비하다보니 다시 에어비앤비를 통해 게스트하우스를 알아보았다. 마찬가지로 리뷰가 충분히 많으면서 평점이 좋고, 가성비가 좋아보이는 숙소를 예약했다. 처음에는 2박을 예약해두었는데, 있다보니 안동에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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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날. 도산서원(陶山書院)여행/2020 장마 안동 2020. 8. 2. 00:02
하회마을과 도산서원. 안동(安東) 하면 먼저 떠오르는 곳들이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8~9 군데였던 것 같은데, 그 이후로 여러 문화재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이 목록 안에 하회마을(2010년, 하회와 양동)과 도산서원(2019년, 한국의 서원)도 포함되었다. 이 둘의 독특한 점은 전국에 산재한 유적지들을 하나의 주제로 묶어 보다 적극적으로 한국적인 가치를 발굴했다는 점이다. (2000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과 2009년 등재된 40기의 조선왕릉도 마찬가지다) 안동에는 도산서원뿐 아니라 마찬가지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병산서원(倂山書院)이 자리하고 있어 함께 둘러보기에 좋다. 여기에 더해 2018년 유네스코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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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날. 청량리(淸凉里)발 안동(安東)행여행/2020 장마 안동 2020. 8. 1. 03:15
오전 7시 38분 청량리역. 부전(釜田)행 무궁화호 열차가 서서히 역사(驛舍)를 빠져나간다. 전날 수색역 근처에서 입사동기들과 짧은 모임을 마치고, 카페를 가자는 제안도 마다한 채 서둘러 본가에 갔다. 옷가지 몇 벌과 가벼운 책 두 권, 세면도구와 카메라. 단촐하게 가방을 꾸렸다. 그리고 집에서 쪽잠을 청한 나는 이른 아침 청량리역으로 향했다. 안동역에 도착하기까지는 앞으로 3시간 반 가량이 소요될 예정. 피곤에 찌든 커다란 짐짝처럼 이내 얕은 수면에 빠져들지만 이것 또한 아신역에 이르는 짧은 경춘선 구간에서만이다. 원주역에 도착하기 전 이미 눈을 뜬 나는 자세를 고쳐가며 잠을 다시 청해보지만 안동역에 이를 때까지 좀처럼 단잠은 찾아오지 않는다. 뒤이어 몇 차례 어두운 터널을 통과했다는 희뿌연 기억들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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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다시 첫 번째 질문으로여행/2020 장마 안동 2020. 7. 31. 11:37
안동에 간 기간은 한창 장마철이었다. 주간예보에는 비내리는 먹구름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예보를 보수적으로 하는 탓인지, 오전에는 주룩주룩 비가 왔다가도 해가 높아지는 낮이 되면 가랑비가 오락가락 하는 정도의 흐린 날씨였다. 안동에 도착하고 나서 처음 사흘간 심한 악몽에 시달렸다. 가깝지도 않은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느라 초조한 내 모습, 아무도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 자꾸 무언가를 하라고 해서 잔뜩 화난 내 모습, 옷을 모조리 빼앗겨 벌거숭이로 있는데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아 수치스러워 하는 내 모습, 모임에 도착했는데 어디에도 낄 곳이 없어 우왕좌왕하는 내 모습. 안동으로 향한 데에 별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떠나야 했을 때 가본 적이 없었던 곳이 안동이었을 뿐이다.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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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8 / 무제크성벽(Museggmauer), 몇몇 사진을 주워담으며여행/2019 스위스 종단여행 2019. 11. 10. 00:03
무제크 성벽(Museggmauer)은 카펠교로부터 5분 정도 되는 거리에 자리잡고 있다. 아마도 일요일이었던 것 같은데, 카펠교 북쪽에 자리잡은 상점가에 문을 닫은 가게들이 대다수여서 휑하니 한산했다. 몇몇 조명을 밝히고 있는 기념품 가게만이 정처없이 걷던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루체른을 상징하는 푸른 색 휘장(徽章)도 별다른 목적을 띠지 않고 홀가분하게 어깨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무제크 성벽에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는데 규모는 크지 않더라도 성(城)은 성이니 만큼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야 한다. 우리는 북서 방면으로 주택가를 끼고 길다랗게 나 있는 완만한 산책로를 택했다. 아침햇살을 받아 어둠의 때를 벗겨낸 오랜 주택들은 이제는 평화로운 분위기에 잠겨 있다. 인위적으로 가꾸지 않은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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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7 / 구텐베르그 또는 귀떵베흐그 거리(街)를 따라여행/2019 스위스 종단여행 2019. 11. 7. 22:50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을 둘러보는 것은 내부를 살펴보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대성당의 클라이맥스는 바로 위풍당당하게 솟아 있는 첨탑에 직접 오르는 것이다. 나는 짧은 프랑스어를 이용해 문지기에게 물어, 본당과 분리되어 있는 첨탑 통로에 이르는 길을 확인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엄마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올라가실 생각을 일찌감치 접으시고, 성당 앞 테라스에서 커피라도 마시며 기다리시기로 했다.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에 오르던 기억이 난다던 동생은 첨탑 전망대에 오르려던 생각을 관두고, 엄마와 함께 아래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아버지와 나만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원형 계단을 올라 첨탑 전망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전망대에는 곳곳에 구멍이 난 합금 원통이 달려 있다. 처음에는 안전망을 설치하다가 잘못 남겨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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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7 / 쁘띠 프랑스(Petite France)에서 대성당(Cathédral de Notre Dame)으로여행/2019 스위스 종단여행 2019. 11. 6. 23:08
수줍음이 많은 성격 때문인지 젊은 가게 주인은 이런저런 부탁을 할 때마다 동그란 얼굴을 붉히며 성실하게 치즈를 썰어서 포장해 주었다. 한국에서라면 갑질(?)―결정을 한 번에 내리지 못한 데다 의사소통이 완벽하지 않아 여러 번 주문을 바꿔야 했다―이라 할 만큼 번거롭게 부탁을 해도, 눈이 휘둥그레진 주인은 우직하게 치즈를 다룰 뿐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내 프랑스어가 어설프다는 걸 모를 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진지하게 프랑스어로 치즈를 설명하고 우리가 고개를 갸웃하는 대목에서는 해당 표현을 반복해서 강세를 넣었다는 점이다:) 기분이 풀어진 동생을 보고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나는 한 손에 치즈가 한 가득한 가방을 들고 가게를 나섰다. (평소에 치즈를 즐겨먹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사치를 부리다니!!) 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