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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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가 말하는 노(老), 미추(美醜), 그리고 성(性)일상/book 2016. 11. 21. 00:10
& 그림은 귀신을 물리치는 일과 같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악한 것을 몰아내려 했던 것일까? 그의 가장 오래된 자기기만? 아니면 살려고 태어났지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죽는다는 지식으로서 구원을 얻으려는 시도로 그림에 달려든 것일까? 갑자기 그는 무(無)에 빠져버렸다. 무라는 상태만큼이나 '무'라는 말소리에 빠져 길을 잃고 표류했다. 그러면서 두려움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모험 없이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그는 생각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역효과를 내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별 볼일 없는 그림을 그리는 것조차도! 그는 늘 안정에 의해 힘을 얻었다. 그것은 정지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것은 정체였다. 이제 모든 형태의 위로는 사라졌고, 위안이라는 항목 밑에는 황폐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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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심농 추리소설집일상/book 2016. 11. 18. 22:50
부산 여행 중 심심풀이 땅콩으로 읽었던 조르주 심농(Georges Simenon)의 단편집. 대-박이었다. 네 편의 에피소드 모두 재미있게 읽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와 였다.옮긴이(임호경 譯)는 국내에서 "조르주 심농"이라는 작가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 하는데, 실제로 프랑스어 문학계(작가는 벨기에 출신이다)에서는 쥘 베른과 알렉상드르 뒤마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이 번역/출간된 책이 조르주 심농의 작품이란다. 달리 말해, 빅토르 위고, 알베르트 카뮈, 생텍쥐베리, 스탕달 같은 기라성 같은 프랑스 작가들보다도 독자들에게 널리 읽히는 소설이라는 것. 과연 읽는 동안 나도 책을 손에서 놓기가 어려웠다. 추리소설인지라 느낀 점을 따로 남기는 대신, 책의 끝에 실린 옮긴이의 서평 가운데 '매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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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발칵 뒤집은 판결 31일상/book 2016. 11. 7. 00:12
"권력분립의 원칙이나 커뮤니케이션의 기밀 유지가 모든 상황에서 절대적이며 무조건적으로 대통령의 면책 특권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헌법의 입안자들이 미합중국 정부의 구성을 기획하고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의 3개 정부기관으로 권력을 나누는 포괄적인 시스템을 추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권력기관들이 절대적으로 독립되어 각자의 길을 가도록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자유의 보장을 위해 권력의 분산을 추구하는 것뿐 아니라 한편으로는 이 분산된 권력을 운용 가능한 하나의 정부체제로 통합하는 것 역시 헌법이 추구하는 이상이다. 헌법은 이들 권력 기관이 분리되었으면서도 상호의존하며, 자율을 누리면서도 서로에게 생산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을 명한다. 대통령 측이 주장하듯 대통령의 특권을 군사적, 외교적으로 민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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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정의일상/book 2016. 11. 6. 01:17
&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경제학자들은 시장은 교환되는 재화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시장은 흔적을 남긴다. 때때로 시장가치는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비시장가치를 밀어내기도 한다.""부패라고 하면 흔히들 부정 이득을 연상한다. 하지만 부패는 뇌물이나 불법 거래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어떤 재화나 사회 관행을 부패시키는 행위는 그 평판을 깎아내리는 행위고, 가치를 합당한 수준보다 낮게 평가하는 행위다.""민주주의는 완벽한 평등을 필요로 하지는 않지만 시민에게 공동체적 생활을 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려면 배경/사회적 위치/태도/신념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매일 생활하며 서로 부딪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서로의 차이를 견뎌내고 이를 놓고 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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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일상/book 2016. 10. 29. 00:08
& # 죽음이란 무엇인가?최근 안락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환자 본인의 자발적 의사가 있을 때, 적극적 안락사 또는 소극적 안락사를 행할 수 있을 것인가. 인간답게 살 권리와 생명권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여러 의견이 오고 갔다. 나는 기본적으로 안락사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는데, 그 논거 중의 하나는 과연 환자의 자발적인 의사가 있다고는 해도 그것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예컨대, 극심한 육체적/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죽음이라는 선택을 내릴 때, 과연 그게 모든 편익과 기회비용을 고려한 정상적인 사고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가. 의문스러웠다. 아무리 충분한 숙려기간을 준다고 하더라도 이런 의심이 가시지 않는 한 '존엄한 죽음'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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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일상/book 2016. 10. 25. 03:23
"생각할수록 화가 치미는 일이지만 인간을 믿지 말아야 하고 인간과 투쟁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증오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사랑만을 하기 원합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요? 만약에 성난 야수와 같이 어머니를 쫓아다니고 어머니의 살아 있는 정신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어머니의 인간적인 얼굴에 발길질을 해대는 사람이 있다고 쳐요. 그래도 그 인간을 용서해야만 합니까?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다. 저는 제게 떨어지는 모든 모욕들을 참아 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폭압자를 묵인하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 등을 치라고 가르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떠한 불의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비록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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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읽는 책일상/book 2016. 10. 25. 03:21
요새 한창 열독 중인 책이다. 한여름 동안에는 고등학교 때 잠시 공부했던 책을 꾸준히 읽었었는데, 가을이 되어서는 책을 꾸준히 읽고 있다. 전공서적은 가격이 비싸기도 하고 마침 서점에 재고도 없어서, 가까운 동네 구립도서관에서 대출했다. 현재 개정판이 6판까지 나왔는데, 대여한 책이 4판인지라 판례나 주제가 철지난 것들이 좀 있지만,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큰 지장은 없다. 오래된 개정판이나마 대여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다ㅎㅎ 그 동안 TV에서 짤막한 뉴스로만 접해왔던 사회 이슈들을 이렇게 체계적으로 접하니 재미있다. 특히 권리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균형을 어떻게 바로잡을지에 대해 고민하는 부분은 쉽지 않지만, 그래서 더 흥미로운 것 같다. 당분간 짬짬이 다른 독서를 하더라도 이 책은 꾸준히 붙잡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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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디두르케일상/book 2016. 10. 5. 14:25
"자, 그렇다면 가장 중심이 되는, 가장 근본적인 고통은 어떤 것일까? 이 책의 고통들의 모체(母體)는? 모든 고통들의 조상이여, 그대는 어디 있는가? 자세히 살펴보고 관찰하고 이해할수록 나는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 중심이 되는 근본적인 고통은 간단히 말해서 형식이 나쁜, 그러니까 '겉'이 나쁜 고통이라는 것을 말이다. 다시 말하면 격식을 갖추어 요약한 표현의 고통, 찡그림의 고통, 표정의 고통, 낯짝의 고통이다. 그렇다. 바로 그것이 다른 모든 괴로움과 광기(狂氣), 고뇌가 조화롭게 흘러나오는 근원이며 기원이고 출발점이다. 하지만 기본이 되는 본질적인 고통은 어쩌면 바로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한계에서 오는 고통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타인의 상상력은 우리를 한정된 공간 안에 쑤셔 박아버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