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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의 일기: 라파예트(Lafayette)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i 2022. 5. 18. 19:08
# 프랑스어에는 영어와 모양은 같지만 쓰임새가 꽤 다른 단어들이 있어서 자칫 단어의 의미를 잘못 이해할 때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호텔(hôtel)’이라는 단어다. 이 말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듯이 고급 숙박시설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관공서를 의미하기도 한다. 때문에 작은 마을들에서는 그냥 시청사(Mairie)를 두고 있지만, 파리를 비롯한 큰 규모의 도시에서는 시청사를 일컬을 때 오텔 드 빌(Hôtel de ville)이라는 표현을 쓴다. 제법 규모가 있는 도시에는 어김없이 오텔 드 빌(Hôtel de ville)이라는 표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걀레리(Galerie)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화랑(畵廊)’이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갤러리 라파예트(Gal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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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의 에콜 시네마 클럽(Écoles Cinéma Club)일상/film 2022. 5. 18. 05:20
라탕 지구의 에콜 시네마 클럽이라는 곳에서 두 편의 영화를 봤다. 사실 영화를 본지는 한 달도 훨씬 더 전의 일인 것 같은데, 기록을 남기는 일도 점점 밀리면서 한없이 늦어졌다. 라탕 지구에서 르 셩포라는 영화관을 알게 된 후 크게 세 곳의 영화관을 번갈아 가며 종종 찾곤 한다. 그중 가장 마지막에 알게 된 게 에콜 시네마 클럽이라는 곳이다. 그리고 에콜 시네마 클럽에서 처음으로 접했던 영화가 마틴 스콜세이지의 라는 작품. 라탕 지구에는 특색있는 영화관이 워낙 많은데, 각 영화관마다 서로 다른 개성이 있다는 게 관객으로서는 참 반가운 일이다. 라탕 지구에서 가장 처음으로 발견했던 르 셩포의 경우, 가장 특징적인 점은 흑백영화의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컬러화돼서 상영 중인 오래된 작품들도 있지만, 양차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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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7일의 일기: 목적도 없이(vers Provins)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i 2022. 5. 17. 21:50
# 오전에는 행정업무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신청해 둔 사회보장 절차가 중간에 막혀서, 반려된 서류(수학증명서)와 관련해 학교 이곳저곳에 문의를 했다. 기숙사비를 내러 찾아간 사무실에서 A는 여기(프랑스) 행정절차가 이래서야 정말 큰 일이라고 본인도 심각한 얼굴을 하고, 도움을 구할 수 있을 만한 곳을 발벗고 알려주었다. A의 이름은 그의 고향이 아랍 세계의 어딘가라는 걸 알려주지만, 그런 구분과 별개로 항상 그의 깊은 호의에 도움을 많이 얻었다. 어쨌거나 결국은 국제처로 향했고 국제처 직원 또한 관련된 정보를 최대한 구해주었지만, 결론은 사회보장을 소관하고 있는 행정당국과 풀어야 할 문제였다. 다만 서류상에는 전혀 하자가 없는데도 신청이 반려되었기에, 아무래도 단기 체류자이면서 신청 시기가 늦어졌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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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6일의 일기: 두 번의 사냥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i 2022. 5. 16. 16:40
# 오늘은 시험이 두 개 있는 날이었다. 사냥감을 잡느냐 놓치느냐 하는 마음으로, 사냥감을 놓치면 사냥에 나서도 말짱 도루묵이라는 마음으로 시험에 임했다. 이날 학과 전체에서 총 2개의 시험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나는 오늘 있었던 2개 시험을 모두 응시한 유일한 학생이 되었다. 각자 시간표가 다르긴 하겠지만, 다른 학생들은 도대체 어떤 과목들에서 학점을 인정받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첫 번째 시험인 연금정책 수업에는 6명의 학생이, 두 번째 시험인 공공재정학 수업에는 3명의 학생이 응시했다. 한 학기 동안 수업에 출석했던 학생들의 인원을 생각해볼 때 60% 정도의 학생들만이 시험에 응시한 셈이다. 일단 학기 초 수업을 고르고 확정이 되고나면 학점인정을 받을 의사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우리나라와 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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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의 일기: 천천히, 확실히(lentement mais sûrement)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i 2022. 5. 15. 17:37
# 오늘도 거의 모든 시간을 학교에서 보냈다. 일요일에는 도서관을 비롯해 대부분의 시설이 문을 닫는데, 시험기간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심지어 주말에 영업을 하지 않더라도 공간 자체는 개방을 해놓던 학교 카페테리아마저 닫혀 있었다. 학교 밖 카페에서 자릿세를 내는 식으로 공부를 하는 것도 영 내키지 않아, 에흐네스 정원에서 공부하는 걸 택했다. 정원에서 공부를 한다는 게 내게는 아직도 너무 낯설지만, 시험이 코앞이기도 하고 급한 대로 벤치를 하나 골라 공부했던 자료들을 늘어놓고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오후 반나절을 그렇게 정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이날 정원에 있던 학생들 대부분이 하루종일 정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친구들과 떠들다가 클래식을 틀어놓고 책을 읽다가 다시 노트북으로 뭔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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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4일의 일기: 나만의 세상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i 2022. 5. 14. 17:36
# 점심을 먹고 잠깐 눈을 붙이고 있는데—어제부로 매우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어디서 격한 비트음악이 들려왔다. 파리는 경찰차나 구급차를 제외하면 소음이 많은 도시는 아니건만, 어마어마한 진동에 몽롱했던 정신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주 멀리서 울리던 진동은 기숙사 코앞에 이르렀다. 도대체 무슨 일인 건가 (잠시도 가만 두질 않는구나..) 싶어서 가방을 싸들고 밖을 나섰는데, 약간 조악한 차림새의 젊은 인파가 행렬을 이루어 보클랑 가를 지나가고 있었다. 행렬의 선두에는 디제잉을 하는 남자 두 명이 차량 위에서 흥을 돋우고 있었고, 맨 끝에는 경찰차 두어 대가 따라붙고 있었다. 행렬에는 일곱여덟 대 정도의 개인 차량까지 동원됐는데, 차량 바깥에 골판지 같을 걸 둘러서 베를린 장벽이니, 아스테릭스니,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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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3일의 일기: 에릭 로메르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i 2022. 5. 13. 15:09
# 오전에는 K와 오후에 있을 각자의 발표를 연습하고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여기선 단순히 글로 풀어내는 공부보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고 토론하는 능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가장 시수가 적었던 노동경제학 수업에서마저 발표과제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오히려 노동경제학보다 시수가 많았던 수업 중에는 시험으로 평가가 이뤄지는 과목도 있어서, 그렇지 않아도 시험 직전 주에 잡힌 발표 일정이 퍽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K의 방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서로의 발표를 체크해주고, 점심을 먹으러 시테 유니벡시테로 이동했다. 점심을 먹으며 이탈리아에서 온 K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시테 유니벡시테의 학생 식당에서 밥을 먹는 건 이곳에 도착한 뒤로 처음인데, 듣던 것보다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물론 팡테옹 캠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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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2일의 일기: 주인공(主人公)과 조연(助演)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i 2022. 5. 12. 17:19
# 오늘은 HB의 마지막 수업이 있었다. “결산하기(Faire le bilan)”라 해서 한 학기 (또는 학생에 따라서는 한 해) 동안 프랑스에서 겪었던 어려움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원래 예정된 문화인류학 수업을 (지정된 논문에 대한) 페이퍼 제출로 대체하고 싶다고 미리 의사를 밝히고, (페이퍼를 제출한 다음) HB의 수업을 연달아 두 개를 들었다. ECLA에서 열렸던 수업들은 이번 학기 내게 작은 안식처가 되었던 곳이다. 기본적으로 ECLA에서 열리는 프랑스어 수업은 외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매우 개방적인 성격이 강하고, 서로 비슷한 고충을 안고 있는 외국인들끼리의 정보 공유까지는 아니더라도 고충 공유(?)도 수월하다. # 별의 별 얘기가 다 나온 것 같다. 이탈리아에서 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