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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일의 일기: 이상한 추격전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i 2022. 5. 3. 17:45
# 오늘은 줄곧 학교에서 시간을 보냈고, 저녁에는 잠시 수영을 다녀왔다. 요새 조금씩 몸이 찌뿌둥하고 근육이 뭉치는 느낌이 들던 차라 어깨가 결리기 전에 운동을 다녀왔다. 낮에는 점심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뤽상부르 공원을 한 바퀴 쭉 돌았다. 오늘은 날씨가 무척 따듯해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여전히 학교도 기숙사도 텅빈 느낌이기는 한데, 도서관에 가면 학생들이 빽빽하다. 바캉스이기는 하지만 시험이 코앞이기 때문이다. # 어제 도서관에서 자리잡기 어려웠어서 오늘 아침은 도서관이 문여는 시간에 딱 맞춰 도서관에 갔었다. 자리잡기 어렵다고는 해도 이곳 학생들이 정말 아둥바둥하게 공부한다는 느낌은 아직까지 받기 어렵다. 우리나라 학생들에 비하면 독기(?) 같은 게 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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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일의 일기: 드랭과 위트릴로(A. Derain et M. Utrillo)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i 2022. 5. 2. 17:29
# 몇 가지 희한한 일들이 연달아 있었다. 희한한 일이라기보다는 이곳에서 거의 홀로 지내는 편인데 유난히 사람들과 대화할 일이 많았던 오후였다고 해두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기숙사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외국인 학생이 머뭇머뭇하며 영어로 말할 줄 아냐며, 내게 혹시 세탁실이 어딘지 아느냐고 물었다. 수척한 얼굴이었는데 딱 내가 1월에 도착하고 얼마 안 되어 한동안 짓고 있던 표정이었다. 학교에서 이곳 생활에 관한 아주 기초적인 정보는 제공하지 않고 사교 행사가 있을 때만 분주히 안내자료를 보내오다보니, 이 학생은 세탁실이 기숙사가 아닌 학교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세탁을 하려면 옷바구니를 낑낑 들고 교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런 걸 학교 측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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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의 일기: 박물관 기행(Les musées)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i 2022. 5. 1. 20:54
# 오늘은 노동절이다.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는다. 나는 2박 일정을 마무리하고 파리로 돌아갈 계획을 했는데 파리로 가기 전 중간에 박물관을 일정에 넣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일단 셰르부르의 해양 박물관(la cité de la mer)을 옵션으로 고려해볼 수 있을 테고, 또 캉 기념관(mémorial de Caen)을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둘중에 하나를 택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마음은 캉 기념관으로 기울었는데, 영 셰르부르를 대충 보고 가는 느낌이어서 해양박물관을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도 다른 한편으로 들었다. 또 ‘바다’라는 주제가 생소해서 궁금증이 들기도 했다. 체크아웃을 하면서 호텔 직원에게 물어보니 둘의 주제—하나는 바다, 다른 하나는 전쟁—가 너무 달라서 하나를 딱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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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의 일기: 셰르부르(Cherbourg) 가는 길Vᵉ arrondissement de Paris/Avril 2022. 4. 30. 17:46
# 간밤에는 결국 베이유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사실 프랑스에 오기 전까지는 노르망디 지역에 이렇게 오게 될 거라 생각도 못했는데, 파리에서 멀지 않은 곳 중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노르망디 지역을 두 번째로 찾게 되었다. (첫 방문은 몽생미셸..) 파리를 벗어나 숙박하게 되면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텔레비전을 열심히 보게 된다. 어제도 잠들 때까지 텔레비전을 끄지 못하고 서너 시간 가까이 보든 안 보든 TV를 틀어놨다. 뉴스에는 마크롱의 대선 승리 이후 내각 구성 단계에서 멜랑숑을 비롯한 좌파 진영이 연합을 통해 얼마나 존재감을 과시할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또 경제 섹션에서는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인플레이션 문제가 조명되었고, 국제 섹션에서는 단연 우크라이나 전쟁 얘기가 흘러나왔다. 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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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9일의 일기: 디데이(D-Day; Jour J)Vᵉ arrondissement de Paris/Avril 2022. 4. 30. 03:31
# 새벽 여섯 시쯤 눈을 떴을 때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생각에 잠겼다. 오늘 노르망디 지역을 다녀올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막상 새벽에 눈을 뜨니 가지 말까,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공부할 거리도 쌓여 있고—공부를 계속해도 좀처럼 공부량이 쌓이지 않는 기분이다—파리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죄다 돈 나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누운 채로 곰곰히 저울질하다가 결국 기숙사를 나설 채비를 했다. 장고 끝에 악수라고 생각이 길어질 수록 좋은 일이 없다. 기숙사를 나와 27번 버스를 타고 생라자르 역으로 향했다. 학교 근처 길목에서 걸인에게 얼마 전 1유로를 준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나만 보면 유난히 아는 척을 한다. 기숙사를 나선 게 아침 여덟 시였나 꽤 이른 아침이었는데 벌써 고정좌석에 자리를 잡은 노년의 여성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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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7일상/book 2022. 4. 29. 04:27
"바람도 번뇌요 시냇물도 번뇌요, 산새들 짐승울음, 철 따라서 피고 지는 산꽃들, 그 어느 하나 소리와 형체를 겸하지 않는 것이 없을 터인데 심산유곡이라고 현세가 아니란 말이가, 사시장철 목숨의 소리들은 충만하여 있거늘," —p. 97~98 김주사도 되고 김선생도 되고 김길상 씨도 되고 면전에서 웃고 굽실거리는 얼굴들이 돌아서면은 퇴! 하고 침 뱉어가며 하인 놈 푼수에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르더라고 거들먹거리는 꼴 눈꼴시어 못 보겠다, 고작 한다는 말이 그 말일 터인데. 서희라고 예외일 수 있는가. 시기와 조롱을 면전에서는 교묘히 감추는 뭇시선 속에 상처받기론 마찬가지다. 그 상처를 서로 감추고 못 본 첫한다. 왜 드러내 보이고 만져주고 하질 못하는가. 길상은 가끔 옥이네와의 생활을 생각할 때가 있다.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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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일의 일기: 변덕(變德)Vᵉ arrondissement de Paris/Avril 2022. 4. 28. 18:51
# 오전에 논문을 읽고 오후에 수업을 듣고 수업이 끝난 뒤에는 과제를 한 하루다. 이번 학기 두 번째로 맞이하는 바캉스는 지난 번 바캉스와는 다르게 학교가 유난히 한산한 느낌이다. 특히 기숙사가 조용해서 평소 시끌벅적하던 공용주방도 요새는 휑할 만큼 조용하고 식당도 배식대를 줄여서 운영하고 있다. 기숙사는 더더욱이 파리에 살지 않는 학생들 위주여서 학생들이 파리를 떠난 뒤에 더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 요즘 문화인류학 수업은 객원을 초대해 주제를 하나씩 다루는 방식으로 수업이 이뤄지고 있다. 객원 발표자가 발표를 시작할 때 노트북을 보고 있던 나는 처음에 환청을 들은 줄 알았다. 발표자가 언어장애(말더듬)가 있어서 한 발음에서 다음 발음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화법을 쓰고 있었는데 그 정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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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7일의 일기: 빈틈 두기(le mou)Vᵉ arrondissement de Paris/Avril 2022. 4. 28. 02:49
# 이번 주부터 2주간 바캉스가 시작되었다. 내 시간표는 일반적인 바캉스 일정과는 전혀 무관하게 운영되는 까닭에, 이번 주 바캉스가 시작되었음에도 어제 Z의 말을 듣고서야 학교가 두 번째 짧은(?) 바캉스에 돌입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인지 학교에 사람도 평소보다 적고 도서관도 제한적으로 운영한다. 유럽에서 온 많은 교환학생들은 바캉스 기간을 이용해 집에 다녀오기도 한다. 마침 부활절 기간이 끼어 있기 때문에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는 것이다. 유럽 곳곳이 철도로 잘 연결되어 있다보니 가능한 일이다. # 오늘도 영 몸이 좋지 않았다. 이곳 날씨에 적응하지 못하는 건지, 그냥 환절기여서 비염 알러지가 도진 건지, 몇 주째 컨디션이 온전하지 않다. 오늘은 오한까지 들어서 점심도 거른 채 기숙사에서 쉬었다. 오후..